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일 배경훈(왼쪽에서 두번째)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박윤영(네번째) KT 사장, 정재헌(세번째) SK텔레콤 사장, 홍범식(첫번째) LG유플러스 사장 등 이동통신 3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간담회 뒤 "국민 기본통신권 보장에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2만 원대 5G 요금제도 아무도 쓰지 않는 실효성 없는 요금제를 추가하는 것뿐이다. 이동통신 요금 정책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 저가 요금제를 얼마나 많이 출시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라, 저가 요금제를 얼마나 실효성 있게 만드느냐가 핵심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금이라도 생색내기용 400Kbps 무제한 요금제를 철회하고, 5G 폭리 요금제의 요금을 전체적으로 인하하라."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지난 9일 내놓은 '400Kbps 무제한 요금제는 국민 기만, 1Mbps로 올려야' 논평 내용이다.
지난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민생 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TF' 회의에서 발표한 '기본 통신권 보장을 위한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개편 방향'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다.
참여연대는 "데이터 제공량이 월 평균 데이터 사용량에 한참 못 미치는 2만 원대 5G 요금제와 포털 사이트조차 제대로 이용하기 어려운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 데이터 속도) 400Kbps 수준 요금제를 내놓기보다 LTE 감가상각과 5G 설비투자 감소에 맞춰 이동통신 명목 요금 자체를 낮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과기정통부는 '기본 통신권 보장을 위한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개편 방향'을 통해 2만 원대 5G 요금제를 내놓고, 저가 요금제 가입자들도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에는 400K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 밝혔다. 65살 이상 어르신 가입자 대상 무료 음성통화.문자메시지 제공을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 등 기본 통신권 보장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 3사와 협의해 요금제 개편 작업이 상반기 중 마무리될 수 있게 하겠다"며 "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으로 717만 이동통신 가입자가 연간 3221억원, 음성통화·문자메시지 제공 확대로 140만 어르신 가입자가 연간 590억원의 통신비 절감 혜택을 각각 볼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데이터 안심 옵션 제공의 통신비 절감 혜택(717만명에게 연간 3221억원) 산출 근거에 대해 "데이터 초과 사용 비용 절감 및 요금제 하향 고려 가능성을 감안해 산출한 수치"라며 "이동통신 3사가 추산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 발표대로라면, 이동통신 3사 5G 요금제에 월 정액요금 2만 원대짜리가 추가된다. 과기정통부 보도자료에 담긴 예시를 보면, 2만 원대 5G 요금제의 월 정액요금은 2만7830원이다. 현행 이동통신 3사 5G 요금제 중에서는 월 3만9천 원짜리가 최저가 요금제다.
또한 2만~3만 원대 5G 요금제 가입자는 기본 제공 데이터를 다 쓴 뒤에도 400Kbps 속도로 데이터를 계속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기본 제공 소진 뒤 추가로 쓰는 데이터에 대해서는 비싼 데이터 요금을 추가로 물어야 한다.
과기정통부는 "정부의 기본 통신권 정책에 이동통신 3사 모두 공감을 표하며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 설명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 요금제가 예정대로 개편되면 857만 명의 가입자가 연간 3811억 원의 통신비 절감 혜택을 본다는 얘기인데, 가입자들과 시민단체 쪽 반응은 딴판이다.
참여연대 논평 내용처럼 '국민 기만' 내지 '이동통신 3사의 요금 인하 거부 꼼수' 등의 분석이 쏟아진다. 과기정통부가 이동통신 3사 편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불거질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 싹을 잘랐다는 지적과 함께 '과기정통부가 이번에도 이동통신 3사 2중대 구실을 했다'는 비난도 나온다.
과기정통부 발표 내용을 전하는 기사에도 정부를 성토하는 덧글이 줄줄이 달리고 있다.
'sooj****'는 "서민 간지러운 속을 박박 긁어주네요"라고 꼬집었다.
'naga****'는 "400kbps면 천리안·나우누리 시대 아니냐"고 짚었다.
'enya****'는 "(기본 제공) 데이터 다 써도 Kbps가 아닌 최소 1Mbps급은 돼야죠"라고 했다.
과기정통부는 '민생'을 앞세웠는데, 당사자들은 '바보로 아냐'며 반발하는 모습이다. 왜 그럴까.
보도자료에 담긴 과기정통부 예시를 보면, 새로 출시되는 '2만 원대 5G 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는 250MB이다. 소진된 뒤에는 데이터 속도가 400Kbps로 제한된다.
'비단 도포에 큰 갓을 쓰고 짚신을 신은 꼴의 요금제'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5G 단말기'와 '5G 요금제'와 '데이터 250MB'와 '400Kbps 데이터 속도'를 얽어놓은 모습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 요금제를 누가 쓰겠다고 하겠냐는 것이다.
특히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 데이터 속도를 400Kbps로 제한한 부분을 두고 말이 많다.
과기정통부는 400Kbps 데이터 속도에 대해 "기본적 메신저 이용과 지도 검색 등이 가능한 최소한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통신 3사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400Kbps 속도로는 카카오톡 이용도 문자 송수신만 실시간으로 할 수 있다. 영상 송수신은 사실상 어렵고, 사진도 버퍼링 현상을 감수해야 한다. 유튜브 이용도 음성만 가능하다. 영상은 가장 낮은 화질로 볼 때도 버퍼링이 생길 수 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자칫 홧병을 얻을 수 있다"며 웃었다.
김준모 과기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400kbps QoS 속도가 너무 느린 것 아니냐? 2만 원대 5G 요금제 예시의 데이터 제공량도 적다는 평가가 많은데'라는 지적에 "정책 취지는 기본 통신권 보장이다. 데이터가 모두 소진된 상황에서도 비상 시 검색이나 내비게이션 확인 같은 가장 기초적인 서비스는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쪽은 '과기정통부와 이동통신 3사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통 공약 형태로 정치권에서 불거질 수 있는 '이동통신 요금 공정화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요구'에 앞서 선수를 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과기정통부는 LTE와 5G 요금제 통합이란 '묵은 숙제'를 해결하며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AI 투자 확대를 이끌어내고, 이동통신 3사는 이동통신 요금 공정화 요구에 미리 물타기를 하는 효과를 보게 된 점을 짚는 것이다.
실제로 앞서 이동통신사들은 'AI 고속도로' 구축과 AI 신산업 육성 투자 계획 등을 앞다퉈 내놨다.
LTE와 5G 요금제 통합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4년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국정감사 과정에서 '5G보다 비싼 LTE 요금제' 문제를 제기하며 이슈화했다. 당시 과기정통부는 LTE·5G 통합요금제 출시를 통해 2025년 상반기까지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으나, 사업자들의 반발과 소극적인 자세로 아직까지 통합요금제 출시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예시대로라면, 2만 원대 5G 요금제는 기존 5G 요금제에 새 저가 요금제를 추가하는 게 아니다. 기존 LTE 요금제와 5G 요금제를 통합하며, 2만 원대 LTE 요금제를 통합요금제로 가져와 데이터 안심 옵션을 더한 뒤 '2만 원대 5G 요금제'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3만3천 원짜리 요금제도 마찬가지다.
통합요금제 가운데 2만~3만 원대 요금제가 기형적 모습을 갖는 배경이다. LTE 요금제와 5G 요금제를 아우르는 새로운 요금제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통합요금제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 5G 요금제 라인업에 LTE 요금제를 끼워넣는 방식이다 보니 데이터 기본 제공량과 소진 뒤 데이터 속도를 각각 250MB와 400Kbps로 제한하는 무리수를 두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연히 요금제 간 형평성도 맞지 않다.
통합요금제 가운데 2만7830원짜리 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는 250MB인데 비해 3만3천 원짜리는 1.5GB, 3만9천 원짜리는 6GB다. 요금제 간 월 정액요금 격차는 6천 원 안팎으로 비슷한데, 데이터 기본 제공량 차이는 각각 1.25GB와 4.5GB로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통합요금제는 월 정액요금에 따라 5만 원대, 6만 원대, 8만 원대, 9만9천 원짜리 등 다양한 라인업으로 구성되는데, 각 요금제별 데이터 기본 제공량 격차가 들쑥날쑥이다.
땜빵식으로 끼워넣고 추가해왔기 때문이다.
▲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가 2025년 2월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5G 원가자료 1차 분석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논리대로라면 통신망 장비 감가상각에 따라 원가가 낮아지면 요금도 낮아져야 한다. 하지만 이동통신사들은 "통신 요금은 원가가 아니라 이용자 효용성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을 바꾸거나 "다음 세대 통신서비스를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며 요금 인하를 거부해왔다.
과기정통부도 사실상 이를 묵인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통신사들이 적용하는 회계기준에 따르면 통신망 장비 감가상각 기간은 6~7년이다. 이 기준대로라면, LTE 원가는 0원이고, 5G 감가상각도 거의 끝나간다.
결국 이동통신 가입자 쪽에서 이번 이동통신 요금제 개편 방향을 보면, 혜택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LTE 저가 요금제가 사라진다. 통합요금제 체제에선 2만7830원 이하 요금제는 신규 가입이 중단되고, 2만~3만 원대 요금제 역시 카카오톡과 유투브 이용조차 불편하다는 이유로 어르신 가입자들로부터도 외면당할 수 있다.
이동통신 요금제가 '통합요금제'란 이름을 빌어 상대적으로 비싸게 책정된 기존 5G 요금제 중심으로 재편되는 꼴이다. 이동통신 3사가 가입자당매출 증대를 위해 꿈꿔온 것이다.
이동통신 3사는 가입자당매출(ARPU) 증대 효과를 볼 수 있지만, 가입자들은 가계통신비 부담이 커진다. 특히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이 대폭 늘어난다. 가입자당매출은 느는 반면 감가상각에 따른 원가는 줄며, 영업이익 증가 추이가 가팔라질 수 있다.
이동통신 3사 영업이익은 2019년 말 5G 상용화 이후 빠르게 증가해왔다. 올 이동통신 3사 영업이익은 5조 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SK텔레콤과 KT는 각각 2조 원을 넘고, 3위 사업자 LG유플러스도 1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동통신 3사 요금제 개편 작업이 예정대로 되면, 이동통신 3사의 영업이익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참여연대 측은 "이동통신 3사 모두 '5G 투자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설비투자(케펙스)가 해마다 큰 폭으로 줄고 있는데다, LTE는 감가상각이 끝났고, 5G 역시 감가상각이 끝나가며 각 사 모두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명목 요금을 낮추는 쪽으로 통합요금제를 재설계하고, 2만~3만 원대 저가 요금제의 기본 제공 데이터 소진 뒤 데이터 속도를 1Mbps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동통신 3사는 안심 데이터 옵션 속도를 5만 원 중반대 요금제는 1Mbps, 6만 원대 중반 요금제는 3Mbps, 6만 원대 후반 요금제는 5Mbps, 8만 원대 요금제는 무제한으로 제공 중이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 요금제 개편에 따른 통신비 절감 혜택 수치가 어떻게 산출된 것인지 근거를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이 망가져 제구실을 못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동통신 요금을 공정화해 국민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기회를 날렸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은 비즈니스포스트와 만나 "야당인 국민의힘이 소비자단체들과 손잡고 이동통신 원가 공개를 압박하며 지방선거 공통 공약으로 '이동통신 요금 공정화를 통한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를 요구했으면 가입자들에게 더 큰 혜택이 가는 방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 보좌관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이 과기정통부의 요금제 개편에 따른 통신비 절감 혜택의 허구성을 지적하며, 가계통신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주면 좋을 텐데, 야당 구실을 못하는 수준을 넘어 국민에게 '형편없는 야당'이라는 짐을 지우는 모습으로 볼 때 기대하기 어려워 아쉽다"고 덧붙였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