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순 Global Watch] 우크라이나 전쟁, 시장과 전장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수도원에서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우크라니아 전쟁 초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전황에 대한 터무니없을 정도의 왜곡이었다. 그리고 그 왜곡보도의 물량공세였다.

한 언론 감시단체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관련 보도는 이라크 전쟁 때보다도 많았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짧은 기간 내에 이토록 많은 거짓말들이 쏟아져 나온 전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단순한 오해나 무지가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 존재하며, 그것을 가능케하는 특정한 정치적 이성이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해도 여전히 우크라이나 관련 보도에는 설명하기 힘든 기괴한 측면들이 존재한다. 이제는 완전히 허구로 밝혀진 키에프의 유령(공중전에서 러시아 공군기를 수없이 격추시켰다는 영웅)은 현대 공중전에 대한 기초적 상식만 있어도 거짓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지금이 무슨 단엽기나 제로센 전투기로 하늘을 누비던 시대도 아니고, 장비가 첨단인 쪽이 무조건 승리하는 현대전에서 조종사의 역량이 승패를 좌우한다는 신화를 그래도 읊조리는 것은 지능을 의심해봐야 할 문제다.

개전 초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는 재블린 로켓포는 어떨까? 역시 사실이 아니다. 재블린은 러시아의 T72탱크를 파괴하지 못한다. 적어도 한 발로는 안된다. 최소한 2-3발을 명중시켜야 파괴 가능하다.

그러면 유튜브에 올라온 그 수많은 T72 탱크 잔해들은  우크라이나 군의 주력 탱크도 T72다. 러시아에도 시간은 많고 애국심은 넘치는 오타구들이 넘치는지 우크라이나 군이 파괴했다는 러시아 탱크 영상을 일일이 분석해서 사실은 그게 거의 다 우크라이나군 일련 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병사들 스스로 재블린 불량율이 너무 높다는 트윗이나 인스타그램도 넘친다(배터리 불량이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재블린이 중갑차에게는 효과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크라이나어로 된 매뉴얼이 없어서 제대로 사전 훈련을 받지 못한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전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기괴한 코미디는 러시아군이 키예프 점령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러시아는 키예프를 점령하려고 시도한 적이 없다. 개전 초기에 키이우 코 앞까지 러시아군이 진격하지 않았느냐고? 맞다. 그런데 그건 점령이나 전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무력 시위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성동격서 전술의 일환이었다.

1차 대전 이후에 군사학에서 거의 규범처럼 고정된 전술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40:1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민간인 40만 명인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는 1만 명의 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키예프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키예프 외곽까지 진격했던 러시아 군의 병력 규모는 약 2만 명이다. 150:1의 비율이다.

게다가 보급 라인도 전혀 갖추지 않았다. 만일 러시아군 수뇌부가 이 정도 병력 규모로 정말로 키예프를 공격하려고 생각했다면 그건 미친 놈이라고 봐야 한다. 다시 말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가 키예프를 점령하려고 했다면 최소 8만 명의 병력을 투입했어야 한다.

러시아의 1차적 목표는 돈바스 지역에 있었다. 러시아가 기습적으로 키예프 코 앞까지 진출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군은 돈바스로 병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키예프 방어를 위해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러시아 군은 돈바스 공격을 위한 병력 배치를 마쳤고 주요 보급 기지를 파괴했다. 개전 1주일 만에 우크라이군은 돈바스 지역으로 군대와 장비를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돈바스 일대의 우크라이나 병력은 독(cauldron) 안에 든 쥐가 되어 버렸다.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작전 제 1단계다(쇼이구 국방장관의 표현을 빌자면). 1단계에서는 병력 배치를 마치고 보급 기지와 레이다 기지를 파괴하고 ‘위험 시설’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위험시설은 우크라이나 곳곳에 퍼져있는 생물학 무기 연구소와 우라늄 보관시설을 의미한다.

개전 초기에 러시아 군이 체르노빌에 진주한 것을 두고 비난이 쏟아졌었는데, 러시아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스스로 핵 무장 필요성을 주장했기 때문에 러시아로서는 원자력 발전소에 보관 중이던 플루토늄을 일차적으로 제거했다(러시아가 가져갔다.

5월 말에 다보스 포럼에 참석한 국제원자력 기구 의장이 우크라이나가 가지고 있던 30톤의 우라늄과 플루토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이 정도면 수백기의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병력도 이 같은 전술적 목적에 맞춰 구성되어 있다. 지난 4월에 미국의 정보장교가 러시아군은 전체 전력의 5%만을 투입했다고 한숨을 내쉬었는데, 거의 정확한 평가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후방의 특수 시설 및 레이다 기지 파괴 등을 위해서는 특수부대(공수특전단)를 보냈고, 돈바스 일대에는 B급 전력의 평범한 일반 사단만을 배치했다. 즉, 우크라이나에 진격한 러시아 부대는 정예부대가 아니다.

러시아의 정예부대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부대보다는 훨씬 장비가 우월하다(T90 탱크로 무장되어 있다. 5월 들어 처음으로 T90이 배치되었다고 러시아군이 발표했는데 이는 실전 연습용인 것으로 보인다). 2단계는 돈바스 지역의 완전 점령(이른바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잇는 land bridge의 완성)이며,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에 우선적 목표를 둔 것은 거기에 우크라이나 정예군과 신나치 민병대 조직이 집결해 있기 때문이었다. 돈바스 지역의 우크라이나군이 붕괴되면,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남은 전력이 거의 없다.

필자는 우크라이나 군과 신나치 민병대 조직을 분리해서 언급했는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형식상 신나치 민병대 조직(한국에도 잘 알려진 Azov Battalion. 그외에도 Aida battalion 등 몇 개 더 있다)은 우크라이나 정규군에 편제되어 있지 않다. 공식적으로 내무부 산하 무장조직이다. 법률상으로는 굳이 따지자면 경찰군에 가깝다.

거기에도 이유가 있다. 2014년 메이단 봉기 이후에 돈바스 일대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탄압한 것은 Azov Battalion을 비롯한 신나치 조직들이었다. 표현은 남들도 다 신나치 조직이라고 하니까 신나치라고 쓰기는 하는데 차라리 광적인 사적 폭력집단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하기는 하다(뿌리 중의 하나가 축구 훌리건들이다).

이들의 만행이 어느 정도였냐면 메이단 직후 러시아계 주민들이 오데사에서 반메이단 시위를 벌인 적이 있었다. Azov 멤버들은 이들을 무차별 폭행 살해했으며 시위대가 오데사 노조 건물로 피신하자 건물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나오는 사람들을 사살했다. 나머지는 산 채로 불에 타 죽었다. 50여 명이 사망했다. 살인 강간 약탈 방화 등 영화에서도 보기 역겨울 온갖 만행을 다 저질렀다.

세계가 Azov Battalion을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민주주의 영웅’으로 찬송하는 것은 기괴함을 넘어서 비참할 정도의 일인데, 오죽하면 미국조차도 하원에서 Azov Battalion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해 지원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였다.

2016년 초 이 법안이 폐기되고 그 직후 미국 상원의원 둘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Azov 멤버들과 다정한 사진을 찍었다. 군산복합체의 정치적 대리인이자 전세계 분쟁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 멕케인과 린지 그라함이었다.

이 일을 두고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도 비난이 쏟아졌었다. 러시아계 주민들은 이 같은 탄압에 반발하여 자치 독립을 추구했고,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자 우크라이나 군 소속 러시아계 병사들이 탈영해서 자체 반군조직을 만들었다.

심지어는 일개 대대가 통째로 반군으로 넘어간 적도 있다. 이들이 지금 돈바스에서 싸우고 있는 루한스크 자치공화국, 돈바스 자치 공화국 군사들이다. 러시아의 발표에 따르면 Azov Battalion의 포격으로 2014년부터 올 초까지 8년 사이에 돈바스 지역에서 1만3천 명의 시민이 사망했고, 1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인간의 기억력은 짧고 언론인의 기억력은 특히나 더 짧고 구글 검색조차 안 해볼 정도로 게으르긴 하다.

Azov Battalion은 1920년대 북서부 우크라이나를 중심으로 한 OUN 조직을 계승하고 있다. OUN은 스탈린이 소련 적백 내전 이후 우크라이나 공화국을 만들던 시기에 갑자기 나타난 민족주의를 주장하고 나선 극렬 조직이었다. 30년대 후반부터 독일 나치의 하수인으로 들어가 2차 대전 중 약 10만 명의 폴란드 인을 학살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라는 민족이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헝가리, 폴란드, 슬라브족 등이 국가를 형성하지 못 한 채 흩어져 살던 지역이었고, 10세기 무렵 동유럽을 휩쓸던 스웨덴 바이킹의 일부가 키에프 지역에 정착하여 지배층을 구성하면서 슬라브족을 흡수하여 도시를 세웠고 점차 남부로 세력을 확대했다. 그 도시의 이름이 ‘Rus’였다. 러시아라는 명칭이 여기에서 나왔다.

러시아의 뿌리라고 해서 그곳이 여전히 러시아 땅이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라는 국가(소비에트 연방 내의 공화국)를 만들고 영토 경계를 확정한 것은 ‘우크라이나’인이 아니라, 스탈린이었으며 2차 대전 직후 확정되었다.

물론 ‘민족’이라는 것은 편의적으로 참으로 쉽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미국도 영국 식민지로부터 벗어나려던 독립전쟁 당시 이미 ‘american nationalism’ 인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독립전쟁 당시의 미국인들은 실은 신대륙으로 이민 온 영국인들일 뿐인데, 이미 자신들을 영국인들과는 다른 민족, 종족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주의)은 가공의 허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허구가 죽이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 허구로 이득을 보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많을 것이다.
 
[이공순 Global Watch] 우크라이나 전쟁, 시장과 전장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서쪽으로 약 60Km 떨어져 있는 빵공장과 인근 주택이 완전이 파괴돼 있다.

그렇다면 전쟁 초기의 서구의 그 놀라운 압도적인 ‘선전전’은 어찌된 것일까? 전황이 어떤지 몰랐던 것일까? 전황에 대해서는 미국과 독일의 평가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처음부터 우크라이나가 상대가 안될 것으로 알고 있었고, 미국은 약간의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독일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가 주장한 바에 따르면, 전쟁 초기 무기 지원을 요청했을 때 독일 재무장관(집권 사민당 연정 파트너인 자민당 소속이다)은 ‘우크라이나 패망이 분초를 다툰다’며 거절했었다. 즉 어차피 금방 망할 정권인데 왜 지원을 하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독일의 판단은 여전해서 이번 주 초 독일 ‘빌트’ 지에 따르면 로버트 하백 경제부총리는 늦어도 8월 말에는 러시아가 돈바스를 완전 점령할 것이며 우크라이나가 패배할 것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중화기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즉 독일은 처음부터 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며 향후 전개 과정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은 혼재된 시그널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 직전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소규모 교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러시아의 의도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 탓인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말한 ‘소규모 전투’는 러시아 특수부대의 공격만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즉 지상군의 대규모 파병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는 초기에는 분명히 미국의 오판이 있었다. 러시아는 전면 침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이든이 예상했던 것 같은 소규모 특수부대의 작전만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아마도 미국은 러시아가 지금 같은 정도의 hybrid war를 수행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실은 이 같은 hybrid war는 미국이 먼저 시도한 것이다. 미국이 IS 격퇴를 명분으로 이라크와 시리아에 미군을 파병했을 때와 동일한 방식이다. 또는 더 넓게 보자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이 전쟁은 전통적인 의미의 전쟁이 아니다.

전통적 개념의 전쟁은 영토를 빼앗는데 있었다. 그러나 IS를 명분으로 침공한 미국이 시리아나 이라크의 영토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처럼(다만 괴뢰정권 수립, 혹은 그것이 불가능할 때에는 지역적으로 분쟁을 지속할 수 있는 반군의 조직 비호), 러시아도 영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군사적 목표는 ‘demilitarization’(군사적 무력화)과 ‘denazification’(나치 제거)였다. 언뜻 보기에는 매우 이상하다. 왜냐하면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denazification은 Azov Battalion을 비롯한 신나치 세력의 제거를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신나치의 본거지는 서북쪽 폴란드 국경 근처의 엘비브이며, 얼마전 함락된 마리우폴, 그리고 다음 러시아의 공격 대상으로 유력한 오데사이다. 러시아가 이들 지역까지 확전할지는 유동적이다. 왜냐하면 나치 세력 제거는 반드시 군사적 수단으로서만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젤렌스키 정권이 포함되느냐, 즉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레짐 체인지가 포함되느냐는 고정된 사안이 아니다. 젤렌스키 정권은 출범 초기(2019년)에는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에 대해서 평화적 해결책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2020년부터는 사실상 신나치 세력의 적극적인 대변자로 바뀌었다(원래 코미디언 출신이기 때문에 특정한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다만 기회주의적 연기자일 뿐이다). 만일 젤렌스키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나치 세력을 소탕하는 데 앞장 선다면, 러시아는 젤렌스키를 굳이 제거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 경우는 이미 사실상 러시아의 볼모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가 EU 가입 후보군에 ‘간택’된 것을 두고 마치 유럽이 일치 단결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처럼 선전하는데 속사정은 전혀 다르다.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조건들이 따라붙는다. 거기에는 민주주의적 제도, 기관 그리고 부정부패 해소 등이 있다.

우크라이나는 극악할 정도로 부패가 심한 국가다. 글로벌 부패지수에서 밑에서 3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전투 사망자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는데(공식 명령으로 내려왔다), 이는 국가로서는 전사자 연금을 아낄 수 있고(경제적으로는 우크라이나는 이미 파산한 국가다), 군 장성들은 그나마 몇 푼 안되는 전사자 급여를 떼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공식적으로 사망 처리 안되어 있으니 지급된 급여는 알아서 떼먹는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방위군과 비슷한 상태다. 당시 한국군 간부들은 징집된 국민방위군에 지급된 식량과 물자를 떼먹어 수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다. 북한군과 전투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즉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Azov Battalion류의 신나치주의자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말도 안되는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소동은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는 뜻도 아니고(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이런 조건들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10년도 넘게 걸린다), 우크라이나의 앞길이 보장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정치적으로 그럴듯하게 포장된, 그러나 실은 러시아의 요구(denazification)를 간접적으로 수용한 화해 제스처인 것이다. 지난 3월 터키의 중재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이에 휴전 회담이 열렸을 때, 양자간에 합의한 내용 중에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이 포함되어 있다.

군사력 제거는 조금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이는 단순히 중립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2차 대전 종전 직후의 독일이나 일본의 상태와 비교할 수 있다.

즉, ‘국방’을 외부(러시아)에 맡기는 일이 될 것이다(이 경우 미국이 독일 일본에 대해 그런 것처럼,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에 영구 주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를 위해서는 우크라이나가 두 번 다시는 전쟁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군사력을 철저하게 파괴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당연히도 심리전이 포함되는데, 러시아가 4월 이후 전투 방식을 포격전으로 바꾼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진지전으로 죽어라고 서로 포만 쏴대던 1차 대전의 교훈을 보면, 집중적인 포격에서 병사들이 견딜 수 있는 최대 한계는 약 40일이다. 40일 내내 포탄에 시달리고 나면 더 이상 싸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인간 자체가 무너져 내린다(PTSD 때문에 사실상 영구적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한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은 1차 대전때보다도 더 격심한 포격 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훨씬 빠른 시간 내에 무너진다.

미국 군사전문가들 사이에 돌고 있는 루머에 따르면 추가 징집된 향토예비사단 병력들은 고작 10일 내외의 훈련만 받으며 최전선에 배치된 뒤(향토예비사단은 원래 자기 지역만 지키도록 되어 있다. 사실상 비전투요원이나 다름없는 이들을 자기 지역이 아닌 최전선에 투입하는 것은 거의 살인행위나 다름없다), 불과 3-4일이면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병력 손실율은 65%에 달한다(100명을 배치하면 65명이 죽거나 부상으로 실려나간다).

지난 주 전 미군 장군이 슬쩍 트위터에 흘린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은 약 20만 명의 병력 손실을 보았다. 전쟁 직전 우크라이나의 총병력 수는 26만(내무부 산하 민병대 조직 포함), 예비군 수는 약 32만이었다. 돈바스 지역에 배치되어 있던 우크라이나 전력은 전쟁 직전 약 9만 명 수준이었으며, 그 이후 추가 충원되었으나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은 지난 11일에 사망자 수가 하루 100~200명에 달한다고 말했는데(이 비율대로 계산하면 개전 후 지금까지 최대 약 2만5천 명이 전사했다), 이는 상당히 축소된 숫자일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쪽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군 사망자 수를 약 6만~8만 명으로 보고 있다. 아마 이쪽이 가까울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병력이 부족한지는 징집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18~55세 사이의 우크라이나 남성의 절반은 해외에 있고(징집 가능자의 절반은 도망갔다), 지난 15일부터는 20~50세의 여성에 대한 징집을 실시 중이다. 여성들을 실전에 갈아넣을 정도면 그 국가는 그냥 해체하는 게 낫다. 뮬란은 영화로 그쳐야지 현실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역설적이고, 비극적이게도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여 전쟁을 지속하도록 하는 것은 실은 푸틴의 demilitarization에 부합하는 행위다. 푸틴은 자국군 병력의 손실은 거의 없이 오직 대포만으로 전선에 투입되는 우크라이나 병사들을 살상 중이다.

군사력 제거는 언제 어떻게 이뤄지는가? 다 죽어나가서 더 이상 싸울 사람이 없어지면 자동적으로 달성된다. 그래서 죽이는 쪽이나, 지원한답시고 끊임없이 총알받이 전선으로 내모는 쪽이나, 모두 할 것 없이 도살자들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서 demilitarization은 이뤄지며, 암묵적으로 서방과 러시아는 서로 간에 정당한 명분을 내세운 채, 살륙을 통한 물밑 타협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크라이나가 포와 포탄을 애원하지만, 미국이 추가 지원하기로 한 장비 중에 포탄은 22만 발에 불과하다. 만일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가 쏘아대는 숫자만큼 포탄을 소모한다면, 딱 나흘간 버틸 수 있다. 러시아군의 하루 평균 포탄 발사 수는 약 5만 발로 추산하고 있는데(우크라이나군은 약 5천~6천발), 이는 매우 겸손한, 매우 평온한 날의 추정인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군은 종종 하루 약 10만 발을 포탄을 쏘아댄다. 미국이 지원한 포탄으로는 일주일도 못 간다. 그것도 포탄과 장비가 무사히 전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만 가능하다. 터무니 없는 전제다. 서방이 지원한 무기와 장비는 전방행 열차에 실리자마자 이미 파괴된다. 이걸로 전세를 뒤집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상상일 뿐이다.

러시아군이 어마어마한 화력을 쏟아붓기 때문에 서구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한 달도 못 되서 탄약 재고가 바닥날 것으로 예측했었다. 3월 중순만 해도 이 같은 관측이 난무했었다. 웬걸, 러시아의 포격은 4월부터 더 심해졌으며 지금은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의 군사력을 잘못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 참모총장은 지난 주에 “우리가 러시아처럼 포탄을 쏘아댄다면 일주일이면 모든 재고가 소진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조차도 재블린 재고가 소진되서 더 이상 못 준다고 말할 정도다.

러시아는 어디서 이 많은 탄약이 난 것일까? 물론 전쟁에 돌입하면 군수물자 생산은 늘어난다. 그리고 소련의 무기 생산력은 2차 대전 때 익히 증명된 바 있다(거의 붕어빵 찍듯이 탱크를 생산했다).

그러나 지금 러시아가 쏴대고 있는 것은 기존 재고들이다. 그리고 그 재고가 무지막지하게 많다. 일반적인 평시의 군은 이처럼 많은 재고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이는 러시아가 이 전쟁을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으며 서구는 이를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나토가 우크라이나전에 개입할 수 없는 실제적인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나토가 개입해서 러시아도 총동원령을 내리면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지며, 소모전으로 전환되면 나토 국가들은 물자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새로 생산하려면 한가지 제약이 따른다. 현대 무기들은 거의 다 티타늄과 텅스텐을 소재로 하고 있다. 포신이나 탱크 포탑, 포탄을 만드는데 있어서 이 두 금속이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티타늄과 텅스텐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이 두 나라가 안 팔면 못 구한다. 적국에게 무기 만들게 티타늄 좀 주세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재래무기로 안되면, 핵 전쟁은? 그건 이미 안 하기로 했다. 올해 1월 5일 미중러영프 5개국은 다소 신기한 공동 선언을 했는데, 그것은 핵 전쟁을 하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이 뉴스를 보고 “올해 열강들 사이에 어디선가 전쟁이 나겠구나”하고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난데없는 핵무기 불사용 선언은 전쟁은 하겠지만, 핵전쟁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제한적 전쟁이라는 상호간 합의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즉 이 전쟁은 예고된 전쟁이며, 암묵적으로 합의된 전쟁이기도 하고, 서로 간에 어쩔 수 없는 전쟁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진정한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살륙을 동반한 이혼, 결별의 계기이며, 이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이 globalization이 끝났다는 그리고 nationalization이 시작되었다는(이는 향후 수십년에 걸쳐 진행될 추세이다) 합동선언이다.

중국이 ‘중립’이라는 것은 그 방향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굳이 이걸 전쟁을 통해서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입장이며 평화를 선호하는 중재자라는 글로벌 입지를 다지는 포석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de-globalization 선언은 지난 주 상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STIEF)에서 표명되었으며 서구는 이달 말 나토 정상회담에서 그 개념을 공포할 예정이다. 어쨌든 이 세계는 돌아올 수 없는 다리(river of no return)를 건넜다.

세계는 단지 지정학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두 세계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서구와 유라시아라는 새로운 패권 구도가 형성되었으며 여기에는 각기 다른 금융/통화체제, 경제 체제, 정치 제도, 사회적 가치들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글로벌 통화로서 달러의 시대는 끝났다(달러가 약세가 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국과 유럽의 미친 듯한 뻔한 선전 공세의 이유이며(달러가 글로벌 보편 화폐로서의 지위가 약화되면 미국은 그동안 누려왔던 금융 특혜를 잃게 된다), 미국과 유럽의 대중들이 호응한 이유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새로운 세계에서는 그들의 생활 수준은 필연적으로 저하될 수밖에 없으며, 만일 ‘서구’라는 결속력을 잃게된다면 그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더 절박하다. 유로화가 fiat currency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면 그걸로 유럽은 끝이다. 독일이 파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이미 독일 산업 경쟁력은 크게 약화되고 있으며 이제 독일은 제조업 강국이 아닌 다른 경로를 모색해야만 하고, 거기에는 EU와 유로의 확대는 필수적이다.

동시에 BlackRock의 CEO인 래리 핑크가 말했듯이 nationalization은 그 자체로 인플레이션적이다. 해외의 값싼 자원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무역 아비트리지 이득을 보고 있던 선진국들은 상품 가격 상승을 보게 될 것이며 글로벌 달러 유통망이 축소되면서 달러화는 강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미 국채 가격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국채 수익률의 장기적 상승). 이런 조건 하에서는 노동의 반항이 거세지며 국내 정치는 혼란에 돌입하거나 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한 권위주의 체제로 전환된다.

이미 트럼프가 그 일단을 보여주었고 한국의 이번 정권 교체도 그 맥락 하에 있다.

가장 최근의 EU 제재인 러시아 칼리닌그라드 지상교통망 봉쇄는 역사의 아이러니의 축약판이기도 하다. 칼리닌그라드의 옛 명칭은 쾨니히부르그였으며(2차 대전 뒤 구 소련이 독일로부터 할양받았다), 프로이센의 첫 수도이기도 했다. 프로이센은 14세기 튜튼기사단이 그곳에 살던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설립한 국가다. 그러므로 독일의 전신인 프로이센에는 정작 오리지널 프로이센인은 단 한 명도 없으며, 지금은 러시아의 영토다.

근대 철학의 태두인 엠마뉴엘 칸트가 태어나서 살다가 죽은 곳이기도 하다. 그는 단 한 번도 쾨니히부르그를 떠난 적이 없다. 그는 거기서 이성비판 3부작과 ‘영구평화론’을 썼다. 제목이 영구전쟁론이었다면 요즘 들어 베스트셀러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칸트는 제자들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기로도 유명했는데, 그는 제자들을 아둔함을 한탄하면서 “절망을 넘어 환멸의 비애를 느낀다”고 종종 말했다(정작 그 제자들은 독일 관념론의 대표적 철학자들이자 당대의 석학이었으며, 직계 제자는 아니지만 헤겔이 이를 완성했다). 칸트가 지금 우리를 보면 무어라고 할까. 이공순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