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 번째)이 5월3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 미플린에 위치한 US스틸 공장을 방문해 임직원과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 국내 철강사도 트럼프 정부 정책에 편승해 현지 생산 설비를 확충하려 하는데 공급만 늘고 수요가 따르지 않는 ‘공급 과잉’ 상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에너지 가격 정보업체 아르거스미디어가 “미국에서 지난 4년 동안 완공하거나 신설하기로 발표한 철강 용량은 2100만 톤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미국에서 사용하는 철강 가운데 최소 20%는 수입산이다. 수입산 제품의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임 바이든 정부부터 중국산 철강에 관세를 대폭 인상하고 트럼프 정부 또한 제조업 활성화를 추진함에 따라 철강 생산 설비가 동시다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신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를 비롯해 미국 철강사인 뉴코어와 스틸다이내믹스 등이 현지 생산을 확대했다”며 “현대제철과 포스코도 루이지애나주에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철강 수요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와 건설 등 주요 산업의 부진이 지속돼 철강 수요가 쪼그라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 흐름에도 나타난다.
트럼프 정부가 2025년 6월 철강 관세율을 50%까지 인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열연강판을 비롯한 철강 가격은 하락세로 전환했다.
S&P글로벌에 따르면 열연강판 현물 가격은 최근 톤당 820달러로 8월 초보다 5% 하락했다.
열연강판은 철강 판재를 가열해 얇게 펼쳐 만드는 강판이다. 자동차와 선박, 건축, 기계 제조 등에 쓰인다.
조사업체 패스트마켓 또한 8월5일 기준 탄소강 절단판 가격이 100파운드(약 45㎏)당 53달러(약 7만4천 원)로 7월29일보다 1.85% 내려갔다고 짚었다.
철강에 고율 관세가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부족해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워딩턴스틸의 제프 길모어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월스트리트저널을 통해 ”철강 수요가 공급을 웃돌려면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지금보다 가팔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 7월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위치한 철강 시장에서 한 노동자가 트럭에 강철 롤을 싣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5월30일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 위치한 US스틸 제철소를 방문해서 “철강이 없으면 군대를 만들 수 없다. 강한 철강 산업은 국가 안보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는 철강 제품의 자국 내 가격 지지와 수입 억제 효과를 어느 정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수요 부진으로 가격이 오르기는커녕 떨어지는 상황인데 추가 생산 설비마저 들어서면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이는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 한국 철강사의 미국 내 경영 전략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현대제철의 모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은 3월24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 전기로 제철소를 건설한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180만 톤의 자동차용 강판을 생산해 다수는 현대차그룹 현지 공장에 투입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미국 내외 고객사로 납품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현대제철 제철소에 지분 투자와 건설 참여를 논의하고 있다고 투자전문매체 팁랭크스가 21일 보도했다.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현지 수요 확보와 관세 회피 목적으로 제철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전체 시장의 수요 정체 및 과잉 공급 상황은 수익성 확보에 구조적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내 철강 생산업체 사이에 가격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정황도 보인다.
패스트마켓은 “일부 미국 생산업체는 고객과 적극 협상해 표시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철판을 공급한다”고 지적했다.
요컨대 트럼프 정부가 무역 장벽을 높여 미국 내 철강 생산을 늘려도 수요가 따르지 않으면 현대제철과 포스코 등 현지 투자 기업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철강을 사용하는 기업이 미국 내 공장을 더 늘려야 철강 소비도 따라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