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전시(위기)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 이 옛말은 4분기를 시작하는 10월 초 만해도 금융권에서 힘을 지녔다.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 레고랜드발 자금경색 등에 따른 금융위기급 불확실성을 마주한 상황에서 주요 금융지주들이 연말 계열사 대표 인사에서 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 국내 주요 금융지주가 새로운 회장 리더십을 맞으면서 계열사 대표 교체폭도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난 한두달 사이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미국의 긴축 기조와 국내 자금경색에 따른 불확실성은 여전하지만 각 금융지주 회장 리더십에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서 계열사 대표 인사도 안정보다 ‘변화’에 무게가 실리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윤종규 회장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KB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지주 계열사 대표들은 그 누구도 자리를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1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20일 신한금융은 올해 말 임기 만료가 예정된 10개 계열사 대표 인사를 발표한다.
신한은행을 비롯해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 신한라이프, 신한캐피탈, 신한자산운용, 신한자산신탁, 신한저축은행, 신한AI, 신한벤처투자 등이 대상이다.
신한금융은 애초
조용병 회장이 재연임에 성공하며 계열사 대표 인사 역시 안정적으로 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주 열린 회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예상을 깨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다음 회장에 내정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진 행장의 영전으로 공석이 예정된 신한은행장은 물론이고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 신한라이프 등 핵심 계열사 대표가 대부분 교체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나금융은 이미 계열사 대표 변화가 시작됐다.
하나금융은 14일 전격적으로 하나은행과 하나증권, 하나카등 등 핵심계열사 3곳의 대표를 바꾸는 인사를 발표했다.
이번 인사는 함영주 회장이 3월 취임 뒤 진행한 첫 계열사 대표 인사인데 금융업계에서는 시기나 내용 모두 파격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하나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와 달리 각 계열사 대표 임기가 3월에 끝나 보통 2월에 대표 인사를 발표했는데 올해는 이를 2달가량 앞당겼다.
또한 올해 3월 취임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이승열 하나생명 대표와 강성묵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대표를 핵심계열사인 하나은행장과 하나증권 대표로 각각 올리는 선택을 했다.
하나금융이 이제 막 계열사 대표 인사를 시작한 만큼 금융업계에서는 함 회장이 이런 ‘파격’ 기조를 앞으로 이어갈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바라본다.
하나금융은 내년 3월까지 대표 임기가 끝나는 하나금융티아이와 하나벤처스, 하나에프앤아이, 핀크 등을 비롯해 이번 인사로 공석이 되는 하나생명과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대표 인사도 필요하다.
하나금융은 올해 안으로 남은 계열사 대표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을 세웠다.
NH농협금융도 12일 새 회장으로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내정되면서 계열사 대표 교체폭이 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NH농협금융에서는 이번 연말
권준학 농협은행장과
김인태 NH농협생명 대표, 강성빈 NH벤처투자 대표 등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NH농협금융 역시 다음주 중 계열사 대표 인사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NH농협금융은 내부규범에 따라 임원추천위원회 개시 이후 40일 이내에 대표 추천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이 기한이 23일까지다.
우리금융은 5대 금융지주 가운데 계열사 대표 인사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가장 큰 곳으로 꼽힌다.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우리금융만 여전히 회장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라임펀드 불완전판매 등과 관련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직간접적 사퇴 압박을 받고 있지만 아직 거취를 결정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우리카드, 우리종합금융, 우리금융캐피탈, 우리자산신탁 등 다수의 계열사 대표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연임이나 새 대표 선임 등과 관련한 구체적 논의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손 회장은 내년 3월 임기가 끝나 우리금융은 손 회장 연임과 새 회장 취임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손 회장이 물러나고 새 회장이 온다면 우리금융은 우리은행장을 비롯해 핵심계열사 대표들이 크게 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KB금융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교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계열사 대표 인사를 마무리했다.
KB금융은 전날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 열고 12월 말 대표 임기가 끝나는 8개 계열사의 대표이사 후보를 추천했는데 이 가운데 7곳의 대표 유임을 결정하며 기존 리더십에 힘을 실었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이 2020년 11월 재연임에 성공해 내년 11월 임기가 끝난다.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올해 들어 회장 리더십이 흔들리지 않은 KB금융을 제외한 나머지 금융지주 계열사 대표들이 대부분 좌불안석인 상황에 놓인 셈인데 이는 예년과 분명 다른 모습이다.
국내 주요 금융지주 계열사 CEO들은 회장을 제외하면 보통 처음 선임될 때 2년의 임기를 받고 이후 1년 단위로 연임할 때가 많다.
성과를 중시하는 문화 등에 따라 다른 산업과 비교해 임기를 짧게 받는 편인데 이에 따라 금융지주 계열사 CEO들은 임기 만료가 빨리 돌아온다.
그래도 그동안은 성과가 좋은 계열사 대표의 경우 신뢰를 바탕으로 지속해서 연임을 하며 장기적 관점에서 회사를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임기가 남아 있다 하더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최근 하나금융의 인사만 보더라도 함 회장은 올해 3월 취임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이승열 하나생명 대표와 강성묵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 대표를 각각 하나은행장과 하나증권 대표로 올리며 변화를 꾀했다.
새 회장의 리더십이 계열사에도 새 대표를 원한다면 임기와 상관 없이 교체를 추진할 가능성도 충분한 셈이다.
5대 금융지주 한 계열사 대표는 “지주 회장이 바뀌면 계열사 대표들은 자연스레 ‘나도 이제 곧 집에 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회장이 바뀌면 계열사 대표뿐 아니라 전 회장을 보필했던 지주 인사 등 그룹 전반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