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성전자와 인텔이 2나노 반도체 양산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대만 TSMC의 AI칩 파운드리 독점체제도 흔들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TSMC는 현재 AI 칩에 사용되는 5나노, 3나노 등 첨단 파운드리 공정에서 90% 이상의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AI 연산 인프라 수요가 폭증하고 있어 TSMC의 생산량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파운드리 고객사 입장에서도 가격협상력 강화와 지역 리스크 완화를 위해 공급망을 다각화할 필요가 커진 만큼, 삼성전자와 같은 후발주자에게도 대형 수주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인텔은 9일(현지시각) 18A 공정으로 만든 차세대 노트북용 프로세서 ‘팬서레이크’를 선보이며, 오랫동안 뒤처졌던 첨단 반도체 제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했다.
인텔 18A는 2나노급 공정으로, 기존 인텔3 대비 와트당 성능이 최대 15% 향상되고 칩 밀도가 30% 개선됐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TSMC와 삼성전자를 제치고 세계 최초로 2나노급 반도체 양산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인텔 최고경영자(CEO) 립부 탄은 18A 증설을 ‘최우선 과제’로 규정했으며, 이를 통해 인텔은 칩 공정 혁신의 최상위권으로 복귀해 TSMC와 다시 경쟁하게 될 것”이라며 “계획대로 실행된다면 인텔의 (파운드리) 경쟁력 회복 스토리에서 진정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도 2나노 공정으로 모바일 프로세서(AP) ‘엑시노스2600’의 양산을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2나노 수율은 최근 50% 수준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올해 말 수율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2026년 초 출시될 갤럭시S26 시리즈에 탑재되는 ‘엑시노스2600’은 이르면 10월 말 첫 양산 발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빈 삼성증권 연구원은 “엑시노스2600의 플래그십(갤럭시 스마트폰) 탑재와 파운드리 반등은 올해보다 내년 삼성전자의 이익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인텔은 자체 제품 양산을 통해 2나노 파운드리 수율과 경쟁력을 끌어올린 뒤, 외부 대형 고객사로부터 수주를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 2나노 파운드리 공정으로 테슬라로부터 약 23조 원 규모의 차세대 AI칩 ‘AI6’ 칩 수주에 성공했으며, 2027년부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에서 양산에 들어간다.
인텔은 올해 9월 엔비디아로부터 50억 달러(약 7조 원)의 지분투자(4%)를 받으며, 엔비디아와 2나노 파운드리 협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TSMC는 이미 애플, 퀄컴, AMD,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로부터 2나노 파운드리 물량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3나노의 성공을 기반으로 2나노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는 셈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기준 TSMC의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71%에 달한다. 하지만 5나노 이하 첨단 AI 칩 시장에서는 90% 이상의 점유율로 사실상 독점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 인텔의 18A 반도체 공정으로 노광 작업을 거친 반도체 웨이퍼 모습. <인텔>
삼성전자는 게이트올어라운드(GAA) 트랜지스터 기술을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에 도입한 경험, 인텔은 ‘파워비아(후면 전력전달 기술)’을 2나노에 선제 도입한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엔비디아와 AMD 등 빅테크 기업들은 파운드리 공급망을 다각화해 TSMC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TSMC는 2나노 가격을 웨이퍼 한 장당 3만 달러로 책정해, 3나노 공정 대비 50% 인상할 예정이다.
또 구글과 브로드컴 등 자체 AI 칩 생산에 나선 기업들은 생산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TSMC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배정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같은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2나노 AI 칩 생산을 TSMC가 아니라 삼성전자나 인텔 파운드리에 맡길 수 있다는 것이다.
AI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점도 삼성전자와 인텔에게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반도체설계 기업 AMD는 최근 오픈AI와 수십억 달러 규모의 대규모 AI 칩 공급 계약(2029년까지 6GW 공급)을 체결했다. 6기가와트(GW)는 미국 가정 약 500만 가구의 전력 사용량과 유사한 수준으로, 이번 계약은 AI 인프라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시장조사업체 포춘비지니스인사이트에 따르면 글로벌 AI 칩 시장은 2032년까지 연평균 37.7%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기존 TSMC의 생산량만으로는 이와 같은 AI칩 수요 증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AI 투자 낙관론에도 다시 불이 붙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8일(현지시각) CNBC와 인터뷰에서 “2000년 당시 인터넷 기업 전체 가치를 합쳐도 400억 달러 수준이었지만, 지금 AI 인프라를 구축하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이미 2조5천억 달러의 실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며 “우리는 수조 달러 규모의 거대한 전환기에 이제 막 수천억 달러를 투입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일각에서 나오는 AI 거품론을 정면 반박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