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9일(현지시각) 네팔 홍수 참사에 따른 피해 지역 모습. 중국, 인도 등 인접 국가에서 파견된 인력들이 네팔 현지 구조대원들과 함께 복구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와 네팔 홍수 참사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세계적 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에 연말 유엔기후총회에서 네팔이 미국, 중국, 인도 등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에 기후피해의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7일(현지시각) 국제 기후변화 연구단체 세계기상특성(WWA)은 지난달 네팔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 사태와 기후변화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기상특성은 네팔 홍수 참사가 기후변화로 인한 고산지대 빙하 지형의 장기적 불안정화가 없었다면 발생하기 어려웠거나 피해 규모가 훨씬 작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세계기상특성은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네덜란드 왕립기상청 등이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민간 분야 연구단체다.

이 곳에서 나오는 기후변화 기여도 분석 연구(귀속 연구) 결과는 지난해 7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세계 각국의 기후변화에 관해 지는 의무에 관한 권고적 의견을 내놓을 때 근거로 삼기도 했다.

그 외에도 2024년에 국제해양법재판소, 유럽인권재판소 등이 기후소송 관련 판결을 내놓을 때도 세계기상특성의 귀속 연구를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

세계기상특성은 이번 네팔 홍수 참사가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빙하와 영구동토층의 해빙으로 발생한 물과 암석·빙하 붕괴가 직접적 원인이 된 복합재난이라고 봤다.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네팔 현지의 올해 7~8월 기온은 기상 관측 역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며 평균적으로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5도 높아진 상태를 유지했다.

높아진 기온이 빙하의 급격한 붕괴를 초래한 셈이다.

벤 클라크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극한 기상 및 기후변화 연구원은 “이번 네팔 재난은 장기적 변화 속에서 기후변화의 증거를 명확하게 보여준 현상이었다”며 “연구 결과 기후변화는 고산지대 환경을 변화시키며 여러 잠재적 붕괴 요인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세계기상특성에 따르면 홍수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 된 랑탕-리룽 빙하는 산업화 이전에는 연간 손실률이 0.5%에 불과했으나 2010년 이후에는 연평균 1.2~1.3%를 기록했다.

세계기상특성은 지속적으로 발생한 손실에 따라 빙하 구조가 크게 약화됐고 이에 대규모 붕괴 사태를 초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참사 당시 현장 환경 조건을 재현한 그래픽 모습. <세계기상특성>

이처럼 네팔 홍수 참사의 원인을 기후변화로 규정짓는 과학적 연구가 나옴에 따라 네팔이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에 책임을 물으려는 움직임에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2일(현지시각) 블룸버그 보도를 보면 시시르 카날 네팔 외무장관은 중국, 미국, 인도 등이 이번 참사의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날 장관은 “우리는 기후변화 피해 복구에 관한 외교적 틀을 원조에서 정의 실현과 보상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중국, 인도, 미국 등 상위 배출국들은 기후피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온실가스 계측자료(EDGAR)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 미국, 인도는 온실가스 배출량 상위 1, 2, 3위 국가다.

이들 3개국만 합쳐도 전체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약 50%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네팔의 책임 추궁과 관련해 특별한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 인도 등은 책임론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달 사설을 통해 네팔 홍수 참사를 계기로 중국을 향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런 움직임에 대해 자제를 촉구했다. 또 누구의 책임인지를 묻기보다는 피해 복구와 구조가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인도 매체 인디아투데이도 "인도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높은 원인은 단순히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며 "1인당 배출량으로 보면 인도는 3톤에 불과하며 11톤인 중국이나 17톤인 미국보다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월등히 적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에 따르면 네팔은 오는 11월 튀르키예 안탈리아에서 열리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에서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에 책임을 물으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이번 세계기후특성의 연구 결과가 근거 자료로 활용될 여지가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관련해 비영리기후연구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의 만지트 다칼 남아시아 연구소 소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재난의 규모는 네팔의 대응 역량과 적응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며 "더 과감하고 빠른 글로벌 배출량 감축, 복잡한 산악 위험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더 많은 투자뿐 아니라 네팔과 같은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규모와 속도에 부합하는 국제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