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AI 기업 앤트로픽이 2027년 필요한 D램의 약 20%를 직접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가격 협상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 앤트로픽이 2027년부터 직접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를 구매하는 비중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앤트로픽, 오픈AI 등 AI 서비스 기업이 직접 메모리를 조달하는 구조로 전환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객사 확대로 가격 협상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이와 같은 구조적 변화 속에서 HBM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사업 기회 확대를 노릴 것으로 보인다.

20일 반도체 업계 취재에 따르면 앤트로픽, 오픈AI 등 AI 서비스 기업들이 내년부터 메모리를 직접 구매하는 비중이 본격적으로 높아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매출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엣지워터리서치는 지난 15일 보고서를 통해 "앤트로픽과 오픈AI는 2027년에 직접 메모리 구매를 시작할 것"이라며 "앤트로픽은 2027년 D램의 약 20%를 직접 구매할 것으로 예상되며, 2028년에는 그 비율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앤트로픽의 2027년 전체 D램 직적 구매 수요는 400억~500억 기가비트(Gb) 수준으로, 엔비디아와 비슷한 규모까지 늘어날 것으로 분석됐다.

이처럼 앤트로픽이 직접 구매에 나서는 것은 공급 부족이 심화되고 있는 메모리를 선점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영진 삼성증권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앤트로픽은 마이크론,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전략적 인프라 파트너십을 맺었다"며 "공격적 확장 전략을 펼치는 가운데 반도체 공급망 핵심 기업과 협업은 생성형 AI '클로드' 수요 증가 대응과 안정적 컴퓨트 확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지난해 오픈AI와도 메모리 공급 관련 의향서를 체결했으며, 오픈AI가 주도하는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HBM 주요 공급사로 참여하기도 했다.

오픈AI가 브로드컴과 공동 개발한 맞춤형 AI 반도체(ASIC) '할라페뇨'에는 삼성전자의 HBM4가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 맞춤형 AI 반도체(ASIC) '할라페뇨' 웨이퍼를 들어 보이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왼쪽)와 혹 탄 브로드컴 CEO. <오픈AI>

이 같은 움직임은 AI 서비스 기업이 단순히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매하는 것을 넘어 AI 모델에 맞춰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시스템까지 직접 설계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자체 AI 가속기 비중이 높아질수록 AI 업체가 HBM과 범용 D램 등 핵심 부품을 직접 조달할 유인도 커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처럼 메모리 고객층이 다양화되면서 가격 협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와 같은 GPU 업체가 대규모 HBM을 확보한 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에 공급하는 기존 구조에서는 엔비디아의 가격 협상력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보고서에서 "엔비디아가 메모리를 직접 조달하기 때문에 메모리 업체와 장기계약 및 물량 우대 조건을 협상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일반 시장 가격보다 훨씬 낮은 'VVIP' 가격을 적용받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I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들이 메모리를 직접 구매한다면, 엔비디아도 메모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지는 만큼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측은 "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메모리 공급업체의 가격 협상력이 상당히 강화되고 있다"며 "2027년에 공급하는 HBM4 계약 협상이 시작되면서, 메모리 공급업체들은 상당한 가격 인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함께 강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전망이다.

앤트로픽이 자체 AI 인프라 설계와 핵심 반도체의 직접 조달을 확대하면, 삼성전자는 HBM을 공급하는 동시에 자체 AI 가속기의 파운드리 생산까지 맡는 방식으로 협력을 확대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앤트로픽은 오픈AI와 마찬가지로 자체 AI 가속기 칩 개발을 검토하고 있는데,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2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앤트로픽은 지난 6월 오픈AI의 AI 칩(ASIC) 팀의 초기 구성원이었던 클라이브 찬을 영입했으며, 최근에는 칩 설계 업체들과 협력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