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의대 증원 문제와 관련한 간극이 갈수록 더 커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공백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전공의 복귀와 의대교육 정상화도 늦어지면서 겨울철 의료공백과 이에 따른 환자 피해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와 의료계 '의대 증원 간극' 더 벌어져, 의료공백 장기화 우려 커져

▲ (왼쪽부터)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 이주영 개혁신당 정책위의장,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이 24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간담회 뒤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연합뉴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를 비롯한 의료 공백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 전망이 제기된다.

의료계가 올해 수능까지 끝난 상황에서도 2025년 의대입시 절차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은 전날 보도자료를 내 “(현 상태대로라면) 2025년 의학 교육 역시 불가능하며 학생·전공의 모두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2025년 의대 모집 정지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의견을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개혁신당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박형욱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2일 의협회관 기자회견에서 "2025년 의대 모집을 중지하는 것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며 "3천 명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갑자기 6천 명, 7500명 의대생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2025년도 의대입시에서 의대 증원 정책에 따라 추가된 1500명 뿐만 아니라 기존에 잡힌 정원 3천 명의 입시일정까지 일괄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그동안 1500명을 줄이자는 안에도 난색을 표해온 만큼 4500명의 입시 절차를 모두 취소하라는 주장을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다.

정부는 학부모와 수험생 혼란을 우려해 2025년 입시계획 수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2025학년도 의대 입학 정원 조정 가능성은 없다"며 "이미 수능시험을 치렀고 합격자 발표가 나고 있는데 이걸 조정하자는 것은 입시안정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정부는 의료인력 수급계획을 이행해야 할 책무가 있기 때문에 조정은 불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공의 단체와 최대 의료계 단체가 입시 진행 자체를 멈추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정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양측의 입장 차이가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당분간 전공의 복귀가 힘들어 상급 종합병원 진료도 정상화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료공백 문제가 더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24년 2월 전국 상급병원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에 항의해 집단 사직하면서 응급실과 중환자실, 수술실 등 일선 현장에서 의료 공백이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응급실을 찾지못해 구급차에 실려 도로 위에서 헤메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사례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과 이수진 민주당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119 구급대 재이송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8월 응급실 재이송 건수는 35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약 30% 늘었다.

특히 겨울은 노인과 어린이, 만성질환자, 노숙인을 중심으로 독감, 고혈압, 한랭질환, 낙상사고 피해가 늘어나는 기간이어서 의료 공백 피해가 더욱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의료계에 따르면 겨울은 심근경색·뇌졸중·뇌출혈·뇌경색 등 심뇌혈관질환과 폐렴·독감·코로나19 등 호흡기 질환, 낙상사고에 따른 고관절골절·골반골절 환자 발생과 그 사망률이 유의미하게 증가하는 기간이다.
 
정부와 의료계 '의대 증원 간극' 더 벌어져, 의료공백 장기화 우려 커져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2025년도 의대정원 조정에 대한 정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김현정의뉴스쇼 유튜브채널>


올해는 특히 호흡기질환이 문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예방접종이 늘면서 독감은 평년과 비슷한 수준이 유지되고 있으나 코로나19 환자수가 12월 중 반등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현재 백일해와 폐렴 환자가 증가세에 있는데 지난 4일에는 2011년 통계작성 이후 첫 백일해 영아 사망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은진 서울대병원 비대위 교수는 MBC라디오 권순표의뉴스하이킥에 나와 " 겨울은 뇌출혈과 심근경색이 늘어나는 시기"라며 "응급 중증 환자들이 늘어나면 지금도 적절한 치료를 못 받고 있는데 앞으로 그런 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겨울철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현재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고난도 중증전문 진료에 의료자원을 집중하고 응급실 체계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내용의 겨울철 비상대책을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기적으로는 정부 의료개혁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부가 올해 2월 발표한 의료개혁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2035년까지 1만 명의 의사를 증원해 의료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 필수의료분야 인력을 보강한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2025년 의대입시를 중단하라는 의료계 요구를 반영하면 오히려 의사 수가 격감해 '의사 증원에 기초한 의료사각지대 해소와 필수의료 보강'이라는 기존 계획 자체가 어그러진다.

반대로 전공의들이 계속해서 돌아오지 않는다면 도제식으로 이뤄지는 의대 교육체계 특성상 전문의료인력 양성이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충분한 숙고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된 의대증원 시도가 의료개혁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야당과 의료계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의료대란이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요인인데 이 과정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가 굉장히 권위적이고 독재적인 행정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한내과의사회 측은 결의문을 통해 "정치공학적 의대증원으로 전공의 1만2천 명과 의대생 2만여 명이 교육기회를 박탈당해 떠났고 의대교수들은 번아웃이 왔으며 국민들은 응급실을 찾아 떠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인력 양성은 체계적이고 정립된 교육 인프라와 중장기적 관점 아래 과학적 근거에 따라 신중히 검토해야 하지만 대통령이 아집와 자존심을 세우려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