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6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기후변화가 더 극심해지면 햇빛 반사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므로 지금부터 국제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저물녘 대기에 반사되고 있는 태양의 후광. <플리커> |
[비즈니스포스트]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빛을 반사하면 기후 악화를 막을 수 있을까. 오히려 더 큰 재앙을 초래하게 될까.
전 세계 과학자들이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햇빛 반사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해야 한다며 정부, 기부자, 과학계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CNBC는 현지시각 27일 “저명한 기관에 소속된 60명 이상의 과학자들이 기후변화가 더 극심해지면 햇빛 반사 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압력이 높아질 것이므로 지금부터 국제적인 연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공개서한에는 미국·캐나다·영국·독일·스위스·호주 등 선진국부터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등 개발도상국까지 다양한 국가의 교수와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를 비롯해 하버드·콜롬비아·MIT 등 유명 기관의 학자들도 개인 자격으로 서명했다.
이들은 성층권에 이산화황 등 에어로졸 주입하기, 해양 구름의 빛 반사율 높이기, 상층 권운을 얇게 해 지구의 열을 더 많이 분출하게 하기 등 세 가지 지구공학 연구를 제안했다.
이들이 제안한 기술은 ‘태양 복사 조정(Solar Radiation Modification)’ 혹은 ‘태양 지구공학’이라고 불리는데, 그동안엔 ‘기후변화보다 더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반대에 부딪혀왔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 기술의 국제적 연구를 제안한 이유는 두 가지다.
전 세계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이산화탄소 감축 계획으로 보건대 앞으로 10~20년 안에 기후변화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이를 전망이라는 점. 그리고 국가들이 대기오염을 줄이면 온난화를 막아주던 에어로졸 또한 감소해 지구 온난화가 더욱 가속된다는 점.
우선, 이들은 기후변화가 ‘재앙’에 접근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한에서 과학자들은 “자연시스템이 재앙적인 변화의 문턱(thresholds)에 접근하고 있다”며 “이 변화는 기후변화를 가속시킬 수 있는 잠재력과 인간의 적응 능력을 넘어서는 임팩트를 가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한은 “지난 150년 동안 이미 너무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됐다”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공격적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 온난화가 1.5~2도 수준으로 유지될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2015년 체결된 파리협정을 통해 전 세계 각 국가들은 지구 온난화를 ‘1.5도’에서 막자는 목표를 채택했다. 이에 앞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과학자들은 지구 온난화가 산업화 이전 시대보다 2도 이상 높아지면 전 세계가 홍수, 가뭄 등 심각한 기후 재난에 처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공개 서한에 서명한 과학자들이 우려하는 또 하나의 요인은 ‘에어로졸 감소’다.
대기에 떠다니는 오염물질들은 구름 속으로 섞여 들어가 지구 바깥에서 오는 태양 에너지가 지표면에 도달하는 걸 막아준다.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역설적으로 지구 온난화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서한은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 온난화 중 약 3분의 1을 에어로졸이 막아주고 있다고 추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대기오염물질 배출을 단속하고 있어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에어로졸의 지구 온난화 방지 역할은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이산화탄소는 이미 많이 배출된 데다 잔존 기간이 길어 에어로졸이 사라진 후에도 온난화를 유지할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우려했다.
이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CDR)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CDR은 환경, 기술, 비용 문제가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기후 온난화를 완전히 피하게 해줄 만큼 구현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NASA, 하버드, 콜롬비아 등 전 세계 과학자 60여 명이 기후변화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햇빛 반사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해야 한다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에 한국인 학자로는 유일하게 염성수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가 서명했다. <서명 발표 사이트 갈무리> |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지구공학 즉 기후공학에 대해선 한국에서는 아직 공개적 토론이 진행된 적이 없다.
이 서한에 한국인 학자로는 유일하게 서명한 염성수 연세대 대기과학과 교수는 “기후공학이 이론적으로는 지구온난화 감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가 보여줬다”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런 기후공학적 활동이 실제로 작동할지 여부와 예기치 못한 부작용에 대해 논쟁이 있다”고 말했다.
기후공학이 영화 ‘설국열차’에서처럼 더 극심한 기후재앙을 낳을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공포와 관련, 염 교수는 "그래서 연구를 해야 한다"며 "기후공학은 마지막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후변화가 더 이상 심각해지지 않아 기후공학을 수행할 필요가 없어지는 게 가장 좋지만, 이제는 기후위기 때문에 기후공학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에도 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후환경연구소 연구담당 소장으로 겸직 중인 염 교수는 6월 중 기후공학 관련 국제심포지엄을 여는 등 기후공학에 대한 공론화를 준비하고 있다.
문제는 기후공학을 실제 지구에서 실험하기 어렵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공개서한에 참여한 과학자들도 동료 검토를 거친 과학 연구에는 반드시 컴퓨터 모델 시뮬레이션, 관측, 분석 연구, 소규모 현장 실험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컴퓨터 모델 시뮬레이션이란 컴퓨터 안에 가상지구 즉 지구 메타버스를 만들어 현실 속에서는 실행하기 어려운 실험을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에선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의 김형준 교수가 지난해 인간활동에 의한 기후변화 때문에 동아시아 지역의 태풍 호우가 더 잦아졌다는 가설을 세계 최초로 지구 메타버스 기술을 통해 증명하면서 알려졌다.
이 연구를 수행한 김 교수는 “(현재 기술로는) 어떤 기후 재해가 인간 활동에 유무에 따라 발생하는 확률과 그에 따른 피해의 차이를 추산하는 정도가 가능하다”며 “지구 메타버스가 지구 규모의 기후공학을 적용하는 정도의 큰 책임을 짊어지기에는 아직 많은 부분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구공학은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해결책으로서는 담보할 수 없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며 “우리는 이미 수많은 공학의 실패를 보아오지 않았나”라고 반문했다.
지구공학의 실효성과 관련해선 과학자들 사이에서 찬반이 엇갈리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근본 해법이라는 데에 관해선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한다.
공개서한에 서명한 과학자들 역시 지구공학은 해결책이 아니라며 “온실가스 저감은 지구 온난화를 제한하는 유일하면서 영구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염 교수의 말처럼 지구공학이라는 ‘마지막 수단’을 써야 하는 상황을 과연 인류는 막을 수 있을까. 이경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