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3일 발표된 정부의 세제개편안, 금융산업 쪽 정책 변화를 살펴보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사안에서 눈이 오래 머물렀다.

새로운 ISA가 생겨서다. 이름하여 ‘생산적금융 ISA.’
 
[데스크리포트 8월] '생산적금융 ISA'가 씁쓸한 이유, "정말 자신 없습니까"

▲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7월30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6년 세제개편안에 대한 사전 브리핑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평소 생산적금융의 취지에 깊게 공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른바 ‘만능 절세 계좌’로 불리는 ISA 앞에 생산적금융이 붙은 걸 보니, 뭐랄까, 정부의 조급함이 느껴졌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생산적금융 ISA가 다음 정부에서도 유지될 수 있을까.

생산적금융은 부동산에 집중된 자금을 첨단산업과 중소벤처기업 육성, 지방발전 등 국가 미래발전을 위한 생산적 영역으로 흐르게 하자는 ‘이재명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이다.

그동안 창조경제, 혁신금융, 상생금융 등 좋은 취지를 지녔지만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슬로건 아래 기존 정책이 사라지는 경우를 숱하게 봐 왔다.

ISA는 기본적으로 중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상품이다. 현행 ISA는 3년을 기본 만기로 하지만 만기를 지속해서 연장할 수 있어 초장기 투자가 가능하다. 이번에 나온 생산적 금융 ISA도 만기를 늘리면 최장 10년까지 투자할 수 있다.

이 같은 중장기 투자 상품에 현 정부의 핵심 금융정책 슬로건이 붙자 만기가 미스매치된 금융상품인 것처럼 어색했다.

생산적금융 ISA를 새로 만들며 기존 ISA의 강점을 없애버린 점은 씁쓸하게 다가왔다.

금융계 종사자에게 ISA는 익숙한 상품일 테지만 일반인에게 ISA는 개인형퇴직연금(IRP), 확정급여(DB)형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 국내시장복귀계좌(RIA) 등과 마찬가지로 접근 난이도가 있는 금융상품이다.

ISA 투자를 위해선 어느 정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국내에 ISA가 도입된 지 10년,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가입자는 꾸준히 늘어 올해 2월 기준 800만 명을 돌파했다.

보통의 투자자들은 적금 하나를 들 때도 자신의 현금흐름과 금리 등을 철저히 따진다.

수많은 이들이 ISA의 혜택과 한계를 본인의 자금 상황과 꼼꼼히 비교해 ISA를 선택했을 텐데, 정부가 갑자기 새로운 ISA를 도입하면서 기존 상품의 혜택을 크게 줄여버린 것이다.

기존 ISA는 생산적금융 ISA가 나오면서 과세이연 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 사실상 ‘초장기’에서 ‘5년’으로 줄었고 연간 납입한도 이연 혜택도 사라졌다. 만능 절세 계좌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국내 증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기존 ISA의 혜택을 줄였다고 바라본다.

기존 ISA는 나스닥, S&P500 등 해외 증시에 투자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생산적금융 ISA는 국내 주식, 국내 주식형 펀드, 국민성장펀드 등 투자 대상을 국내 자산으로 제한했다. 동시에 최장 만기 10년, 총 납입한도 2억 원 등 기존 ISA 대비 계약기간과 총 납입한도를 2배로 부여해 투자자들의 선택을 유도했다.
[데스크리포트 8월] '생산적금융 ISA'가 씁쓸한 이유, "정말 자신 없습니까"

▲ 2026 세제개편안 ISA 관련 변경 사안. <재정경제부>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번 ISA 세제개편안과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기존 ISA를 최장 5년 만기 상품으로 바꿔놓은 것은 물론 새로운 생산적금융 ISA의 투자 대상을 불확실성 높은 국내 자산으로 묶어놨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세제개편안 발표 다음 날인 4일 곧바로 페이스북을 통해 “2026년 ISA 관련 세제개편안은 반드시 백지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재명 정부는 2천만 원 납입한도 이월을 폐지하고 계약 기간을 최대 5년으로 줄여 ISA를 누더기로 만들었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내 투자만 한정하는 생산적금융 ISA를 신설했는데 이 또한 개악으로 전 국민을 '무지성 국장(국내 주식시장)'으로 떠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여당에서도 ISA 관련 세법개정안 백지화 주장이 나온다.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일 페이스북에 “이번 세제개편안은 장기투자를 통해 자산형성을 유도한다는 ISA제도의 근본취지에 반한다”며 “국장투자를 유도하려면 혜택을 더 주는 방식으로 해야지 해외투자의 불이익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이동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 조건에 못 미치는 상품을 제시해 투자자의 기존 혜택을 박탈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해서는 안 된다”며 “자본시장은 신뢰가 가장 중요한 자산인 만큼 이번 ISA 세제 개편안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말 자신 없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6년 3월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과의 대화’에서 스크린쿼터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개봉관의 국내 영화 상영 비중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제하는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하면 한국 영화의 경쟁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한국 영화의 저력을 믿는다며 한 말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6년, 한국은 영화뿐 아니라 드라마, 음악, 음식 등 여러 분야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문화 강국이 됐다.

국내 투자를 유도하고 싶다면 국내 투자만 가능한 새 ISA를 만들고 기존 ISA의 혜택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시장의 기초체력을 튼튼하게 해야 한다. 시장이 튼튼해지면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 투자하지 말라고 해도 투자한다.

생산적금융 ISA를 만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 자신 없습니까.”

국내 증시 활성화를 꾀한다고 퇴직연금제도도 기존 DC형과 IRP의 세제 혜택을 줄이고, 국내 증시에 투자할 때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생산적금융 DC형’과 ‘생산적금융 IRP’가 나올까 걱정돼서 하는 얘기다. 이한재 금융증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