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의 모든 것] 사전 상속 포기 각서, 당신이 몰랐던 불편한 진실

▲ 공증을 받으면 뭔가 강력한 법적 구속력이 생긴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사진은 부산 동구 부산역에서 가족을 마중 나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녀를 반기며 걸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70대 아버지를 둔 삼 남매가 있었다. 아버지는 건강이 나빠지자, 장남에게 사업체를, 나머지 두 자녀에게는 현금을 조금씩 주면서 조건을 붙였다.

"너희에게 나중에 상속은 없다. 지금 받은 것으로 끝이다." 차남과 딸은 각서를 썼다. 공증인 사무실에서 공증까지 받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두 사람은 마음이 바뀌었다.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의 첫마디는 간단했다.

"그 각서, 효력 없습니다." 그 한마디에 오랜 기간 쌓아 온 가족 간의 약속이 무너졌다. 아니, 정확히는 처음부터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약속이었다. 공증 비용만 날린 셈이었다.

이런 사례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 필자는 상속 전문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런 종류의 분쟁을 수도 없이 봐 왔다. 공통점이 있다. 분쟁의 씨앗은 항상 사전에 심어져 있었고, 정작 그 씨앗을 심은 사람들은 자신이 분쟁을 예방하고 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 공증받아도 무효, 변호사가 써줘도 무효.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공증을 받으면 뭔가 강력한 법적 구속력이 생긴다고. 그러나 공증은 서명의 진정성을 확인해 주는 절차일 뿐이다. 즉, 내가 그 서류를 작성했다는 것들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용 자체가 법률상 불가능한 것이라면, 공증은 그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지 못한다. 아무리 그럴듯한 형식을 갖춰도, 법이 허용하지 않는 내용은 허용되지 않는다.

민법 제1019조는 단호하다. 상속의 승인과 포기는 '상속개시 있음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만 할 수 있다. 상속개시란 피상속인의 사망이다.

부모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동안에는 법률상 상속 포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대법원은 수십 년째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상속 개시 전에 이루어진 상속 포기·유류분 포기 약정은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각서를 쓴 날 이미 그 종이는 법적으로 아무 의미가 없었다. 상속이 개시된 뒤, 차남과 딸은 상속권과 유류분을 주장할 수 있다. 각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막을 수 없다. 반대로 각서를 믿고 아무런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장남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 왜 법은 이렇게 설계되어 있는가

단순한 절차 규정이 아니다. 이 법리의 배경에는 약자 보호라는 철학이 숨어 있다. 부모가 살아 있는 동안 자녀는 상속재산의 규모도, 숨겨진 채무도, 앞으로의 변화도 알 수 없다.

그 불확실한 상태에서 미래의 권리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경제적 우위에 있는 부모나 다수 형제의 압박으로 약자가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구조가 발생할 수 있다.

필자는 민법의 제정자들이 민법을 만들 때, 그렇게 깊은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민법은 위와 같은 불합리한 사전 강제를 차단하고 있다. 

다만 예외가 하나 있다. 각서 안에 "이미 받은 재산이 있다"라는 사실이 명시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살아남는다. 예를 들어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사업자금을 받아 가면서 각서를 작성했다.

그 각서에는 “김갑동의 큰아들 김일남은 아버지 김갑동으로부터 5억 원을 받고, 앞으로 받을 상속권을 포기한다.”라는 내용이 있다. 이 경우, 상속 포기의 효력은 없지만, 생전 증여 사실을 인정한 증거로서 기능한다. 김일남이 김갑동으로부터 5억 원을 미리 받은 사실이 인정되는 것이다. 

이는 상속 개시 후 특별수익 산정이나 기여분 조정에서 해당 상속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처음 기대한 효과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각서가 작성자를 오히려 옥죄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칼날이 방향을 바꿔 자신을 향하는 것과 같다.

◆ 상속 각서와 이혼 재산분할 각서, 무엇이 다른가?

비슷한 경우가 있다. 바로 재산분할 각서다. 이혼을 하기 전에, 혹은 부부싸움을 심하게 한 뒤에 부부가 재산분할에 관한 각서를 미리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 "이혼하면 나는 재산분할을 청구하지 않겠다"라는 내용이다. 이것도 사전 포기 각서다. 그렇다면 이것도 무효인가. 답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이다. 그리고 이 차이가 상속 포기 각서와 다른 점이다. 

사전 상속 포기 각서는 원칙적으로 무효다. 예외가 거의 없다. 그러나 사전 이혼 재산분할 포기 각서는 조건을 갖추면 예외적으로 유효가 인정될 수 있다.

하급심 판례는 다음과 같은 경우 유효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다. 협의이혼이 실제로 성립하고, 부부 공동재산 전부를 청산·분배하려는 의도 아래, 재산의 범위와 액수, 쌍방의 기여도, 분할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협의한 경우다. 즉, '막연히 포기한다'가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나눌지'를 꼼꼼히 정한 후 그 합의의 일환으로 포기한 경우라면 법원이 유효로 본 사례가 있다.

반면 협의이혼이 성립하지 않고 재판상 이혼으로 진행되거나, 혼인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그 각서는 조건 불성취로 효력을 잃는다. 재산분할청구권은 다시 살아난다. 결국 같은 '사전 포기 각서'라도, 상속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무효이고, 이혼 재산분할에서는 조건부로 유효 가능성이 열려 있다. 

◆ 상속포기각서 대신, 이것을 해야 한다

첫째, 공정증서 유언을 작성한다. 공증인 앞에서 작성하고 원본이 공증 사무소에 보관된다. 위조도 분실도 없다. 피상속인의 의사를 사후에 법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유언으로 특정 상속인에게 더 주거나 덜 줄 수 있고, 유류분 범위 안에서는 그 의사가 최대한 존중된다. 각서 한 장보다 공정증서 유언 한 통이 법적으로는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둘째, 생전 증여를 하되 반드시 서면으로 특별수익임을 명시한다. 특정 자녀에게 재산을 미리 이전할 때, 단순 증여가 아니라 상속분의 선급임을 명확히 기재한 가족 간 서면 계약을 남겨야 한다.

증여 금액, 시점, 목적, 그리고 이것이 상속분을 선급한 것이라는 문구까지 담아야 한다. 이것이 있으면 상속 개시 후 분배 조정의 강력한 근거가 된다. 각서는 상속 포기 효력이 없어도, 이런 서면은 특별수익의 증거로 살아남는다.

셋째, 상속이 개시되면 3개월을 절대 넘기지 않는다. 진짜 상속 포기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사망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상속 포기 심판을 청구해야 한다. 3개월은 짧다. 장례를 치르고 정신을 차리다 보면 훌쩍 지나간다. 반드시 법률 전문가와 즉시 상담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가족 간의 약속을 종이에 남기는 것은 신뢰의 표현일 수 있다. 그 마음 자체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법은 신뢰 위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법이 정한 형식과 시점 위에서만 작동한다.

각서를 믿었던 사람은 결국 소장을 받아 들고서야 깨닫는다. 믿어야 할 것은 가족의 서명이 아니라, 법이 인정하는 절차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깨달음은, 언제나 너무 늦게 찾아온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