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단통법 딜레마에 빠져  
▲ 이돈주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담당 사장이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열린 '갤럭시노트4 월드투어 2014, 서울' 행사에서 신제품 '갤럭시노트4'와 '갤럭시노트엣지'를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 블로그>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때문에 삼성전자가 딜레마에 빠졌다.

단통법 시행 일주일 만에 국내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판매량이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이동통신3사들이 단통법 이후 보조금을 크게 축소한 탓이다.

삼성전자의 전체 스마트폰 매출에서 국내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5%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규모로 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

하지만 삼성전자에 국내 스마트폰시장은 매출 비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국내시장은 삼성전자의 안방이자 신제품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특히 삼성전자가 중국시장에서 중국 스마트폰업체에게 밀려 고전하고 있는 마당에 안방에서조차 그동안의 절대적 우위에서 후퇴한다면 심리적 타격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시행되고 삼성전자가 의욕적으로 내놓은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노트4’의 판매량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은 삼성전자를 곤혹스럽게 만든다.

삼성전자는 단통법 시행 이후 불거진 보조금 축소 대란에서 이동통신사에 쏟아지는 비난 만큼이나 거세게 단말기 가격을 내리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단말기 가격을 내리기도 쉽지 않다. 자칫 그동안 어렵게 쌓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더욱이 국내에서 가격을 내릴 경우 그 파급력은 세계로 번지고 이는 곧바로 수익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저가 스마트폰을 내놓아 단말기 가격인하 요구에 부응하고 국내시장을 지키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저가 스마트폰을 지나치게 잘 만들어도 고민이고 그렇다고 형편없이 스펙을 낮추기도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중저가 스마트폰의 스펙을 좋게 할 경우 갤럭시노트4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의 위상을 깎아내릴 수 있다. 그렇다고 스펙을 지나치게 낮추면 하드웨어의 강점으로 승승장구했던 삼성전자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 있다.

◆ 단통법 시행 후 반토막난 판매량

10일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단통법이 시행된 이후 일주일 동안 이동통신 3사의 신규와 번호이동, 기기변경 가입 건수는 모두 17만8천 건으로 나타났다.

이를 토대로 하루 평균 가입건수를 계산하면 약 2만8500건 정도이다. 통신업계는 휴일인 개천절(3일)과 주말(4~5일)을 0.75일로 계산한다.

이 수치에서 일 평균 중고 휴대전화 가입 건수인 3천여 건을 빼면 새 스마트폰 판매량은 하루 평균 약 2만5천 대로 추정된다. 지난달 새 스마트폰이 하루 평균 6만4천 대 정도 팔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40%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단통법 딜레마에 빠져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국내 스마트폰시장에 일단은 빙하기가 찾아온 셈이다. 그렇게 되면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가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하루 평균 4만2천 대를 팔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일 판매량이 2만 대 정도로 줄어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일주일 만에 절반 이하로 판매량이 급감한 것이다.

LG전자 역시 단통법 시행으로 판매량 감소라는 난관을 만났다. LG전자 스마트폰은 지난달 하루 평균 1만3천 대 정도 팔렸지만 이번달에 일 판매량은 평균 4천 대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단통법 이후 보조금 축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며 "갤럭시노트4 등은 해외에서도 워낙 반응이 좋기 때문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거세지는 삼성전자 단말기 출고가 압박

삼성전자의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이 줄어든 것은 통신사가 보조금 규모를 크게 축소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출시된 ‘갤럭시노트4’를 구매하기 위해 10만 원 대 고가 요금제에 가입해도 소비자가 받을 수 있는 통신사 보조금은 10만 원대 초반에 불과하다.

반면 지난해 출시된 ‘갤럭시노트3’의 경우 출시 직후 비슷한 요금제에 거의 공짜폰으로 풀렸다. 이런 차이를 낳는 것이 바로 단통법 시행 이후 크게 줄어든 보조금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이동통신사에 보조금을 더 지급하라고 강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조금 지급 하한선이 없기 때문에 이동통신사들은 최대 34만5천 원 범위 안에서 마음대로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다.

정부는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보조금을 올릴 것을 요청하면서 삼성전자 등 제조사에 출고가 인하 압박에 나선 상태다.

김주한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정책국 국장은 SBS CNBC와 인터뷰에서 “출고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국내와 해외 단말기 가격을 비교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은 2012년 단말기 가격 부풀리기와 관련해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적이 있다”며 “출고가를 인하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도 7일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와 비교할 때 국내 휴대전화 출고가가 높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출고가 인하가 잘 안될 경우 알뜰폰이나 저렴한 외국제품 판매를 돕는 등의 정책적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며 국내 단말기 제조사들을 압박했다.

◆ 출고가 놓고 진퇴양난에 처한 삼성전자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저조한 실적을 낸 탓에 4분기 실적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런데 주력상품인 스마트폰사업 매출이 감소할 경우 반등은 어려워진다.

가장 큰 우려는 판매부진이 계속 이어질 경우 삼성전자가 막대한 재고를 떠안게 된다는 점이다.

IBK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재고를 약 4천만 대로 추정했다. 이승우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갤럭시 판매부진으로 삼성전자의 재고부담이 심해지고 있다”며 “이 물량을 해소하기 위한 비용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역시 재고가 실적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재고처리 비용 때문에 마케팅 비용이 크게 늘어 실적이 저조했다고 설명한 적도 있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재고부담을 피하기 위해 결국 출고가를 내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삼성전자에게 출고가 인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다.

삼성전자가 주력하는 프리미엄시장의 경우 이미 포화상태이기 때문에 가격을 내린다고 해서 수요가 크게 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출고가를 내릴 경우 오히려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브랜드가 지닌 프리미엄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도 가격을 쉽게 내릴 수 없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S 시리즈와 갤럭시노트 시리즈 가격을 90만 원을 전후한 고가로 책정해 왔다. 최신 제품인 갤럭시S5 광대역 LTE-A는 출고가가 89만9800원이고 갤럭시노트4는 95만7천 원으로 책정했다.

국내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출고가를 낮추면 판매가 늘어나긴 할 것”이라며 “다만 이 경우 소비자들에게 경쟁상대인 애플보다 떨어지는 브랜드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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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 첫날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휴대폰 판매 대리점 밀집지역을 찾아 대리점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 애플 아이폰6에 대한 삼성전자의 고민


삼성전자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고민은 국내 출시를 앞둔 애플의 신형 아이폰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애플 아이폰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5%에 불과하다. 삼성전자 제품이 59%로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고 LG전자가 29% 점유율로 그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가 그동안 국내 스마트폰시장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동통신사들이 삼성전자 단말기에 많은 보조금을 지급한 덕분이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반면 아이폰에 상대적으로 적은 보조금이 지급돼 애플의 국내 점유율은 한자리수에 머물렀다.

하지만 단통법 시행 이후 보조금 규모가 크게 축소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삼성전자가 누리고 있던 ‘홈 그라운드의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폰6 16기가바이트 공기계 모델은 현재 일본에서 6만7800엔에 팔리고 있다. 아이폰6 플러스의 경우 같은 용량의 제품 가격이 7만9800엔으로 책정됐다.

이는 갤럭시노트4와 비슷하거나 더 저렴한 수준이다. 게다가 단통법 시행으로 단말기를 자체 구입해 통신사에 가입하더라도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어 실 구매가는 더 떨어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경수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연구원은 “애플이 화면을 키운 아이폰6을 내놓은 만큼 안드로이드 사용자들이 대거 아이폰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국내시장에서도 최대 20%까지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는 출고가를 낮춰 아이폰에 대응할지 혹은 출고가를 유지해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하지만 어느 쪽을 선택해도 선택해도 삼성전자가 입을 타격은 만만찮아 보인다. 단통법이 이런 고민을 안겨줬다.

◆ 중저가 스마트폰은 답이 될까

삼성전자는 새로운 보급형 제품인 ‘갤럭시A’ 시리즈를 준비하고 있다. 갤럭시A는 화면크기에 따라 A3(4.52인치)와 A5(5인치), A7(5.5인치)의 세 가지로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갤럭시A 가격은 기존 중저가제품보다 상당히 저렴할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는 350~500달러 선에서 가격이 정해질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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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시행 첫날인 지난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휴대폰 판매 대리점 밀집지역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뉴시스>
가격은 저렴해졌지만 성능과 디자인은 한층 더 강화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IT전문매체 폰아레나에 따르면 가장 저렴한 A3 모델의 경우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됐던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와 800만 화소 후면 카메라 등이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갤럭시알파’처럼 메탈 디자인이 적용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샤오미처럼 프리미엄급 제품을 초저가에 판매하는 중국업체에 대응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단통법 시행으로 그동안 해외 단말기 제조사들의 국내진입을 막던 보조금 장벽이 사라지면서 중국업체들의 국내진출이 본격화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성능을 높이고 가격을 낮춘 스마트폰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전략이 과연 통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여전히 회의적 시선이 많다.

무엇보다 중국업체들의 제품과 비교할 때 성능이 애매하다는 점이 지적된다. 샤오미의 최신 스마트폰인 ‘미4’의 경우 삼성전자의 플래그십 모델인 갤럭시S5와 성능이 비슷하다. 그런데도 가격은 갤럭시A3 수준인 약 33만 원에 불과하다.

화웨이가 지난달 말부터 LG유플러스의 알뜰폰 자회사인 미디어로그를 통해 국내에 출시한 ‘X3’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떨어진다.

X3는 화웨이가 직접 설계한 옥타코어 프로세서와 2기가바이트 램, 1300만 화소 후면 카메라를 탑재했다.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모델과 견줘도 손색이 없지만 가격은 50만 원 수준이다.

그렇다고 삼성전자가 중저가 스마트폰 제품 성능을 크게 높일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프리미엄급 제품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문제가 발생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들은 중국제품에 대한 불만이 깊기 때문에 중국산 스마트폰은 국내에서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통법이 시행되면 보조금이 줄어 국내 스마트폰 수요가 급감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라며 “해외 제조사들이 저가의 좋은 제품을 들고 국내에 상륙할 것으로 보여 국내 제조사들은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민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