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주 사장이 중흥건설그룹의 몸집을 빠르게 불리고 있다.
중흥건설그룹은 지난해 대규모기업집단에 지정돼 사세확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관측됐지만 올해 자산이 지난해보다 2조 원 이상 늘어났다.
중흥건설그룹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공공택지지구 입찰에 주력한 뒤 아파트를 건설·분양하는 방법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일부에서 정 사장이 중흥건설의 사세를 무리하게 확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과거 청구와 우방 등 중견 건설회사들이 무섭게 사업을 확대하다 시장침체로 위기를 맞은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 중흥건설, 무섭게 사업확대
26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원주 사장은 최근 중흥건설그룹의 사업분야를 아파트 분양뿐 아니라 도시정비사업,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등으로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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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주 중흥건설 사장. |
중흥건설은 최근 한국토지공사(LH)가 공모한 뉴스테이 5차사업에서 광주 효천지구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월세가 보편화하고 미분양 리스크가 늘면서 주택시장이 뉴스테이사업을 진행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변하고 있어 중흥건설이 뉴스테이사업 진출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전월세난 등을 보면 주택시장은 소유와 투자 목적에서 거주 목적으로 바뀌고 있다”며 “일정기간에 안정적으로 임대수입을 올린 뒤 선택에 따라 분양수입을 낼 수 있는 뉴스테이가 새로운 먹거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아파트 분양사업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중흥건설은 올해 전국 14개 단지에서 모두 1만3740가구를 분양하기로 했다. 주요 사업지역은 화성 동탄, 충남 당진·서산, 세종, 원주 등 지난해 분양열풍이 불었던 곳들이다.
중흥건설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자체 주택공급에서 전국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중흥S-클래스’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큰 인기를 끌었다.
정 사장은 도시정비사업을 확대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중흥건설은 4월 부산 진구에서 3200억 원 규모의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수주했다.
중흥건설은 지난해 도시정비사업에서만 1조 원 이상을 수주했다. 지난해 국내 대형 건설사 가운데 도시정비사업에서 1조 원 이상을 수주한 곳은 GS건설과 대림산업 등 5곳에 불과하다.
중흥건설의 시공평가능력은 2012년 77위에서 2013년 63위, 2014년 52위를 거쳐 지난해 39위로 빠르게 상승했다.
◆ 중흥건설, 대기업 지정된 뒤 자산 2조 늘어
중흥건설그룹의 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7조6천억 원에 이른다. 2014년 말 5조6천억 원이었는데 1년 만에 2조 원이나 늘어났다. 지난해 대기업집단에 포함됐는데도 자산증가는 멈추지 않고 있다.
중흥건설그룹은 지난해 정창선 회장과 정원주 사장이 비자금 조성혐의로 수사와 재판을 받는 등 악재를 겪었는데도 자산을 불렸다.
정원주 사장은 지난해 비자금 조성혐의로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정 사장은 올해 중흥건설그룹 대부분 계열사의 사내이사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정 사장은 등기이사에서 물러났을 뿐 중흥토건 사장으로 여전히 중흥건설그룹 경영을 사실상 책임지고 있다.
공정위가 지난 4월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자산순위에서 중흥건설그룹은 공기업을 제외하고 40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에 처음 지정됐을 때 48위였는데 1년 사이 순위가 8 계단이나 상승했다.
대기업집단에 포함되면 삼성그룹, 현대차그룹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재벌들과 동일한 규제를 받는다. 상호출자 금지, 채무보증 제한, 세제혜택 축소 등 50가지가 넘는 규제가 적용된다. 이 때문에 빠르게 성장해온 중견그룹도 대기업집단에 진입하면 성장속도가 둔화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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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선 중흥건설 회장. |
삼천리그룹의 경우 2014년 대기업집단에 처음 포함된 뒤 이듬해 자산 증가폭은 6천억 원에 그쳤다. 아모레퍼시픽그룹과 한솔그룹도 대기업집단에 지정 뒤 1년 동안 자산이 각각 4천억 원, 1천억 원 늘어났을 뿐이다.
이 때문에 중흥건설그룹이 지난해 대기업집단에 지정됐을 때 자산규모가 오히려 줄어들거나 늘어나도 소폭에 그칠 것으로 관측됐다.
하지만 중흥건설그룹은 대기업집단에 포함된 지 1년 만에 자산이 35.7%나 증가했다. 신규지정된 곳을 제외하면 대기업집단 중 자산증가율이 가장 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을 기존 자산 5조 원에서 10조 원으로 늘리기로 하면서 중흥건설그룹의 몸집은 더욱 빠르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중흥건설그룹 성장, 계열사 통한 공공택지 입찰
중흥건설그룹이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주관한 공공택지 분양이 있다.
2010년부터 2015년 1분기까지 토지입찰 결과를 분석하면 중흥건설그룹은 5년 동안 토지낙찰에 모두 32개의 계열사를 동원했다.
중흥건설그룹은 이 기간에 모두 76개 필지에 입찰을 신청했는데 이 가운데 24개 필지가 당첨됐다. 1개 필지에 최대 31개의 계열사를 동원해 입찰에 참여하기도 했다.
중흥건설그룹은 당첨된 24개의 필지의 58.3%인 14개 필지를 다른 계열사에 전매했다. 애초에 낙찰받은 계열사가 주택을 공급할 의도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땅을 낙찰받아 다른 계열사에 넘겨준 셈이다.
정성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2014년 국정감사에서 중흥건설 등 중견건설사들이 수십 개의 계열사를 동원해 공동주택용지 당첨율을 끌어오리는 편법을 통해 외형확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 의원은 당시 공공주택용지 입찰방식이 공정거래법상 부당한 공동행위에 해당된다며 공정한 경쟁체제 마련을 위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중흥건설 관계자는 “택지를 입찰할 때 시공능력과 현금동원 능력 등 일정기준이 충족돼야 한다”며 “중흥건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공택지를 매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흥건설의 반면교사, 청구와 우방
업계 관계자들은 중흥건설그룹이 청구와 우방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청구와 우방은 1990년대 모두 대구와 경북지역을 중심으로 사세를 급속히 불리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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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홍 전 청구그룹 회장(왼쪽)과 고 이순목 우방건설 회장. |
청구는 1973년 청구주택개발을 모태로 단독주택을 건설해 판매하는 소규모 주택사업으로 사업기반을 닦았다. 그 뒤 대구와 경북지역에서 아파트를 분양하면서 사업을 확장했다.
청구는 1982년 지방에 연고를 둔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서울과 수도권 지방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89년 수도권 신도시 조성정책에 힘입어 사세가 급격하게 확장됐다.
하지만 청구가 건설사업 이외에 눈을 돌려 신규사업에 진출하면서 사업확대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청구건설은 주택사업으로 입지를 다졌다고 판단해 사업계획을 탈주택으로 방향을 바꾸고 백화점, 방송, 관광, 정보통신, 레저 등으로 급속히 사업을 확장했다.
청구그룹이 1997년 보유하고 있던 계열사는 블루힐백화점, 경일상호신용금고, 대구복합화물터미널 등을 포함해 모두 16개에 이른다.
청구건설은 사업확대에 따른 투자금 회수에 연이어 실패하다가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단기금리가 40%대까지 치솟아 정상적 기업활동이 불가능해졌고 결국 그룹이 해체됐다.
우방도 1978년 우방주택을 모태로 설립돼 대구·경북지역에서 승승장구했다. 우방은 청구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 수도권에서 진행된 신도시 건설정책에 힘입어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우방은 1986년 대구지역 내 주택보급 실적 1위에 오른데 이어 1989년 주택건설 실적 전국 2위에 올랐다. 지방에 본사를 둔 건설사가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과 경쟁을 벌여 거둔 성과로 당시에 큰 주목을 받았다.
우방도 주택사업에서 큰 성과를 내자 아파트건설사업 외로 눈을 돌렸다. 우방은 1995년 대구에 우방타워랜드를 개장해 레저사업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가 터지면서 급상승한 금리와 사업확장 과정에서 발생한 일시적 자금 경색을 이기지 못해 2000년 부도처리됐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