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1조 과징금에도 왜 계속 담합할까  
▲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공사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 대형 건설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한 건설사들에 4천억 원대의 과징금이 지난달 부과됐다. 사상 최대 금액이다.

2012년 6월부터 시공능력평가순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46개 건설사, 100위 밖 건설사를 포함하면 57개 건설사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입찰담합으로 9천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이들 건설사에 대한 비난여론은 거세다. 담합으로 국민세금을 탈취했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건설사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과징금과 입찰제한 등으로 건설사들이 생사기로에 놓여 있다고 하소연한다. 이들은 담합은 분명 잘못이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볼멘소리도 한다. 정부가 담합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 살려달라는 건설사들

“건설업계를 살려주십시오.”

대형 건설사 대표들은 지난달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공사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입찰담합 근절을 약속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자리에 허명수 한국건설경영협회장(GS건설 부회장)을 비롯해 현대건설 정수현 사장, 대우건설 박영식 사장, 대림산업 김동수 사장 등 국내 대형 건설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담합행위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과 공공공사 입찰참가 제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으로 경영에 타격이 크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이들은 “다수의 국책사업이 사실상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주됐지만 국책사업을 차질없이 완수한다는 사명감으로 손실을 감수하면서 공사를 수행했다”며 “건설사들이 불공정 행위로 엄청난 부당이익을 챙긴 것처럼 호도돼 억울한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건설사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며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호소했다.

◆ 누적과징금과 입찰제한으로 생존기로 놓였다고 주장

입찰담합으로 건설업계의 누적 과징금이 9천억 원을 넘어섰다. 인천도시철도 2호선, 4대강 1차 턴키공사, 대구도시철도 3호선, 부산지하철 1호선, 호남고속철도 등이 모두 올해 담합혐의를 받게 됐다.

현재 조사중인 한국도로공사의 터널공사, 한국가스공사의 주배관공사 등이 담합으로 밝혀질 경우 과징금 규모는 1조 원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건설사들의 손해는 과징금뿐만이 아니다. 공정위의 담합판정이 내려지면 곧바로 발주처의 입찰참가 자격제한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으로 이어진다.

  건설사, 1조 과징금에도 왜 계속 담합할까  
▲ 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
경인아라뱃길 공사를 담합한 건설사들은 지난 22일 향후 1~2년간 관급공사 입찰제한 처분을 받았다. 이번 입찰제한으로 예상되는 손실액은 이들 건설사가 지난해 거둬들인 매출액의 20~70%에 이른다.

특히 삼성물산은 올해 8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관급공사 입찰이 금지됐다. 예상 손실금액은 1조8천억 원가량으로 최근 매출액의 6.31%에 이른다. 현대건설도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2015년 1월부터 10월까지 9개월 동안 국내 관급공사 입찰참가 자격을 제한받게 됐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담합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처분으로 회사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며 “공공공사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형건설사도 1년간 수주를 막는다면 타격이 크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부정 건설사로 낙인찍히면 해외사업에도 차질이 생긴다. 대외신인도가 하락해 외국기업과 경쟁할 때 불리하게 작용한다. 지난 4월 노르웨이 오슬로터널 건설공사 발주처는 입찰에 참여한 국내 건설사에 대해 4대강 입찰담합 해명자료를 요구했다.

건설업계 고위 관계자는 “벌써 몇 년째 건설경기 침체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데다 잇단 담합판정으로 수천억 원대 과징금까지 부과되면서 건설업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며 “국내 건설사가 부도덕한 집단으로 낙인찍히면 해외에서까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사업을 진행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크다. 정부가 진행하는 대규모사업을 진행할 여력이 되는 건설사는 국내에 10여 개에 불과하다. 이들의 기술력, 자금력, 인력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대형공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 정부가 정말 담합을 조장할까

입찰담합은 우리 건설업계의 해묵은 관행이다. 수천억 원대의 과징금과 입찰제한을 두려워하면서도 건설사들의 담합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뭘까?

바로 이윤이 남기 때문이다. 경쟁과정에서 벌어지는 소모전을 줄일 수 있고, 공정위에 적발되지만 않으면 상당한 매출을 얻을 수 있다. 적발된다 해도 과징금보다 담합으로 얻는 이득이 더 많기 때문에 건설사들의 담합은 우리 건설업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러나 건설사들의 주장은 다르다. 정부가 애초에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대형공사 수행능력이 있는 건설사가 국내에 10여 개에 불과한 상황에서 정부가 준공기한에 맞추기 위해 한꺼번에 공사를 발주하고, 업체당 수주물량을 제한해 담합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4대강 1차 턴키(설계와 시공 일괄수주) 공사에서 정부는 2011년 말이라는 준공기한을 맞추기 위해 2009년 6월 15개 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했다. 호남고속철도의 경우에도 2009년 7월과 9월 공사 17개를 동시에 발주했다. 그러면서 1공구 당 1개 건설사만 입찰하도록 규정했다.

건설사들은 “어차피 한두 업체가 공사를 다하기 어려우니 무리한 경쟁을 피하자”며 공구를 분할해 입찰담합을 했다.

여기에 시행 14년을 맞는 ‘최저가낙찰제’도 담합을 부추겼다는 지적이다. 최저가낙찰제는 발주처가 책정한 예정 공사비를 기준으로 가장 낮은 가격을 써낸 업체가 낙찰받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건설관리학회가 1998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된 61개 업체의 614개 공공공사에 대한 실행률(계약금액 대비 실행금액의 비율)을 분석해 지난달 15일 내놓은 결과를 보면 최저가낙찰제로 진행된 공사(513건)의 실행률은 평균 104.8%로 나타났다.

이는 1천억 원 공사를 수주해 1048억 원을 실제 투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적자시공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건설사는 일감이 절실하다 보니 수익성이 낮아도 입찰에 나서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소모적 경쟁보다 담합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 건설사들의 주장이다.

  건설사, 1조 과징금에도 왜 계속 담합할까  
▲ 지난달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설공사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대형건설사 대표들이 '공정경쟁과 준법경영 실천선언'을 낭독하고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 자정노력과 제도개선 사이


건설공사 입찰담합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담합문제를 건설사의 부정으로만 몰고 가면 근본적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한국건설경영협회는 최근 신현윤 연세대학교 교수에게 용역을 줘 마련한 ‘입찰담합 근절 및 경영위기 극복방안 보고서’를 발간하고 이를 청와대와 국회, 정부부처에 발송했다.

협회는 “입찰담합은 건설업계의 관행으로 발생한 측면이 있지만, 정부의 정책 및 제도에 의해서 유발된 측면도 있다는 사실이 최근 연구결과로 거듭 확인됐다”며 “입찰담합에 대한 중첩적 규제와 저가경쟁을 유도하고 적정공사비 조성을 어렵게 하는 정부계약제도 및 발주제도 등을 개선해 달라”고 건의했다.

보고서에는 입찰담합에 대한 입찰참가 자격제한 조치는 공공건설시장의 경쟁제한과 해외 수주활동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도 “건설사들이 밀약을 맺은 것은 분명 불법이지만 최저가낙찰제의 특성 아래에서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건설사들이 최소한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입찰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대규모 국책공사를 할 때 구간별로 건설사를 달리할 게 아니라 전체 공사를 건설사 1곳이 맡도록 해야 나눠먹기식 공사배분이 사라져 담합 우려가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격만 보는 최저가낙찰제 대신 최고가치낙찰제로 바꾸고 품질, 기술, 가격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공정위의 잦은 제제에도 담합이 끊이지 않는 데 대해 건설사 스스로 자정노력은 하지 않고 하소연만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책사업팀장은 “건설사의 반론은 건설경기가 침체돼서 그냥 하소연 하는 수준”이라며 “현재 구조는 대형 건설사들이 큰 금액의 공공사업에서 낙찰받기만 하면 상당한 부당이득이 발생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대기업 건설사들이 낙찰료를 받고, 작은 중소건설업체에게 하도급을 줘서 낮은 가격으로 공사하게 해 중간에서 부당이득을 취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