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갑 리더십 흔들, 현대중공업 노사갈등 해법 못찾아  
▲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왼쪽)과 정병모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현대중공업 노사관계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해가 바뀐 지 한 달이 넘도록 임단협 타결을 이루지 못하고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첫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뒤 교섭조차 재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회사측의 추가 구조조정 관련 문건까지 등장하면서 불신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지역 정치권과 노동단체들은 해결을 촉구하며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권오갑 사장에게 고스란히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권 사장은 현대중공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기용됐지만 그에 걸맞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 잠정합의안 부결 뒤 본교섭 재개 놓고 노사 이견 대립

5일 현대중공업에 따르면 노조는 이날 대의원 대회를 열어 임단협 관련 쟁의대책위원회를 새로 구성했다. 이 자리에서 13명의 분과장이 선출됐으며 이들은 각 분과를 대표해 쟁의대책위원회 위원 자격을 갖도록 했다.

노조는 이어 열린 쟁의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임단협 관련 새 행동지침과 투쟁지침을 정하기로 했다. 이날 회의는 지난달 7일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뒤 처음 열리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추가 파업 등도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뒤 아직까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에 본교섭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회사는 실무교섭을 제안하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노사는 두 차례에 걸쳐 실무교섭을 갖기도 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막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회사가 교섭요구에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 관계자는 “교섭재개 요청에도 응답하지 않는 것은 노조의 새로운 요구를 의도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이라며 “교섭중단이 장기화하면 대규모 집회를 열고 경우에 따라 파업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해 12월31일 첫 잠정합의안을 도출해 내기 전 4차례에 걸쳐 부분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회사는 노조가 본교섭 재개를 요청하면서도 날짜를 공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응답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만큼 실무협의를 통해 본교섭에서 논의할 안건을 먼저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구조조정 여파로 불신의 골 깊어져

노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현대중공업 노사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쟁점이 되고 있는 임단협 협상 외에도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온 구조조정 여파로 불신이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노조는 지난 4일 배포한 소식지에서 2, 3차 구조조정 계획이 담긴 문건을 공개했다. ‘경영진단 의견서’라는 제목의 이 문건은 “최고경영층의 의지를 적극 반영했으며 1차보다 신속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각 사업본부는 대상자 선정작업에 만전을 기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회사는 이 문건에 대해 “출처가 불분명한 괴문서”라며 작성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노조가 공개한 문서에 2차와 3차 정리해고 대상은 근무부서와 근속연수 등 구체적 요건까지 나열돼 있어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문건에 따르면 2차 정리해고 대상은 근속연수가 오래된 사무직 여성, 3차는 14년 이상 근무한 차장 및 부장급으로 돼 있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과장급 이상 일반직 사원 1500명을 희망퇴직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 적이 있다. 사무직 직원들은 지난달 28일 사무직 노조를 설립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추가 구조조정 문서 파문은 진위와 관계없이 가뜩이나 꼬일 대로 꼬인 노사관계를 더욱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을 것으로 전망된다.

◆ 노사관계 해결 목소리를 높이는 지역사회

현대중공업 노사문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이면서 업계에 미칠 파장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 노조와 전국금속노조 5개 지회는 이달 말경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를 출범한다. 조선업 위기 극복을 위해 구성되는 것으로 정병모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이 공동대표를 맡는다.

정 위원장은 1987년 대투쟁을 주도한 인물로 강성으로 분류돼 왔다. 조선노조연대는 개별 사업장에 국한하지 않고 조선업 전체 노동자를 대표해 회사는 물론이고 정부정책에 대한 압박수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 본사가 있는 지역사회도 노사관계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울산시당은 지난 3일 논평을 내 “현대중공업 일반직노동조합의 결성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울산시당은 “현대중공업이 사내유보금이 15조 원인 굴지의 대기업인 만큼 고통을 분담하더라도 사원들과 함께 파고를 넘는 영광을 선택하라”고 촉구했다.

울산시의회는 현대중공업 노사문제에 울산시의 중재를 촉구하기도 했다.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4일 현대중공업 노사갈등으로 야기된 고용시장 불안 등을 해소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울산시가 중재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