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AI 기업들이 자체 모델 개발에 속도를 조절하거나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화웨이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추격을 고려하면 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중국 AI 박람회에 참가한 화웨이 전시장 모습.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주요 인공지능(AI) 기업의 경영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술 발전을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중국 화웨이를 비롯한 기업이 이를 기회로 삼아 미국의 기술력을 추격하는 데 속도를 낼 채비를 갖추면서 국가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을 종합하면 화웨이는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미국 경쟁사들과 상반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은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화웨이 커넥트’ 행사에 참석해 자국 인공지능 기업들이 미국을 따라잡기 위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처럼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확보한 뒤 관련 산업 발전과 사회 안전에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 업체들이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속도 조절 필요성을 주장하자마자 화웨이가 중국의 개발 가속화를 촉구하며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는 데 주목했다.

이는 미국이 기술 발전을 늦추는 사이 중국이 격차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선언한 셈이기 때문이다.

앤트로픽과 오픈AI, 구글 지주사 알파벳과 스페이스X 등 미국 주요 인공지능 기업들의 경영진은 최근 잇따라 소셜네트워크(SNS)에 기술 개발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인공지능 모델이 단기간에 지나치게 빠르게 발전해 해킹 등 보안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만큼 사회의 안전성을 보장할 수 있는 규제나 원칙 등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쉬즈쥔 회장은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 인공지능 반도체를 수입하기 어려워진 중국 고객사들의 수요가 자국산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와 관련해 “화웨이가 ‘중국의 엔비디아’로 거듭나기 위해 기술 개발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며 미국의 규제에 대항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는 내수 시장 고객사들의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7년 초 신형 인공지능 반도체 2종을 예정보다 앞당겨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 화웨이 '어센드' 인공지능 반도체 기반 서버용 제품. <연합뉴스>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저널은 “화웨이는 중국 정부와 협력사들의 지원, 통신장비 분야에서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현지 인공지능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며 미국의 기술 규제에도 엔비디아를 따라잡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도 “미국 정부의 규제는 화웨이가 중국 인공지능 시장에서 역할을 확대하는 데 더욱 속도를 내도록 하고 있다”는 분석했다.

미국 인공지능 기업들이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춘 사이 화웨이가 성능을 높인 신형 인공지능 반도체 공급을 시작하면 중국 고객사들이 미국과 격차를 좁힐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미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중국의 추격 위협을 염두에 두고 자국 기업들이 인공지능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출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각) 소셜네트워크에 인공지능의 위험성과 관련한 논란은 ‘음모’에 불과하다며 이는 중국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15일(현지시각)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 기자들에 “인공지능 기술 개발 속도를 늦추면 중국에 우위를 잃을 것”이라며 “이는 안보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픈AI와 앤트로픽, 구글은 인공지능 기술 개발을 늦추는 데 그치지 않고 정부 차원에서 규제를 통해 위험 요소들을 통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냈다.

하지만 미국 정치권의 반응을 고려하면 강력한 인공지능 규제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화웨이가 미국 기업의 기술 발전 속도 조절 의사를 중국에 성장 기회로 바라보고 있는 만큼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 기술 패권 경쟁에서 이런 선택지를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미국 인공지능 기업들의 개발 감속 가능성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엔비디아 등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에도 잠재적 악재로 꼽혔다.

해당 업체들이 반도체 수요에 큰 부분을 담당하는 만큼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투자가 위축되면 자연히 반도체 공급사들의 실적에도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1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AI 서밋에 참석해 “인공지능 기업들의 기술 개발 속도는 정부 차원에서 강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규제 도입에 분명한 반대 의견을 냈다.

뉴욕타임스도 15일 논평을 통해 “인공지능 기술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술 발전 속도를 늦추면 중국에 따라잡힐 수 있다”며 “중국에 AI 산업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것은 더욱 위험한 일”이라고 전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