생애

[Who Is ?]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권영수는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금성전자(현 LG전자) 기획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 한 번도 LG그룹을 떠나지 않은 정통 ‘LG맨’이다. LG전자에서 미주법인 부장과 재경팀장 임원, 재경부문장 사장(CFO)을 역임했다.

LG필립스LCD 대표이사 사장,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사장을 거친 뒤 부회장으로 승진해 LG유플러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권영수는 30년 이상 LG그룹 계열사에서만 근무한 정통 ‘LG맨’이다.

그는 LG전자에서 근무하며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오를 정도로 재무관리에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을 각각 LCD패널과 차량용 배터리 분야의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탈바꿈 시켜 ‘1등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기업이 처한 상황을 재무적 관점에서 정확히 판단하고 미래 판세를 읽어내 이에 맞도록 기업을 대응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LG필립스LCD 사장으로 발탁됐을 당시 회사가 4분기 연속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권영수는 이를 반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책임이 주어지면 이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집념이 강하다. 그는 새로운 회사에 발령받을 경우 첫 1년 동안 집안의 대소사도 멀리한 채 업무를 파악하는데 힘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이나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016 등 글로벌 모바일 박람회에 불참한 것도 LG유플러스에 대한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이 그룹 핵심인재인 권영수를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발탁한 것을 놓고 LG유플러스의 탈꼴찌를 본격화하기 위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1등 경험이 풍부한 권영수를 앞세워 이통시장 점유율 3위인 LG유플러스에 ‘1등 DNA'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에 권영수는 LG유플러스 부회장에 오른 뒤 “우리 목표는 탈꼴찌가 아니라 ‘1등’" 이라며 직원들을 강하게 독려하고 있다.

2009년 LG디스플레이 재직시 당시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선덕여왕'을 언급하며 “드라마 속 선덕여왕의 전략과 창조적 발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덕여왕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겠다는 창조적 발상을 하고 치밀한 전략을 통해 주위의 의구심을 깨고 실제로 왕위에 오른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미실이라는 커다란 극복 대상, 경쟁자가 있어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덕만(훗날의 선덕여왕)의 대사를 거론했다고 한다. 강한 선두주자가 존재할수록 실력과 도전의식을 키울 수 있는 더 큰 자극제가 된다는 점에서 후발주자가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 시절의 발언들이지만 '만년 3위를 벗어나 업계 1위'를 목표로 삼고 있는 LG유플러스의 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만큼 1위 달성을 위한 권영수의 경영철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영수는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에서 사장을 맡는 동안 애플과 테슬라 등 글로벌 IT기업의 수뇌부와 폭넓은 인간관계를 쌓았다. 그가 통신분야 비전문가 임에도 불구하고 LG유플러스 부회장에 발탁된 데 이러한 글로벌 사업역량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9년 금성전자(현 LG전자) 기획팀에 입사해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88년 금성전자 해외투자실 부장에 오른 뒤 1991년 금성전자 미주법인 부장을 지냈다.

1998년 LG전자 MA추진팀장을 맡아 1년 동안 컨설팅 임무를 맡았다.

1999년 LG전자 금융담당, 경영지원담당 상무보로 발탁돼 2000년 LG전자 재경팀장 상무를 맡았다.

2002년 LG전자 재경담당 부사장에 올라 2003년 재경부문장을 맡은 뒤 2006년 LG전자 재경부문장 사장(CFO)으로 승진했다.

2007년 LG필립스LCD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사명을 LG디스플레이로 바꾼 2008년에도 사장을 지냈다.

2009년부터 2012년 2월까지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회장을 맡았다.

2012년 LG디스플레이에서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전지사업본부 본부장(사장)을 맡았다.

2015년 12월 부회장으로 승진해 LG유플러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 학력

197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해 1979년 졸업했다.

1981년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09년 제46회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0년 이후 수출을 7배 이상 늘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상훈

2009년 제46회 무역의 날 금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00년 이후 수출을 7배 이상 늘리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어록


“통합방송법이 개정 중에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법이 확정된 후 인수합병 심사가 이뤄지는 것이 당연하다.”, “SK텔레콤은 방송법이 개정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인수합병을 서둘러 추진했는데 만약 이번 인수합병이 허가된다면 불공평한 경쟁이다.”(2016/01/14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가 허가되면 이는 방송통신법에 위배된다며)

“조선·철강 등 다른 업종은 얼마나 피 튀기는가, 통신업은 거기에 비하면 상대성이 있다.”, “SK텔레콤이 적자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을 것인데 그런 사업을 왜 한곳에 몰아주는가”(2016/01/14 통신공룡인 SK텔레콤이 CJ헬로비전을 인수하면 방송사업마저 덩치가 커진다며)

“이제는 낡은 관행과 고정관념을 벗어 던지고 근본적인 변화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 ‘선태사해(蟬蛻蛇解)’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 한다.”(2016/01/04 LG유플러스 시무식에서 ‘매미가 껍질을 벗고 뱀이 허물을 벗는다’는 뜻의 고사성어 ‘선태사해’처럼 LG유플러스도 체질개선을 해야 한다며)

“우리 안에는 1등 DNA가 내재돼 있기 때문에 더 높은 목표에 과감히 도전하고 강하게 돌파하면 결국 우리가 꿈꾸는 1등을 반드시 이룰 수 있을 것.”(2016/01/04 LG유플러스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1등’이 되자고 독려하며)

“모든 답은 고객과 현장에 있다.”, “남들이 깜짝 놀랄만한 차별화한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2015/12/22 LG유플러스 부회장에 오른 뒤 처음으로 현장 영업점을 찾아)

“신명나게 일 해보자.” (2015/12 LG유플러스 부회장에 취임한 뒤 직원들과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전기차는 온실가스 배출을 제로화할 수 있는 제품이다.”(2015/11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아침에 눈을 뜨면 가고 싶은 직장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저는 LGD를 통해 이 꿈을 실현했습니다.”(2011/12/08 LG디스플레이 사장에서 물러나며 직원들에게)

“영원한 1등이 되어달라.”(2011/12/08 LG디스플레이 사장에서 물러나며 직원들에게)

“드라마 속 선덕여왕의 전략과 창조적 발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 (2009/12 사내 간부들과의 모임에서 당시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선덕여왕'을 언급하며)

◆ 평가

권영수는 30년 이상 LG그룹 계열사에서만 근무한 정통 ‘LG맨’이다.

그는 LG전자에서 근무하며 기업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에 오를 정도로 재무관리에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을 각각 LCD패널과 차량용 배터리 분야의 글로벌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탈바꿈 시켜 ‘1등 전도사’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기업이 처한 상황을 재무적 관점에서 정확히 판단하고 미래 판세를 읽어내 이에 맞도록 기업을 대응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다.

LG필립스LCD 사장으로 발탁됐을 당시 회사가 4분기 연속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권영수는 이를 반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책임이 주어지면 이를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집념이 강하다. 그는 새로운 회사에 발령받을 경우 첫 1년 동안 집안의 대소사도 멀리한 채 업무를 파악하는데 힘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2016이나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2016 등 글로벌 모바일 박람회에 불참한 것도 LG유플러스에 대한 업무를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LG그룹이 그룹 핵심인재인 권영수를 LG유플러스 부회장으로 발탁한 것을 놓고 LG유플러스의 탈꼴찌를 본격화하기 위한 행보라는 관측이 나온다.

1등 경험이 풍부한 권영수를 앞세워 이통시장 점유율 3위인 LG유플러스에 ‘1등 DNA'를 심겠다는 것이다.

이에 권영수는 LG유플러스 부회장에 오른 뒤 “우리 목표는 탈꼴찌가 아니라 ‘1등’" 이라며 직원들을 강하게 독려하고 있다.

2009년 LG디스플레이 재직시 당시 인기리에 막을 내린 드라마 '선덕여왕'을 언급하며 “드라마 속 선덕여왕의 전략과 창조적 발상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덕여왕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겠다는 창조적 발상을 하고 치밀한 전략을 통해 주위의 의구심을 깨고 실제로 왕위에 오른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 “미실이라는 커다란 극복 대상, 경쟁자가 있어 내가 존재할 수 있었다”는 덕만(훗날의 선덕여왕)의 대사를 거론했다고 한다. 강한 선두주자가 존재할수록 실력과 도전의식을 키울 수 있는 더 큰 자극제가 된다는 점에서 후발주자가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 시절의 발언들이지만 '만년 3위를 벗어나 업계 1위'를 목표로 삼고 있는 LG유플러스의 현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만큼 1위 달성을 위한 권영수의 경영철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권영수는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에서 사장을 맡는 동안 애플과 테슬라 등 글로벌 IT기업의 수뇌부와 폭넓은 인간관계를 쌓았다. 그가 통신분야 비전문가 임에도 불구하고 LG유플러스 부회장에 발탁된 데 이러한 글로벌 사업역량도 한 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 기타

LG그룹 안에서 ‘칼’(刀)이라는 별명을 얻고 있다.

재무전문가답게 투자에 능하다. LG화학 사장으로 재임할 당시 자사주 투자로 20% 가량의 차익을 남겨 ‘주식을 잘 하는 CEO'로 불리기도 했다.

업무에 있어 직원들을 강하게 몰아붙이지만 업무 외적으로 살뜰하게 직원들을 챙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LG디스플레이 사장에서 내려올 때 아쉬움에 눈물을 흘린 직원도 있었을 정도다.

경기고등학교 - 서울대학교를 거친 이른바 ‘KS' 출신이다.

김신 삼성물산 상사부문 사장과 황주호 경희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강성원 LS니꼬동제련 사장 등이 권영수와 경기고등학교 71회 동창이다.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등이 권영수와 서울대학교 75학번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