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로 로스쿨 교수 선택,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동 거나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로 법률전문가이자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를 임명했는데 오랜 숙제인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겠다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가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를 선임사외이사에 선임한 것을 두고, 7년 전에 실패한 지배구조 개편에 다시 한 번 드라이브를 걸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오랫동안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정의선 회장은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서도 현대모비스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0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현대모비스가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를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에 임명한 것에는 정의선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 의지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자동차그룹은 27일 선임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사외이사들을 대표하는 선임사외이사를 선출해 사외이사의 권한과 역할을 강화하는 제도다.

국내 법령상 비금융권 기업은 선임사외이사 제도 도입 의무가 없다. 그럼에도 현대차그룹은 삼성, SK, 롯데그룹에 이어 네 번째로 선임사외이사 도입을 결정했다.

선임사외이사를 선임한 계열사는 모두 세 곳이다. 현대차는 심달훈 전 중부국세청장을, 기아는 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현대모비스는 김화진 교수를 선임사외이사로 임명했다.

특히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를 맡게 된 김화진 교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제도 도입을 놓고 사외이사의 경영진 견제 기능을 강화해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가 균형 잡힌 결정을 하는 체제를 갖추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대모비스가 그룹에서 맡고 있는 역할과 함께 김 교수의 경력을 살펴보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시각도 배제할 수 없다.

김 교수는 2022년 3월부터 현대모비스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당초 올해 3월이 임기 만료 시점이었지만 재선임되면서 2028년 3월까지 사외이사를 맡게 됐다. 현재 현대모비스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5명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사외이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하버드대학교 법과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뮌헨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법률전문가이자, 대표적인 기업지배구조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아시아기업지배구조포럼 의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국민연금공단 지배구조개선 자문위원회 위원장도 맡고 있다.

김 교수는 3년 동안 현대모비스 사외이사를 맡았던 만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에 누구보다 밝은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를 고려하면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로서 향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정의선 현대모비스 선임사외이사로 로스쿨 교수 선택,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동 거나

▲ 현대모비스 지분은 30일 기준으로 기아가 17.66%, 현대제철이 5.92%, 현대글로비스가 0.71%를 가지고 있다. 정의선 회장이 계열사들의 현대모비스 지분 모두를 확보하려면 29일 종가인 25만6500원 기준으로 5조7939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정 회장에게 지배구조 개편은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과제다.

그룹 총수에 오른 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보다 지배력이 낮은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의 순환출자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율은 0.33%에 불과하다. 정 회장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현대차그룹 계열사들 가운데 현대모비스 지분율이 가장 낮다.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합해도 7.62% 밖에 되지 않는다. 정 회장의 그룹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분 정리가 필수인 셈이다.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것도 정 회장이 안고 있는 과제다. 국내 30대 그룹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가지고 있는 곳은 현대차그룹이 유일하다.

현대차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를 투자·핵심부품 사업과 모듈·사후서비스(AS) 사업으로 나누고 모듈·AS 사업회사를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기관 투자자들의 반대로 실패했다.

한 번 실패한 방법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현대모비스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한 뒤, 정의선 회장이 현대글로비스, 현대엔지니어링, 보스턴다이내믹스 등 계열사들의 개인 지분을 활용해 현대모비스 투자회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 방법을 활용하면 현대모비스 투자회사가 지주회사가 되는데,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현대차그룹에서 현대캐피탈을 떼어내거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 등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정 회장이 직접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 지배력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막대한 자금을 필요하다는 문제가 있다. 현대모비스 지분은 30일 기준으로 기아가 17.66%, 현대제철이 5.92%, 현대글로비스가 0.71%를 보유하고 있다.

정 회장이 계열사들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모두를 확보하려면 30일 종가인 26만7500원 기준으로 6조423억 원 정도가 필요하다.

세가지 시나리오 모두 현실화하기 쉽지 않은 만큼, 김화진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다른 묘수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선임사외이사는 사외이사들을 대표해 경영진에 경영 자료와 현안 보고를 요청할 수 있다. 따라서 일반 사외이사일 때보다 지배구조를 더 수월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인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