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웅열, 듀폰과 1조 소송 반전기회 잡다  
▲ 이웅열 코오롱 회장 <뉴시스>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5년 동안 괴롭혀온 ‘앓던 이’를 뽑을 수 있을까?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회사의 운명을 걸고 벌이고 있던 듀폰과 특허소송 항소심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미국 법원은 원심을 파기환송하고 다시 재판하라고 판결했다. 그동안 우울한 소식만 들어오던 이웅열 코오롱 회장이 드디어 큰 시름을 덜게 됐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미국 화학기업인 듀폰과 항소심에서 1심판결 파기환송이 결정됐다고 4일 밝혔다. 항소심을 맡은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은 지난 3일(현지시각) 1심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가 합리적으로 제시한 증거를 1심판사가 불합리하게 배제해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미 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새로운 판사가 다시 재판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번 재판은 듀폰이 2009년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폰의 아라미드 섬유 기술을 침해했다며 미국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1심을 맡은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은 듀폰의 손을 들어주며 코오롱인더스트리에 9억1990만달러(약 1조 원)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35만달러(약 3억7천만 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코오롱인더스트리 자기자본의 71%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웅열 회장은 이번 항소심 판결에 따라 부담을 크게 덜게 됐다. 1심에서 이미 판결 확정된 배상금이 이번 파기환송 결정으로 모두 무효화됐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 20년 동안 아라미드 섬유를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는 금지 명령도 함께 무효화됐다. 소송을 시작한 지 5년 만에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았다.


특히 새로 진행될 재판은 새로운 재판부가 맡게 된다는 점이 이 회장에게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파기환송이 결정됨에 따라 이번 소송은 1심을 맡았던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으로 다시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1심을 맡았던 로버트 페인 판사가 아닌 다른 판사가 사건을 맡는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1심 재판부의 불공정성 문제를 계속 제기해 왔다. 로버트 페인 판사가 과거 듀폰의 법률대행 법무법인인 ‘맥과이어 우즈’의 변호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경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재판부와 듀폰의 변호인단이 모두 같은 법무법인 출신인 점을 지적하며 판사기피 신청을 했다. 또 페인 판사가 듀폰 아라미드 생산 공장이 있는 지역 주민들로만 배심원단을 꾸리는 것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요구는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배심원들은 겨우 10시간 동안 협의를 거쳐 듀폰의 손을 들어줬다.


이 회장은 그동안 연이어 터진 악재에 그야말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듀폰과 소송도 감당하기 벅찬데 지난 2월 코오롱 그룹의 자회사인 마우나오션 개발이 운영하는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가 터졌다. 지난달에 건설 관련 입찰담합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코오롱 그룹의 실적도 부진하다. 지주사인 코오롱은 지난해 838억 원에 이르는 순손실을 냈다. 2012년 120억 원의 순손실보다 무려 600억 원 이상 적자규모가 커졌다. 그룹의 간판인 코오롱인더스트리도 흑자는 냈지만 2012년에 비해 실적이 크게 나빠졌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지난해 5조2614억 원의 매출과 2316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2012년에 비해 각각 0.97%와 21.2%씩 줄었다.


실적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불황이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회사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안정적이지만 2012년보다 경기가 부진해 이익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소송의 영향도 컸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2011년 11월 1심 판결이 확정된 이후 2012년부터 분기당 100억 원 가량의 충당금을 쌓아왔다. 지금까지 총 80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는데 이것이 실적에 반영되면서 순이익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이 회장은 이번 소송 승리로 경영상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게 됐다. 더 이상 충당금을 쌓지 않아도 되고 현재 구미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아라미드 섬유의 생산 중단 가능성도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코오롱은 소송 결과에 대해 “앞으로 있을 재심에서 1심 재판에서 배제된 증거들을 제출할 수 있게 돼 전보다 공정한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최종 판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말도 나온다. 듀폰도 이미 앞으로 있을 소송을 단단히 준비하겠다며 독기를 품고 있다. 듀폰은 3일(현지시각) 보도자료를 통해 “연방항소법원의 결정에 실망했다”며 “우리는 코오롱의 책임을 묻기 위해 추적을 계속할 것이며 승리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번 승소는 벌써부터 이 회장과 코오롱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4일 코오롱인더스트리 주가는 전날보다 14.91%까지 급등해 6만900원을 기록했다. 지주사인 코오롱과 다른 계열사들도 일제히 상한가를 기록했다. 한 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항소심 결과는 여러 시나리오 중 가장 긍정적인 것”이라며 “앞으로 진행될 소송에서 코오롱인더스트리의 손해배상 금액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