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주주연합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에 대해 한진그룹에서 기간을 정해 이사회에서 의안을 상정하겠다고 밝힌 이상 미리 가처분 결정을 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결정을 보류했다.
법조계에서는 주주연합이 상법에 따른 주주제안의 요건을 충족한 만큼 한진그룹이 이사회를 열어 주주연합의 주주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가처분을 신청해도 늦지 않은데 다소 성급하게 진행했다고 본다.
상법상 이사회가 주주제안의 내용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한진칼 이사회의 결정을 보고 법률적으로 대응해도 늦지 않은데 너무 서둘렀다는 것이다.
상법 제363조의2 제3항에 따르면 3%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주주총회 개최 6주 전에 제시한 주주제안이 법령 또는 정관을 위반하지 않으면 주주총회의 안건으로 올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만약 한진그룹이 이사회를 열어 주주연합이 제시한 주주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주주연합으로서는 '주주총회 개최금지 가처분신청'이나 '주주총회 결의취소 가처분신청' 등 단계별로 다양한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었는데 너무 조급했다"고 말했다.
주주총회 개최금지 가처분이란 주주총회의 소집이 법령이나 정관에 위반하거나 법령에 위반하는 사항을 안건으로 하는 주주총회를 여는 것을 중지하도록 법원에 신청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주주제안의 거절, 소집절차의 흠결, 주주총회 안건의 위법성 등을 이유로 사전에 신청하게 된다.
주주총회 결의취소 가처분은 주주총회 결의가 이뤄진 후 그 결의에 위법성이 있을 때 그 효력을 정지시키기 위해 법원에 신청하는 절차를 말한다.
주주연합으로서는 한진칼 이사회 결정 이후 주주총회가 소집되기 전에도 이같은 절차를 통해 충분히 법적 절차를 밟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주주총회가 끝난 뒤에도 한진칼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둘러 의안 상정 가처분신청을 진행했다가 법률적인 다툼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모양새만 구겼다는 것이다.
항공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주주연합이 가처분신청을 통해 조급하게 전자투표 이슈를 부각하려 했다가 실책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다.
주주연합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주주연합의 의결권 지분의 차이가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한진그룹을 압박해 주주연합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서둘러 가처분신청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한진칼 주주명부가 폐쇄된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조원태 회장 측 지분은 33.45%, 주주연합의 지분은 31.98%, 소액주주는 약 30%의 지분을 쥐고 있어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중요하다.
하지만 주주연합이 반전의 계기로 삼고 있는 주주총회 전자투표 도입도 이번 주총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달 말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는 기존 한진칼 정관에 따라 열리기 때문에 전자투표 없이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주주연합은 가처분신청에서 정관변경을 통해 다음 주주총회부터 전자투표를 도입하자는 주주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항공업계 일각에서는 주주연합이 이번 가처분신청을 여론전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시선도 나오고 있다.
허희영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주주총회에 전자투표를 적용할지 여부는 한진칼 이사회의 재량인데 반해 주주총회의 안건으로 전자투표를 도입하는 것은 법률에 따라 처리된다는 점에서 구별해야 한다”며 “주주연합으로서는 가처분신청을 통해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전자투표 이슈를 부각해 조원태 회장 쪽을 압박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진그룹은 이번 주주총회에 전자투표를 적용할지 여부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한진그룹 관계자는 “이번 주주총회에 전자투표를 적용할 것인지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지만 주주제안으로 제시된 전자투표 관련 정관 변경의 안건은 법적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