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의 미래는 현재의 메모리반도체가 아니라 파운드리와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어떻게 육성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삼성전자 파운드리 공장 내부 모습. <삼성전자>
인공지능(AI) 열풍이 촉발한 메모리반도체 수요 폭증으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 수년간 적자와 업황 침체에 시달리던 반도체 부문은 단숨에 한 해 수백 조원의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돌아섰다.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에는 직원 1인당 평균 6억 원의 대규모 성과급이 지급된다. 그러나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것은 성과급 잔치가 아니라 미래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지금의 호황은 또 하나의 시황 사이클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올해만 300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고, 내년에도 300조 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불과 2년 만에 600조 원 안팎에 달하는 이익을 얻으면서 막대한 투자 자금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이는 웬만한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규모다.
문제는 이 돈을 어디에 쓰느냐다. 성과급으로 나누고 배당으로 돌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미래는 성과급이 아니라 투자에서 결정된다. 지금 삼성이 고민해야 할 것은 올해 영업이익이 아니라 10년 뒤 먹거리다. 현재 삼성을 먹여 살리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이지만, 메모리는 영원한 성장동력이 아니다.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대표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CXMT)와 양쯔메모리(YMTC)는 기술 수준과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과거 한국이 일본을 추격했던 것처럼 중국은 막대한 보조금과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메모리 산업을 추격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존재감조차 없던 CXMT는 올해 1분기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8%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3%)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시장조사업체들은 올해 CXMT의 D램 점유율이 10%를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분기 삼성전자 점유율은 38%, SK하이닉스는 29%였다.
YMTC도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1년 전 8%에 불과했던 YMTC의 점유율은 올해 1분기에 13%까지 상승하며, 샌디스크와 마이크론을 턱밑까지 따라잡았다. 1분기 삼성전자 점유율은 29%, SK하이닉스는 18%였다.
아직은 중국 메모리 기업과 한국 기업 간 기술 격차는 있다. 하지만 5년 내 기술 격차는 거의 사라질 것이고, 중국의 세계 메모리 시장 장악력은 갈수록 높아질 것이다. 중국발 메모리 공급 과잉은 시간 문제다.
그때도 삼성 반도체가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답은 분명하다.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과 시스템반도체다.
현재 삼성 내부에서는 파운드리 사업부와 시스템LSI 사업부가 적자를 내고 있고 성과급도 적다는 불만이 나온다. 그러나 미래 가치는 메모리가 아니라 파운드리와 시스템LSI에 있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은 메모리 기업만이 아니다. TSMC는 파운드리 하나로 세계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 섰다. 엔비디아는 AI 반도체 설계 역량으로 시가총액 세계 최상위 기업이 됐다. 브로드컴과 퀄컴 역시 시스템반도체를 기반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반면 삼성은 여전히 메모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AI 투자 붐이 끝난다고 해서 반도체 시대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도체 수요는 앞으로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 이유는 앞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에 반도체가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에는 수천 개의 반도체가 들어간다. 로봇은 반도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스마트팩토리의 생산라인도 반도체가 제어한다. 선박, 항공기, 드론, 의료기기, 에너지 설비까지 모두 반도체 위에서 움직인다. 미래 산업의 공통 분모는 반도체다. 로보틱스, 바이오도 중요하다. AI 서비스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모든 산업의 기반에는 결국 반도체가 존재한다.
▲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연합뉴스>
이를 위해서는 투자 규모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 파운드리 첨단 공정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해야 한다. 생산설비뿐 아니라 소재, 장비, 패키징, 설계 생태계까지 전방위 투자가 필요하다. 단순히 공장을 짓는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TSMC가 강한 이유는 고객, 설계자산(IP), 생태계가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스템반도체 사업 역시 지금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 삼성 시스템반도체 사업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이미지센서 중심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자동차용 반도체, 산업용 프로세서, AI 가속기, 로봇 제어칩, 전력반도체, 통신칩, 방산용 반도체 등으로 품목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은 2030년 1500억 달러 이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전력반도체 시장 역시 전기차와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따라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업용 AI 칩, 로봇용 프로세서, 방산용 반도체 시장도 주목해야 한다.
결국 미래 반도체 시장의 승자는 메모리를 가장 많이 만드는 기업이 아니라 가장 많은 종류의 시스템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이 될 것이다.
인재 확보 전략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세계 최고 설계자 한 명이 수십조 원의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다. 뛰어난 AI 반도체 개발자, 설계 엔지니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있다면 성과급 6억 원이 아니라 60억 원을 줘서라도 데려와야 한다.
삼성전자는 지금 역사적 기회를 맞고 있다. AI 붐은 삼성에게 막대한 현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시험은 지금부터다. AI 덕분에 번 돈을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10년 뒤 삼성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메모리 호황에 취해 현재의 성공을 즐기는 데 그친다면 삼성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하락 사이클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AI 메모리 잔치는 곧 끝난다. 하지만 반도체 시대는 끝나지 않는다. 김승용 산업&IT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