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빅테크 및 클라우드 업체들이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에 따라 선제적으로 물량을 확보하려 장기 공급 계약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황 장기화에 수혜를 볼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공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호황기에 대형 고객사와 장기 판매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가격 협상력과 실적 안정성 등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28일 부품업계에서 입수한 정보를 인용해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의 내년 생산 물량은 이미 거의 다 품절됐다”며 “증설 계획도 보수적”이라고 보도했다.
미국 빅테크 중심의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은 현재 선제적으로 메모리 공급사에 접근해 내년 및 2027년 물량 주문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부분의 업체가 공격적 수준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증설 계획을 세워 둔 상황에서 메모리반도체 물량 확보가 어려워지면 일정에 큰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디지타임스는 “데이터서버 업체들은 AI ‘군비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높은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불하고 있다”며 “자연히 공급사들에 최우선 고객사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2027년 메모리반도체 장기 공급 계획이 2026년 1분기에 모두 마무리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일부 대형 빅테크 업체들은 메모리반도체 제조사들에 선금 지불이나 장비 구매비용 지원 등 조건까지 제시하며 2028년 생산 물량 확보도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 부족이 심각해지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업체의 협상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는 셈이다.
빅테크 기업과 장기 계약 사례가 늘어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유리한 가격을 설정해 수익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실적 안정성을 키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들은 매년 데이터센터 증설에 수백억 달러의 예산을 들일 계획을 세워두고 있는 만큼 반도체 가격이 상승해도 전자제품 제조사 등 다른 고객사들과 비교해 타격이 적다.
디지타임스는 빅테크 업체들이 2026~2027년까지 충분한 재고 물량을 쌓아두겠다는 목표를 두고 있어 실제 수요보다 더 많은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 삼성전자 DDR5 D램 홍보용 사진.
대만 반도체 기업 파이슨일렉트로닉스 CEO는 디지타임스에 “고객사들이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에 현금을 들이밀며 공급 확대를 간청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측을 전했다.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빅테크 및 클라우드 업체들은 그동안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 부족을 병목현상에 가장 큰 원인으로 두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GPU 공급망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며 메모리반도체 물량 확보가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디지타임스는 이러한 시장 변화가 메모리반도체 산업의 사업 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꿔낼 잠재력도 있다고 바라봤다.
그동안 D램과 낸드플래시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를 갖춰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고객사들의 주문을 선제 확보한 뒤 생산 투자에 나서는 모델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TSMC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과 유사한 방식이다.
다만 디지타임스는 메모리반도체 공급사와 장기간 물량 계약을 확보하는 빅테크 업체는 1~2곳에 그치고 대부분의 고객사는 길어야 1년 계약을 맺는 데 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메모리반도체 공급 부족을 선제적으로 예측하고 빠르게 구매 논의를 추진했던 기업들만이 장기 계약 체결에 성공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빅테크와 클라우드 이외 업체는 아예 장기 계약을 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도 제시됐다.
디지타임스는 삼성전자의 새 메모리반도체 공장 건설이 일러도 2027년 하반기로 예상되는 만큼 당분간 공급 능력을 늘리는 데 제약이 클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SK하이닉스 역시 고대역폭 메모리(HBM)를 비롯한 고사양 D램에 투자를 집중하고 있어 낸드플래시 생산 확대 계획은 잡아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앞으로 수 년에 걸쳐 메모리반도체 호황기 효과를 누리면서 고객사들의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는 데 따른 수혜를 볼 공산이 크다.
디지타임스는 “메모리반도체 공급사들이 큰 폭의 생산 확대를 약속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장기 구매 계약은 대부분의 고객사에 꿈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