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챔피언 기업’ 키운다, 미국의 삼성전자 TSMC 규제에 맞대응

▲ 중국 정부가 자국의 상위 반도체기업에 지원을 집중하는 새 정책을 도입하며 미국 정부의 규제에 맞서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중국 정부가 화웨이와 SMIC, 화훙반도체 등 주요 자국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지원 정책을 확대하면서 반도체 분야에서 ‘챔피언’ 기업을 육성하는 데 더욱 힘을 싣는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의 중국 투자를 제한하는 요건이 포함된 만큼 반도체 공급망을 더욱 탄탄하게 구축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23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상위 반도체기업들이 정부의 시설 투자 보조금과 연구개발 지원금을 더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인 SMIC와 화훙반도체, 시스템반도체 설계 자회사를 둔 화웨이와 중국 반도체 장비기업들이 주요 대상에 포함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일정 성과 기준을 충족한 반도체 및 관련기업만이 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해당 기업에는 이런 제약을 없애 더 많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한국과 미국, 대만 등 반도체 강국과 벌이고 있는 기술 경쟁이 장기전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예측해 당장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강력한 지원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중국이 이처럼 자국 반도체기업의 육성에 더욱 고삐를 당기는 이유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산업 관련 규제와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움직임으로 볼 수 있다.

바이든 정부가 시행한 대중국 무역 규제와 삼성전자, TSMC 등 대형 반도체기업을 향한 지원 정책이 모두 중국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리스크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화웨이와 SMIC, 화훙반도체 등 시스템반도체 기업은 미국 정부의 수출규제 대상에 놓여 미국에서 반도체 장비와 기술 라이선스, 소프트웨어 등을 사실상 사들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바이든 정부는 이에 더해 일본과 네덜란드 등 반도체 장비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동맹국도 대중국 규제에 동참하도록 하며 압박의 수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미국 반도체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한 반도체 지원법도 중국에 직접적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TSMC 등 기업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신청하면 중국 반도체공장 증설 투자에 제한을 받는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중국 정부가 자국의 챔피언 기업을 키워내 미국 정부의 삼성전자와 TSMC 투자 규제의 영향을 피하려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챔피언 기업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뒤 글로벌 시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좋은 성과를 낸 기업을 의미한다.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 YMTC,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BOE와 같은 중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사와 견줄 만큼 우수한 기술 발전 및 고객사 확보 성과를 보이며 챔피언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중국 반도체 ‘챔피언 기업’ 키운다, 미국의 삼성전자 TSMC 규제에 맞대응

▲ 중국 SMIC 반도체 생산공장 내부 사진.

SMIC와 같은 기업은 28나노 이하 구형 파운드리 공정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차지하며 세계시장에서 지배력을 키우고 있지만 미세공정 분야에서는 아직 상위 기업을 따라잡기 어렵다.

중국 정부가 SMIC와 화훙반도체 등 파운드리 업체를 주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것은 TSMC나 삼성전자 등 선두 기업의 기술을 추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 있다.

화웨이는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스마트폰 프로세서와 인공지능 반도체, 자율주행 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 영역으로 진출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를 받고 있다.

정부 지원을 중점적으로 받게 된 시스템반도체 설계 및 제조업체와 반도체 장비기업이 기술 발전을 통해 시너지를 낸다면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자급체제 구축에 기여할 잠재력이 충분하다.

물론 반도체 선두 국가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 정부의 정책적 지원도 그만큼 강력하게 이어질 공산이 크다.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는 우수 기업을 선정해 지원을 집중하는 중국 정부의 새 산업 정책은 반도체 투자 펀드의 실패를 만회하겠다는 목적도 두고 있다.

중국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목표로 2014년부터 정부 펀드를 조성해 여러 기업들을 폭넓게 지원해 왔다. 해당 펀드의 자금은 60조 원을 웃돌았다.

그러나 펀드 운용을 담당한 여러 공산당 고위 관계자들이 지난해부터 줄지어 부패 혐의로 입건돼 조사를 받기 시작하면서 이런 정책은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점이 확인됐다.

지원 대상이 불분명한 펀드 자금을 두고 고위급 인사의 부패행위가 다수 발견된 만큼 반도체산업 지원 정책에 다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중국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과학기술부가 주도하는 구체적인 반도체 지원 계획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등 반도체 지원 정책에 확실한 절차와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도 도입했다.

다만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정부의 투자 지원이 기술력 향상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며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중국 반도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