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금융위원회(금융위)가 영문공시 활성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한 뒤 그 성과에 스스로 후한 평가를 내렸지만 실제 기업들의 영문공시에는 빈틈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 상장사들의 영문공시에서부터 숱한 허점이 발견되면서, 국내 상장사들의 영문공시 정착은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자본시장연구원 주최 ‘자본시장 선진화 세미나’에서 지난해 영문공시의 양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국내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가치제고)을 추진하면서 금융위는 그 방편의 일환으로 영문공시 의무화를 추진했다.
증시의 투명도를 한 차원 올려, 국내증시를 향한 외국인투자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자금을 유입시키겠다는 취지다.
김 부위원장은 “외국인들의 국내증시 접근성을 제고하고 투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영문공시 의무화를 시행했다”며 “그 결과 영문공시 건수가 2023년 175개사 3053건에서 2024년 248개사 4830건으로 약 58%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영문공시들을 확인해 본 결과 절대량의 측면에서는 개선이 이뤄졌지만 질은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어 국내증시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최신 공시는 5월9일자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인데, 이 공시의 영문본(Report on Significant Holdings of Stocks, etc. General)은 첫 페이지부터 국영문을 혼용하고 있다.
이 공시의 핵심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가운데 주요계약체결 주식 등의 수 및 비율이 직전 1.63%에서 2.57%로 늘어났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공시 영문본 하단의 ‘보고사유’에는 “보유주식수 변동”, “보유주식 등에 관한 계약의 변경”이라는 내용이 한글로 그대로 적혀 있다. 공시를 통해 알리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영문으로 바꾸지 않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공시 이곳저곳에서 특별관계자명(삼성생명 등 기업과 그 외 인물 등)은 한글로만 표시돼 있다.
주식보유 목적을 알리면서 "현재 경영에 참가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 없음, 삼성생명보험 특별계정 보유주식은 단순투자목적임"이란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모든 공시가 그런 건 아니다. 영문을 꼼꼼히 체크해 완성도를 높인 공시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금융위가 영문공시 의무화의 성과를 자화자찬할 만큼의 수준으로 봐주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올해 3월11일 공시한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 보고서에도 중요 내용들의 상당수가 한글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외국인투자자는 “가장 중요한 공시가 실적 보고서인데 그마저 한글로 그대로 적혀 있다면 외국인들 스스로 번역기를 사용해 읽으라는 것 아니냐”며 “주요 주주인 기업들의 명칭마저 그대로 한글로 적어 놓으니 일일이 검색해야 하는 판이다”고 말했다.
번역의 질에 대해서도 말이 나온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영문본 공시에서 ‘주주에 관한 사항’을 보면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의 관계는 ‘Largest shareholders(최대주주)’라고 되어 있다. 국문본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과는 엄밀히 말해 다른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생명의 특수관계인이며 그가 지닌 삼성전자 지분은 1.63%이다.
또한 통상적으로 영어에서 비교급 최상급 표현인 ‘-est’를 사용하는 경우, 오직 하나 뿐인 객체를 지칭하므로 복수(shareholders)가 아닌 단수(shareholder) 명사로 표기한다.
국내 최대 증권사이자 글로벌 역량이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는 미래에셋증권의 영문공시 상황도 비슷하다.
미래에셋증권의 최근 공시는 14일자 ‘증권발행실적보고서’인데 여기에 ‘배정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의 내용은 국문공시 것을 그대로 옮겨놨다.
더 나아가 이 공시에서 ‘발행취소에 관한 사항’, ‘자동조기상환’ 등 내용은 영문 아닌 한글 그대로다.
금융위는 영문공시의 양이 방대한 만큼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은 기업들에게 중요 내용을 위주로 영문공시 번역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2026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영문공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밸류업을 야심차게 강조해 온 금융위가 영문공시의 질보다 양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상장사들에 영문공시 의무를 지웠으나 대형사들에서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규모가 작은 상장사들은 더욱 열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
대형 상장사들의 영문공시에서부터 숱한 허점이 발견되면서, 국내 상장사들의 영문공시 정착은 갈 길이 멀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5월8일 자본시장연구원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금융위원회>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8일 자본시장연구원 주최 ‘자본시장 선진화 세미나’에서 지난해 영문공시의 양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윤석열 정부가 국내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가치제고)을 추진하면서 금융위는 그 방편의 일환으로 영문공시 의무화를 추진했다.
증시의 투명도를 한 차원 올려, 국내증시를 향한 외국인투자자들의 관심도를 높이고 자금을 유입시키겠다는 취지다.
김 부위원장은 “외국인들의 국내증시 접근성을 제고하고 투자 매력도를 높이기 위해 영문공시 의무화를 시행했다”며 “그 결과 영문공시 건수가 2023년 175개사 3053건에서 2024년 248개사 4830건으로 약 58% 증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 영문공시들을 확인해 본 결과 절대량의 측면에서는 개선이 이뤄졌지만 질은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어 국내증시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최신 공시는 5월9일자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일반)’인데, 이 공시의 영문본(Report on Significant Holdings of Stocks, etc. General)은 첫 페이지부터 국영문을 혼용하고 있다.

▲ 삼성전자 국문공시(왼쪽)와 영문공시(오른쪽) 비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그런데 이 공시 영문본 하단의 ‘보고사유’에는 “보유주식수 변동”, “보유주식 등에 관한 계약의 변경”이라는 내용이 한글로 그대로 적혀 있다. 공시를 통해 알리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를 영문으로 바꾸지 않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공시 이곳저곳에서 특별관계자명(삼성생명 등 기업과 그 외 인물 등)은 한글로만 표시돼 있다.
주식보유 목적을 알리면서 "현재 경영에 참가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계획 없음, 삼성생명보험 특별계정 보유주식은 단순투자목적임"이란 내용이 한글로 적혀 있다.
모든 공시가 그런 건 아니다. 영문을 꼼꼼히 체크해 완성도를 높인 공시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금융위가 영문공시 의무화의 성과를 자화자찬할 만큼의 수준으로 봐주긴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심지어 올해 3월11일 공시한 삼성전자의 지난해 실적 보고서에도 중요 내용들의 상당수가 한글로 적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외국인투자자는 “가장 중요한 공시가 실적 보고서인데 그마저 한글로 그대로 적혀 있다면 외국인들 스스로 번역기를 사용해 읽으라는 것 아니냐”며 “주요 주주인 기업들의 명칭마저 그대로 한글로 적어 놓으니 일일이 검색해야 하는 판이다”고 말했다.
번역의 질에 대해서도 말이 나온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영문본 공시에서 ‘주주에 관한 사항’을 보면 이재용 회장과 삼성전자의 관계는 ‘Largest shareholders(최대주주)’라고 되어 있다. 국문본의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과는 엄밀히 말해 다른 의미로 읽힐 여지가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삼성생명이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생명의 특수관계인이며 그가 지닌 삼성전자 지분은 1.63%이다.
또한 통상적으로 영어에서 비교급 최상급 표현인 ‘-est’를 사용하는 경우, 오직 하나 뿐인 객체를 지칭하므로 복수(shareholders)가 아닌 단수(shareholder) 명사로 표기한다.

▲ 삼성전자 영문공시에서 특별관계자 목록(왼쪽)과 회사의 개요(오른쪽). 대부분 한글로 표기돼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미래에셋증권의 최근 공시는 14일자 ‘증권발행실적보고서’인데 여기에 ‘배정방법’을 소개하는 부분의 내용은 국문공시 것을 그대로 옮겨놨다.
더 나아가 이 공시에서 ‘발행취소에 관한 사항’, ‘자동조기상환’ 등 내용은 영문 아닌 한글 그대로다.
금융위는 영문공시의 양이 방대한 만큼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우선은 기업들에게 중요 내용을 위주로 영문공시 번역을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2026년부터는 단계적으로 영문공시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밸류업을 야심차게 강조해 온 금융위가 영문공시의 질보다 양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금융위가 상장사들에 영문공시 의무를 지웠으나 대형사들에서부터 주먹구구식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규모가 작은 상장사들은 더욱 열악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