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7일 서울 중구 SK T타워 슈펙스홀에서 열린 ‘사이버 침해 관련 일일 브리핑’에 참석해 머리를 숙이며 국민에 사과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SK텔레콤 이동통신 가입자는 약 2300만 명, 알뜰폰 가입자까지 포함하면 약 2500만 명으로 국민 절반에 가깝다.
지난 4월 19일 SK텔레콤의 해킹 사건 자진 보고로 시작된 전례 없는 국민 유심(USIM) 교체에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달도 안돼 SK텔레콤을 떠나는 가입자가 3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 절반이 이용하는 기간통신 사업자의 네트워크가 단 하나의 백신 프로그램이 설치되지도 않은 채 해커에 무방비로 털렸다는 사실, 더욱이 내 개인정보가 노출돼 언제 어디서든 내 정보로 가짜 유심을 통해 2차 해킹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건을 조사 중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관합동조사단은 지난달 29일 1차 조사 결과, 해커가 SK텔레콤 가입자들의 유심 정보 서버를 해킹해 가입자 전화번호와 가입자 식별 키(IMSI) 등 유심 복제에 필요한 정보 4종을 빼간 것으로 발표했다.
그런데도 SK텔레콤은 근본적인 해킹 해결책인 유심 교체에 예상보다 훨씬 긴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유심 교체 상황을 고려했을 때, 6월까지 고작 600만명 정도만 유심 교체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상황이면 2500만 가입자 유심을 모두 교체하려면 올해 연말까지 기달려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어떻게 국민 절반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지닌 SK텔레콤이 해커의 공격에 이리도 쉽게 무너질 수 있었을까.
그 근본적 원인은 국내 이동통신 시장이 3사 과점 체제로, 경쟁이 거의 필요 없는 시장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1990년 대 초반 당시 김영삼 정부 시절, SK텔레콤이 한국통신(KT)의 이동통신 사업을 불하받으며, 원래부터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시작했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주파수도 가장 좋은 대역을 독차지하며 KT나 LG유플러스에 비해 압도적 경쟁 우위에서 시작했다.
SK텔레콤은 국내 이동통신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단 한번도 1위 사업자 자격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
그동안 국내 이동통신 시장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사가 과점하는 체제로 안착했다. 2025년 2월 말 현재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순위는 SK텔레콤 약 2300만 명, KT 약 1336만 명, LG유플러스가 1천94명만 명 등이다.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1위 사업자를 비롯해 3사 과점 시장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이번 해킹 사태를 낳은 문제의 시작점이다.
더욱이 2014년 박근혜 전 정부 시절, 단통법 도입으로 이동통신사들은 더 이상 가입자 유치를 위한 경쟁이 필요 없어졌다. 누구나 단말기 지원금을 전국 어디서나 동일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단통법 도입으로 국내 이동통신 3사 가입자 유치 경쟁 시대는 막을 내렸다.
그야말로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기존 가입자만 유지하면서 앉아서 매년 수 조원의 이익을 챙기는 구조로 전환됐다.
통신사들은 가입자 유치를 위한 설비투자나 품질 경쟁에 경쟁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없어졌다. 경쟁적으로 가입자를 유치하는 대신 설비투자와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그냥 집토끼(기존 가입자)를 지키며 안정적 수익만 내면 됐다.
![[데스크리포트 5월] 경쟁 사라진 이동통신 시장, 해킹 사태 언제든 또 일어난다](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4/20250430115855_112525.jpg)
▲ 유영상 SK텔레콤 대표이사가 지난 4월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에서 열린 방송통신 분야 청문회에서 유심 해킹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통신 설비투자가 필요 없게 되자, 당연히 각 사업자들은 정보보호 설비투자조차도 소홀히 하는 상황으로 전이됐다.
모든 시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면, 그 시장은 부패하고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이같은 문제는 3사 과점 체제를 어느 정도 인정한 정부의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우선 이번 해킹사태에 대한 민간 합동위원회의 조사가 매우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진행돼야 한다. 국민 절반의 가입자를 둔 기간통신 사업자의 현재 정보보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명확히 밝히고, 다시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게 해야 한다.
혹시나 1위 사업자, 국내 대그룹의 로비로 인해 조사의 투명서이 흐려진다면 정확한 문제를 짚어내지 못하고, 엄청난 기간통신 서비스 마비 사태로 또다시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가장 필요한 조치는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부활하고, 언제든 서로의 가입자를 가져올 수 있는 경쟁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통해 어느 사업자이든 자사 서비스 품질이 낮으면 1위 사업자가 아니라 금방 하위 사업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시장 경쟁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는 제4 이동통신사 인가를 통한 경쟁 구조 구축에 다시 나서야 하고, 경쟁 구도 형성을 위해 제4 이통사에 일정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시장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까지 정부가 이를 지원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단통법이 오는 7월부터 폐지된다. 6월 들어서는 새 정부는 이 기회를 맞아 국내 이동통신 시장의 경쟁을 부활하고, 이를 통해 국민의 이동통신 서비스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며, 사업자로 하여금 설비투자에 적극 나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국가 기간 통신망이 해킹에 언제든 노출되는 등 부실한 모습을 계속 이어간다면 국민 생활 전반은 물론 산업 전반 성장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김승용 산업&IT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