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TV사업 '소니식 몰락' 우려, 대수술 예고  
▲ 윤부근 삼성전자 CE부문 사장이 지난 4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15에서 ‘사물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다’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최근 삼성전자 TV사업에 대한 경영진단을 끝냈다.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은 TV사업의 부진 탓에 지난 1분기 9년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 2분기에도 TV사업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까지 세계 TV시장에서 매출 기준으로 9년 연속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위상이 확고했다.

그럼에도 그룹 차원에서 TV사업을 경영진단한 것은 TV사업의 부진이 환율 등 일시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근본적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TV사업이 자칫 과거 소니 TV사업 몰락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삼성그룹은 경영진단을 통해 TV사업의 위기에서 벗어날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냈을까?

19일 삼성전자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미래전략실은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과 함께 TV사업에 대한 경영진단을 실시했다.

미래전략실은 이번 경영진단에서 세계 TV사업의 거점지역까지 방문해 TV사업 위기의 원인을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단 보고서는 최근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부문 사장, TV사업을 맡고있는 김현석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 등 수뇌부에게 전달됐다.

경영진단보고서에 TV사업의 향후 전략뿐 아니라 인력과 조직재편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 삼성전자 TV사업 위기의 본질

삼성전자의 TV사업은 1분기에 수백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TV사업을 담당하는 VD사업부의 매출은 1분기 6조2200억 원을 기록해 직전분기보다 무려 36% 줄었다.

삼성전자가 당분간 TV사업에서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분기 잠깐 적자를 피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TV사업의 수익성을 개선할 근본적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한 부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승혁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TV사업은 환율 불안정이 이어지고 중국업체들과 가격경쟁이 치열해져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수익성 개선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물론 삼성전자 TV사업이 올해 1분기에 적자로 돌아선 데는 매출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유럽과 중남미시장의 환율이 떨어진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런 일시적 원인으로 삼성전자 TV사업의 위기론을 설명하기에 뭔가 부족해 보인다.

전문가들은 세계 TV시장이 성장정체에 빠진 것을 삼성전자 TV사업 위기의 중요한 원인으로 꼽는다. 곧 TV 자체의 위기라는 것이다.

모바일과 PC로 TV콘텐츠를 감상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TV의 수요는 감소하고 있다.

세계 TV 출하량은 2010년 2억5천만 대를 정점으로 2억3천만 대 안팎까지 내려앉았다. 세계 TV시장 판매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중국시장마저 지난해 처음으로 성장이 뒷걸음질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 TV가 가정에 꼭 필요한 제품이라는 인식이 강했다”며 “그러나 모바일과 통신기술의 발달, 1인가구 증가 등으로 가정에서 TV의 위상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업체의 추격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1분기 중국 6대 TV업체들은 중국을 제외한 시장에서 620만 대의 TV를 출하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6% 늘어난 수치다.

특히 중국업체들은 같은 기간 북미지역 출하량 증가율이 30%에 이르며 급성장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들과 경쟁을 벌이려면 TV의 판매가격을 내리거나 마케팅비를 늘려야 한다. 이 경우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저가TV 시장은 사실상 치킨게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스틱스에 따르면 삼성전자 TV의 평균 판매가격은 지난해 상반기 13%나 내렸다. TV의 평균판매가격 하락은 지난해 4분기에도 이어졌다.

  삼성전자 TV사업 '소니식 몰락' 우려, 대수술 예고  
▲ 김현석 삼성전자 VD사업부 사장이 지난 2월 2015년 TV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SUHD TV를 선보이고 있다.

◆ 화질경쟁, TV사업 부진극복의 대안이 될까

삼성전자는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SUHD TV 등 초고화질(UHD)TV로 고가시장을 공략하는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중저가시장의 치킨게임에서 벗어나 고가TV시장에서 수익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3월 주주총회에서 “올해 SUHD TV로 프리미엄시장의 입지를 다질 것”이라며 “초고화질 콘텐츠를 활성화하고 판매확대를 위한 체험 마케팅도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 사장은 “프리미엄 제품인 커브드 초고화질TV는 전체 수량의 10%, 매출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며 “올해 SUHD TV 판매는 최소 이 정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기대했다.

삼성전자는 SUHD TV가 시장에 공급된 3월부터 판매가 크게 늘었다며 실적개선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최근 국내에서 SUHD TV의 판매가 3개월 만에 1만 대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동원 현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SUHD TV가 시장확대의 초입에 들어섰다”며 “비수기 영향과 최근 TV수요 감소세를 감안하면 양호한 실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전략도 TV사업의 부진을 극복하는데 한계가 뚜렷하다. 프리미엄TV의 가격이 수백만 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중저가시장에서 중국업체에 빼앗긴 TV사업의 수익성을 만회할 만큼 프리미엄TV를 판매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물론 초고화질TV 시장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전체 TV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높지 않다. 올해 1분기 초고화질 TV는 전체 TV시장의 9%를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욱이 높은 가격에 비해 소비자가 화질을 체감하는 정도는 이에 미치지 못해 기존 TV 수요를 끌어오는 데 한계가 있다. 초고화질 TV의 콘텐츠도 아직까지 충분하지 못하다.

더 큰 문제는 삼성전자가 이제 초고화질TV 시장에서도 후발주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업체들이 기술격차를 좁히며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초고화질TV 시장까지 뛰어들고 있다. 세계 초고화질TV 수요의 절반이 중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시할 수 없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디스플레이 패널에서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부품업체들이 성장하면서 TV제조업체들 사이의 기술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며 “초고화질TV도 머지않아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세계 초고화질TV시장에서 출하량 기준으로 32%의 점유율 기록했다. 1위를 유지했지만 점유율이 전분기보다 소폭 감소했다.

중국 TV제조업체들은 전체 매출에서 초고화질 TV가 차지하는 비중이 오히려 삼성전자보다 높다. 삼성전자는 11%이지만 중국 제조사들의 평균은 16%에 이르렀다.

IHS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초고화질TV 수요가 삼성전자나 LG전자보다 중국 TV 제조업체에 집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 TV사업 '소니식 몰락' 우려, 대수술 예고  
▲ 김현석 삼성전자 VD사업부 사장이 지난 4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삼성전자, TV의 새로운 활용도 찾을까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TV사업 경영진단을 통해 국내를 비롯해 해외까지 전반적 사업실태를 점검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경영진단 이후 삼성전자가 TV사업에서 조직과 인력의 재정비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후속작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한다. 조직과 인력 재정비에 해외법인도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기존 초고화질(UHD)TV보다 해상도가 2배인 ‘8K TV’ 등 TV의 성장정체를 극복하기 위해 차세대 TV사업을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등이 삼성그룹 차원의 경영진단을 받은 뒤 사업구조개편을 추진한 점으로 미뤄 삼성전자 VD사업부도 강력한 사업구조개편이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TV사업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하드웨어 경쟁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에서 새로운 차별점을 확보해 TV의 역할을 다시 정의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모바일과 통신의 발달이 기존 TV의 수요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은다.

TV는 항상 전원과 연결돼 있고 여러 기기의 작동상태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큰 디스플레이가 필수적인 만큼 사물인터넷에 따른 스마트홈의 중심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특히 스마트 TV의 경우 여러 기기를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운영체제(OS)도 탑재돼 있다.

삼성전자도 스마트TV를 스마트홈의 중심에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자체 운영체제인 타이젠을 탑재한 스마트TV의 비중을 전체 TV의 절반 이상으로 확대하려 한다.

윤부근 사장은 올해 초 열린 CES2015에서 “타이젠을 적용한 2015년형 스마트TV가 미래 삼성이 이끌어갈 사물인터넷시대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2020년까지 삼성전자의 모든 제품이 사물인터넷을 지원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오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