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랜드그룹이 글로벌 러닝화 브랜드 호카의 새 국내 총판으로 선정됐다. 사진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이랜드월드는 뉴발란스를 국내에서 유통·판매해 연매출 1조 원대 브랜드로 키웠지만 글로벌 본사의 한국 직접 진출 방침에 따라 2030년 이후의 계약 관계가 유지될지 불확실한 상황이었다.
이랜드가 호카를 ‘제2의 뉴발란스’로 키워 이를 대체할 브랜드로 키워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20일 이랜드그룹에 따르면 호카의 글로벌 본사인 데커스가 이랜드를 새로운 한국 유통 파트너로 공식 선임했다.
계약을 담당할 이랜드 계열사와 사업 개시 시점, 상품 범위 등 구체적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랜드그룹은 데커스와 세부 사항에 관한 협의를 마친 뒤 사업 계획을 발표하기로 했다.
호카는 국내 유통망을 빠르게 재정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데커스는 1월 기존 국내 총판인 조이웍스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조성환 당시 조이웍스 대표가 거래업체 관계자들을 폭행한 사건이 알려지자 무관용 원칙에 따라 관계를 종료했다.
조 전 대표는 폭행 사실을 인정하고 대표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면서 호카 역시 브랜드 신뢰를 회복하고 상품 공급과 매장 운영을 안정시킬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나섰다.
이랜드그룹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장기간 운영한 경험과 전국 유통망을 앞세워 데커스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이랜드는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를 국내 시장에서 장기간 운영하며 상품, 유통, 마케팅 등 전 영역에서 경험과 역량을 축적해 왔다”며 “데커스와 이랜드는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호카의 한국 시장 성장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는 데 공감해 장기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설명했다.
호카는 새 총판이 처음부터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 브랜드는 아니다. 국내에서 이미 연매출 1천억 원에 가까운 외형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존 총판 기업인 조이웍스는 2025년 매출 1065억 원, 영업이익 187억 원을 냈다. 업계에서는 조이웍스 매출에서 호카가 차지하는 비중을 80~90% 수준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를 적용하면 호카의 국내 연 매출은 최소 850억 원에 이른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호카의 성장세는 이어지고 있다.
데커스의 2026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 호카 매출은 25억9천만 달러(약 3조6120억 원)로 1년 전보다 15.9% 증가했다. 브랜드 호카와 어그의 성장에 힘입어 데커스 전체 매출도 54억7천만 달러(약 7조6285억 원)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랜드그룹으로서는 국내에 기반을 갖추고 글로벌 성장세도 이어가는 브랜드를 확보한 셈이다. 기존 유통망을 안정화하는 데 성공하면 비교적 빠르게 새 글로벌 브랜드 수익원을 마련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랜드그룹의 브랜드 육성 역량이 호카의 성장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실제 이랜드그룹 계열사 이랜드월드는 뉴발란스를 국내 매출 1조 원대 브랜드로 키워낸 바 있다.
이랜드월드는 2008년부터 뉴발란스의 국내 유통과 운영을 맡고 있다. 당시 약 250억 원이었던 뉴발란스의 국내 매출은 2024년 1조 원을 넘어섰다. 16년 만에 외형이 약 40배로 커진 셈이다.
이랜드월드는 뉴발란스 운동화와 의류를 국내 소비자의 취향에 맞춰 구성하고 백화점과 쇼핑몰, 일반 상권의 단독 매장 등으로 판매망을 넓혔다. 스포츠 기능성뿐 아니라 패션과 일상복 수요까지 흡수하며 뉴발란스의 고객층을 확대했다.
▲ 이랜드그룹이 뉴발란스에 이어 호카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육성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호카>
이랜드그룹이 데커스에 인정받았다고 밝힌 상품·유통·마케팅 역량도 뉴발란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호카에서도 상품 공급 및 매장 확대에 그치지 않고 국내 소비자에 맞춘 마케팅과 고객 접점을 구축할 수 있는지가 성장 속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그룹에 호카 총판은 스포츠 브랜드 포트폴리오 다변화 측면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다. 뉴발란스 본사가 한국 직접 진출을 준비하고 있어서다.
뉴발란스 본사는 2027년 1월부터 한국법인을 운영한다. 이랜드월드는 뉴발란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2030년까지 연장해 아동용 신발과 의류 등을 포함한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양측의 협력 관계는 당분간 유지되지만 2030년 이후 이랜드의 사업 범위와 역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뉴발란스가 이랜드월드 패션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장기적으로는 이를 보완할 스포츠 브랜드가 필요하다. 뉴발란스의 국내 매출은 2025년 약 1조2천억 원으로 이랜드월드 패션사업 매출의 3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호카가 이미 글로벌 인지도를 확보한 만큼 향후 뉴발란스 사업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다만 이랜드그룹은 호카를 뉴발란스의 대체재로 보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뉴발란스 본사가 한국법인을 설립하더라도 기존 파트너십을 이어가기로 한 만큼 두 브랜드를 동시에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호카는 뉴발란스를 대체하는 브랜드가 아니다”며 “뉴발란스와의 파트너십도 견고하게 이어가고 있으며 각 브랜드의 고유한 정체성과 고객을 고려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두 브랜드의 고객과 상품을 얼마나 명확하게 구분할지는 향후 운영의 핵심 과제로 꼽힌다.
뉴발란스와 호카는 모두 러닝화를 핵심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다. 판매 채널과 주요 고객이 겹치면 같은 그룹이 운영하는 브랜드끼리 수요를 빼앗는 내부 경쟁이 나타날 수 있다.
뉴발란스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아동 영역까지 폭넓은 고객층을 확보했다면 호카는 두꺼운 밑창과 쿠션 기술을 기반으로 전문 러닝과 퍼포먼스 분야에서 정체성을 구축했다. 매장 입지와 상품 구성, 마케팅 메시지를 브랜드별로 명확히 구분한다면 두 브랜드의 충돌을 줄이면서도 스포츠 소비자의 서로 다른 수요를 흡수할 수 있다.
호카의 성장 방향은 이랜드가 데커스와 확보한 권한의 범위에 따라서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단순히 제품을 수입해 도매와 소매 유통을 담당하는 계약이라면 이랜드그룹이 국내 전용상품을 기획하거나 독자적으로 마케팅을 펼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된다. 반대로 상품기획과 마케팅, 매장 운영 전반에서 폭넓은 권한을 확보한다면 뉴발란스를 키운 현지화 전략을 호카에도 적용할 여지가 커진다.
이랜드그룹 관계자는 “구체적인 상품 범위와 유통 전략은 현재 데커스와 협의하고 있다”며 “상호 합의하는 시점부터 한국 유통 사업을 전개할 예정이며 세부 내용은 확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