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JP모간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의 위기 대응 'OODA 루프' 모델

▲ 마흔 둘 나이에 씨티그룹에서 해고된 경험이 있는 JP모간 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 그는 충격적인 해고의 순간을 딛고 월스트리트의 ‘위기관리 교과서’로 거듭나는 대전환을 이뤄냈다. < JP모건 체이스 >

[비즈니스포스트] “자네가 회사에서 나가줬으면 하네.” 

1998년 11월 어느 날, 씨티그룹의 사장 제이미 다이먼은 회장인 샌디 웨일의 방에서 귀를 의심할 만한 소리를 들었다. 구두(口頭) 형식의 해고 통지서였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보였다. 웨일과 다이먼은 20년 동안 사제지간으로 일한 사이였기 때문. 게다가 다이먼은 웨일의 후계자로 지목될 정도로 월스트리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런 다이먼을 웨일이 내쫓은 것이다. 당시 나이 마흔 둘. 

다이먼은 훗날 “내가 씨티그룹에서 해고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충격적인 해고 사건의 당사자는 현재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 & Co)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제이미 다이먼(Jamie Dimon·69)이다. 

‘별의 순간’에서 바닥으로 와장창 떨어졌던 그는 역설적으로 토사구팽이 만들어준 전화위복 케이스의 대표적인 경영자다. 그래서 경영학자, 비즈니스스쿨 학생, 조직 리더 모두에게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샌디 웨일과 제이미 다이먼의 사례를 중국 역사에서 찾는다면, 유방(劉邦)과 한신(韓信)의 관계와 닮았다. 한나라 유방은 천하통일에 기여한 명장이자 전략적 동지였던 한신을 끝내 제거해 버리지 않았던가.

그런데 웨일은 ‘20년 케미’의 오른팔 다이먼을 왜 잘랐을까? 둘의 의견충돌이 해고의 주원인으로 알려졌지만, 당시 뉴욕타임스는 다이먼의 편을 들었다. 

“65세의 샌디 웨일이 이제 막 월스트리트의 새로운 스타로 떠오르기 시작한 다이먼을 시기했는지도 모른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JP모간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의 위기 대응 'OODA 루프' 모델

▲ JP모건 체이스는 2000년 체이스 맨해튼과 JP모건의 합병으로 탄생했다. 이어 2004년 시카고에 근거를 둔 뱅크원을 인수했는데, 뱅크원의 CEO였던 제이미 다이먼이 2006년 JP모건 체이스의 새 수장 자리에 올랐다. 이후 다이먼은 20년째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군림하고 있다. < JP모건 체이스 >

두 사람의 결별 전으로 돌아가보자. 다이먼이 금융 거물 샌디 웨일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학 무렵. 웨일의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영 감각을 익혔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다이먼의 행보는 여느 친구들과는 달랐다. 

동기생 대부분이 골드만삭스나 메릴린치 같이 고액연봉을 주는 투자은행에 입사한 것과 정반대로, 그는 작은 연봉을 감수하고 샌디 웨일의 휘하에 들어갔다. 

그렇게 둥지를 튼 곳이 볼티모어에 있는 커머셜 크레딧(Commercial Credit)이라는 작은 금융회사. 다이먼은 20년 동안 웨일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고 발전시켰다. 그런 커머셜 크레딧은 인수에 인수를 거듭하며 덩치를 키우더니 1998년엔 씨티그룹이라는 대제국의 건설로 이어졌다. 

다이먼의 이런 공(功)을 감안하면, 그의 갑작스런 해고는 누가 봐도 황당할 따름 아니겠는가. 필자는 잠시 소설가 헤밍웨이의 말을 떠올려보았다. 

“세상은 모든 사람을 무너뜨리지만, 그 후에 어떤 사람들은 부서진 곳에서 더 강해진다.”

다이먼 역시 한때 부서졌지만, 그는 더 강하게 단련되었다. 해고 드라마의 주인공에서 ‘위기관리 교과서’로의 대변신. 필자가 이번 칼럼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씨티그룹에서 쫓겨나 2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내던 다이먼의 새 선택지는 시카고에 기반을 둔 ‘뱅크원(Bank One)’. 당시 두 은행의 합병체였던 뱅크원은 분식회계, 이사회 분열, 심각한 신용문제 등을 안고 있었다. 

2000년 CEO로 영입된 다이먼은 그런 문제투성이 회사의 경영 상태를 4년 만에 극적으로 회복시켰다. 그러면서 2004년 뱅크원을 JP모간 체이스에 매각하는 인수합병(M&A)까지 성사시켰다. 그런 실적은 JP모간 체이스의 차기 CEO 후보로 공인되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JP모간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의 위기 대응 'OODA 루프' 모델

▲ 미국 경제채널 CNBC와 US뉴스&월드리포트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JP모건 체이스는 자산(3조6400억 달러)과 지점 수(약 5천 개) 측면에서 미국 최대 은행이다. < CNBC > 

로이터 기자 출신의 작가 페트리셔 크리사풀리(Patricia Crisafulli)는 책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뱅크원과 JP모간 체이스의 합병은 제이미 다이먼에게 커다란 영예를 안겨 주었다. 다이먼은 월스트리트에 화려하게 컴백하면서 자신을 해고했던 씨티그룹을 지근거리에서 위협하는 존재로 부상했다.”(‘JP모간 제이미 다이먼, 금융위기 최후의 승자’, 조윤커뮤니케이션) 

여기서 회사 이름부터 정리하고 넘어가자. 위대한 금융 거인 존 피어폰트 모간(1837~1913)의 손에서 출발한 JP모건 은행은 이름 뒤에 ‘체이스’라는 꼬리를 달고 있다. 

사실 꼬리가 아니라 머리다. 미국 공룡은행 체이스 맨해튼(Chase Manhattan Bank)이 2000년 9월, JP모간(JPMorgan & Co)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합병은행의 이름은 JP모간 체이스(JPMorgan Chase & Co)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체이스의 수장인 윌리엄 해리슨이 통합은행의 새 CEO를 맡았다. 이 해리슨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가 해고 사건의 주인공이자 뱅크원 CEO였던 제이미 다이먼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JP모간 체이스 차기 수장 자리를 누가 차지할지는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추측 게임(Wall Street’s favorite guessing games)’ 중 하나였다. 2006년 JP모간 체이스 CEO에 오른 다이먼이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군림한 지도 벌써 20년째다. 

그런 다이먼은 평시(平時)보다 위기에서 더 빛나는 ‘전시 리더십(wartime leadership)’을 구사한다. ‘OODA 루프’라는 전술적인 무기와 ‘견고한 대차대조표(fortress balance sheet)’라는 전략적인 무기를 기업경영에 효과적으로 활용했던 그다. 

OODA 루프는 미 공군 조종사 출신인 군사 전략가 존 보이드(John Boyd: 1927~1997)가 개발했는데, 관찰(Observe)과 방향 설정(Orient), 결정(Decide), 실행(Act)의 네 단계를 반복하는 의사결정 모델이다. 

한국전쟁에 F-86 세이버(F-86 Sabre)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던 보이드는 탁월한 전투기 조종술로 정평이 났다. 공중전의 흐름을 바꿀 기동성을 분석하면서 빠른 의사결정의 중요성을 깨닫고 OODA 루프 모델을 체계화했다. 

그는 ‘누가 더 빨리 보고, 방향을 잡고, 결정하고, 행동하느냐’가 전장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여겼다. 이 모델은 군사 분야를 넘어 기업 분야에도 접목됐다. 다이먼이 가장 잘 알려진 OODA 루프 전사다. 

2008년 금융위기 때다. 그해 3월 대형은행 베어스턴스(Bear Stearns)가 유동성 위기에 몰리자 미 연준(Fed)과 재무부는 다이먼에게 긴급 인수를 요청했다. 주말 단 이틀 만에 그는 인수를 결정했고, 월요일 증시가 열리기 전 인수 발표를 끝냈다. 내부 직원, 주주들의 반발과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고속 결정은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는 방파제가 되었다.

6개월 뒤인 9월, 리먼브라더스와 워싱턴 뮤추얼(미국 최대 저축은행)이 차례로 파산했다. 다이먼은 지체없이 이번엔 워싱턴 뮤추얼을 인수해 사태 진정에 나섰다. 
 
[경영어록의 연금술사들] JP모간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의 위기 대응 'OODA 루프' 모델

▲ 제이미 다이먼은 매년 ‘버스 투어’를 통해 미국 전역의 지점을 직접 방문한다. 월스트리트저널(Jamie Dimon Took a Bus Tour Down South. We Rode Along.: 8월8일)에 따르면, 올해는 8월 초 앨라배마, 미시시피, 조지아 등 남부 지역을 돌았다. 현장 직원과 고객, 지역사회 리더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 JP모건 체이스 >

위기 한가운데서 JP모간 체이스는 최대 승자가 되었고, 다이먼은 ‘전시 리더십’의 전형으로 떠올랐다. 다이먼은 ‘주주들에게 보내는 편지’(2024년 4월)에서 이렇게 밝혔다. 

“OODA 루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전쟁 상황뿐만 아니라 (평상시) 기업과 정부가 큰 실수를 하게 됩니다.”

다이먼이 위기 상황에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요새처럼 방어능력이 뛰어난 ‘견고한 대차대조표(fortress balance sheet)’ 덕분이었다. JP모간 체이스는 다이먼의 신념에 따라 리스크가 최소화된 고품질 자산을 주로 보유했고, 자기자본 비율도 다른 금융사보다 훨씬 높았다. 

‘견고한 대차대조표’에 바탕을 두고 리스크 높은 파생상품의 보유량을 줄이는 정책을 고수하였기에 금융위기에서도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이먼은 조직 운영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했다. 

“조직을 운영한다는 것은 마치 야생마의 등 위에 올라타 고삐를 붙들고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

필자는 최근 다이먼에 대한 외국 기사를 검색하다가 포브스(2025년 5월24일)에서 어록 하나를 발견했다. 

“왕관을 쓴 머리는 무겁다”(Heavy is the head that wears the crown.)

화려한 듯 보이는 왕관은 조직의 리더가 책임지고 감수해야 하는 리더십의 무게를 의미한다. 필자는 야생마의 등에 타본 적도, 왕관을 써 본 적도 없지만, 다이먼의 어록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칠순의 제이미 다이먼이라면, 후배 리더들에게 이렇게 조언하지 않을까?

“OODA로 무장하고, 야생마를 부릴 수 있으며, 동시에 왕관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리더만이 시장을 지배한다.”  이재우 재팬올 발행인 
 
이재우 발행인(일본 경제전문 미디어 재팬올)은 일본 경제와 기업인들 스토리를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열성팬으로 '원령공주의 섬' 야쿠시마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부캐로 산과 역사에 대한 글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