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수 드릴로 스웨이츠 빙하에 구멍을 뚫고 있는 영국과 한국의 탐사대. <영국 남극조사국>

[비즈니스포스트] 남극의 기온과 주변 해역 수온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하고 해빙이 줄어드는 등 비우호적인 기후변화 징후가 포착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남극의 빙하는 붕괴될 경우 지구 전체 생태계에 상당한 파급 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한국과 영국, 호주의 조사팀과 학계 전문가들은 '운명의 날 빙하'로 불리는 남극 빙하의 붕괴 상황을 점검하고 대비하기 위해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 남극에서 이상기후 현상 뚜렷, 한겨울 기온 영상 15도 넘고 해빙 소멸

4일 영국 가디언과 로이터 등 외신을 종합하면 남극의 기온 상승으로 해빙이 녹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9월30일(현지시각) 가디언은 미국 콜로라도대 국립 눈 및 얼음 데이터센터가 발표한 자료를 인용해 2026년 남극 겨울 해빙 면적이 관측 역사상 세번째로 작은 수준을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2023~2026년 평균 남극 해빙 면적은 정밀 관측이 시작된 이래로 최소치를 보였다. 1991년부터 2020년까지 기록된 평균치와 비교하면 프랑스 국토만한 크기의 해빙이 사라진 셈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남극 해양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고 있다.

호주 멜버른대의 남극해 전문가 아리안 푸리치는 가디언에 "지난 4년 동안 겨울철 남극 해빙 면적은 기록상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며 "이는 더 이상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해빙이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남극 주변 해양뿐 아니라 지상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2026년 6월 남극 최북단 트리니티 반도에 위치한 아르헨티나 국적의 에스페란사 기지에서는 최고 기온이 15.4도로 기록됐다.

남반구에 위치한 남극 특성상 6월 트리니티 반도 일대 기온은 통상적으로 영하권을 유지하는데 기온이 크게 높아진 것이다.

가디언에 따르면 에스페란사 기지뿐 아니라 남극 반도에 위치한 다른 기지들에서도 비슷한 기온이 관측됐고 눈이 아닌 비가 내리는 사례도 보고됐다.

◆ 한국 포함 세계 조사팀 남극 탐사 확대, 빙하 붕괴 정밀조사

전 세계 각국 조사팀과 학계 전문가들은 남극의 기후변화 현상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9월26일(현지시각) 가디언은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의 무인 남극탐사선 '세일드론'이 남극해 정밀 탐사를 위해 출항했다고 보도했다.

세일드론은 약 2만2천 km에 이르는 해역을 항해해 남극 대기, 해양, 수온, 염분, 용존산소 등 주요 요소를 측정한다.

CSIRO는 이번 탐사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정례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는 세일드론 4대를 순환 배치해 지속적으로 남극의 변화를 감시하기로 했다.

앞서 1월에는 영국 남극조사국(BAS)과 한국 극지연구소(KOPRI)가 합작해 기존에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스웨이츠 빙하'까지 탐사대를 파견했다.

스웨이츠 빙하는 남극 서남부에 위치한 거대 빙하로 두께만 최대 2천 미터에 이른다.

기존에 다른 탐사대가 스웨이츠 빙하를 탐사하지 않았던 이유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스웨이츠 빙하가 위치한 지역은 빙하가 끊임없이 갈라지고 분리되고 있어 안전구역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탐사대원이 틈새에 빠져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험에도 영국과 한국 탐사팀이 스웨이츠 빙하를 방문한 것은 해당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스웨이츠 빙하는 운명의 날 빙하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스웨이츠 빙하가 모두 녹으면 전 세계 해수면이 평균 65cm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또한 남극 내륙의 다른 빙하가 녹아서 바다로 흘러드는 것을 방지하는 마개 역할도 한다.

▲ 한국과 영국 탐사대의 스웨이츠 빙하 열수 시추 지점 모습. <해양수산부>


◆ 학계에서도 경고 목소리 이어져, 남극 빙하 붕괴에 경종

학계에서는 스웨이츠 빙하가 녹고 내륙 빙하까지 바다로 쏟아지게 된다면 전 세계 해수면이 최대 3미터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 남극조사국과 해수부 발표 자료를 종합하면 영국과 한국팀의 공동 실측 결과 스웨이츠 빙하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점이 확인됐다.

관측 이전에 공동 탐사대는 스웨이츠 빙하 아래 남극해의 수온을 영하 2~3도로 추정했다.

해수의 어는점인 영하 1.9도보다 낮은 수온을 유지해야 스웨이츠 빙하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천 미터가량의 얼음을 뚫고 온도를 확인한 결과 스웨이츠 빙하 아래 수온은 영상 1도로 파악됐다. 빙하가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온보다 높다.

호주에서 남극 탐사선을 지속적으로 파견하기로 한 점도 이러한 변화를 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분석된다.

9월2일(현지시각) 남극조사국은 성명을 내고 남극 해안 일대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탐지할 수 있는 정밀 관측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남극 연구를 이어가는 각국의 역량만으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며 전 세계 국가들의 협력 강화를 촉구했다.

피에르 디트리외 남극조사국 박사는 "남극 연안의 해저와 빙하 지형의 관측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라며 "그래야만 남극 빙하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견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극조사국과 미국 물리학회 등의 학설을 종합하면 남극해의 변화는 해수면 상승 하나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극 주변의 차갑고 밀도가 높은 물은 지구 전체의 해류 순환 체계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적도 일대에서 뜨거워진 해수가 남극까지 내려가 식은 뒤에 다시 올라오는 과정에서 해류 순환이 발생하는데 남극 수온이 오르면 해수를 식힐 수단이 없어지게 된다.

이는 해양 생태계 악화는 물론 지구 온난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대 소속 남극 해빙 전문가 윌리엄 홉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다음 여름에도 기온이 크게 높아진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구의 기후 체계는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