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명희는 1943년 9월5일 경남 의령에서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딸로 태어났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생활미술을 전공했다.

1967년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한동안 가정주부로 생활하다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담당 이사로 경영 일선에 나섰다.

1997년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으로부터 분리된 뒤 전문경영인에게 책임경영을 맡겼다.

1998년부터 신세계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2008년 포브스의 발표에 따르면 이명희의 자산은 약 20억 달러로 세계 605위를 차지했다. 당시 국내 여성 가운데 부자 1위였다.

2014년 포브스의 발표에서는 자산 약17억 달러를 기록했고 세계 1046위를 차지했다. 여전히 국내 여성 가운데는 가장 높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이명희는 아버지 이병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명희 또한 아버지를 가장 따르고 정성을 다해 모셨다. 젊은 시절 그는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의 당도를 먼저 맛본 뒤 부친이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확인을 하고 들여보내곤 했다고 한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를 복사해 수첩에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로 이명희는 부친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불교신자로 평소 불교를 공부하는 친목 모임을 연다. 이런 점이 차분하면서도 신중한 창업주의 경영스타일을 더욱 닮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해에 고작 한두 차례 회사를 방문해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 사후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큰’ 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신세계 본점 재개발 사업, 신규 백화점 진출, 명품 브랜드 유치 등 큰 이슈들에 대해서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명희가 2000년대 이마트를 앞세워 대형마트 시장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신세계그룹은 여전히 백화점 하위권 기업으로 남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013년 신세계그룹의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배당금을 전혀 줄이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그의 가족이 받은 배당금은 신세계그룹의 실적이 좋았을 때와 같은 161억 원이었다.

이명희는 89억 원, 정용진 부회장은 48억 원, 정유경 사장은 14억 원,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은 10억 원 가량을 각각 받았다. 여기에 19개에 이르는 비상장법인의 배당금까지 합치면 배당금액은 더욱 늘어난다.

2014년에는 91억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는 국내 40대 그룹의 재벌 총수 가운데 여성으로서 세 번째로 많았다.

범 삼성가의 여성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경영인으로 일과 가정을 한꺼번에 챙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과 CJ가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기일마다 빠짐없이 제사에 참석해왔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례식장을 삼성 오너 일가 가운데는 유일하게 연속으로 두 번 찾았다.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만성질환을 겪는 상황에서 징역형을 구형받자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전히 신세계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재계에서 찾기 힘든 70세를 넘긴 여성 경영인으로 꼽힌다.

72세인데도 불구하고 정용진 부회장이 아직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7.32%씩 밖에 지니고 있지 않아 지분 승계가 다소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15년 12월 실시한 임원인사를 통해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사장이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을 각각 맡으며 후계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7년 4월 신세계가 삼성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된 이후 매출이 40% 이상 급성장했다. 전문경영인에게 책임경영을 맡겨 핵심역량을 유통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평가 받는다.

1979년 2월 신세계백화점에 영업담당이사로 입사했지만 20여 년 동안 직접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1980년 상무, 1997년 부회장을 거쳐 1998년부터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백화점 부문에서는 신세계를 국내 2위로 올려놨고 대형 마트 부문에서도 이마트를 국내 대형마트 1위 업체로 만들었다.

◆ 학력

1961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1965년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를 졸업했다.

비슷한 연배이자 이화여대 동문으로 신영자 롯데복지재단 이사장이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이화여대 동문이다.

◆ 가족관계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이 아버지이고 삼성그룹 2대 회장 이건희의 여동생이다.

3남5녀 중 막내딸이다. 위로 오빠 셋이 있다. 차례로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언니는 이인희, 이숙희(형부 구자학 아워홈 회장), 이순희, 이덕희이고 아래로 이병철이 일본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이태휘, 이혜자가 있다.

이명희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형제들과 우애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재은 명예회장과 사이에서 정용진, 정유경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정용진은 신세계그룹 부회장이고, 정유경은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다.

정재은 명예회장은 1980년대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 가족관계

삼성그룹을 창업한 이병철이 아버지이고 삼성그룹 2대 회장 이건희의 여동생이다.

3남5녀 중 막내딸이다. 위로 오빠 셋이 있다. 차례로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 이창희 전 새한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다. 언니는 이인희, 이숙희(형부 구자학 아워홈 회장), 이순희, 이덕희이고 아래로 이병철이 일본 여성과 사이에서 낳은 이태휘, 이혜자가 있다.

이명희는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형제들과 우애가 좋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재은 명예회장과 사이에서 정용진, 정유경 등 1남1녀를 두고 있다. 정용진은 신세계그룹 부회장이고, 정유경은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이다.

정재은 명예회장은 1980년대 삼성전자 사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롬비아대학교에서 산업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엔지니어 출신이다.

어록


"’기업이 곧 사람’이란 선대회장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인재양성과 사람에 대한 투자를 경영의 근간으로 여겼다"며 "새로운 사업을 기획하고 일자리를 늘려 사업보국 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 여기기 때문에 이번에 사재를 출연키로 했다." (2015/11/12 청년희망펀드에 30억을 사재로 출연하면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나는 태산이 무너진 듯 슬픔을 견딜 수가 없어 한때 방황을 하기도 했다. 이 때의 미국 여행이 오히려 지금의 이마트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환경의 변화가 필요해 찾은 곳에서 나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미국에 체재하면서 프라이스 클럽과 월마트 등 창고형 점포를 보았다. 이것을 회사에 제안하였고 1993년 창동에 최초로 테스트 점포를 연 것이 오늘날 이마트의 시작이다." (2010/02/08, 호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신세계그룹이 제작한 이미지 광고를 발표하며)

"1년에 두 번 정도 유럽과 뉴욕을 다녀옵니다. 1년 이상 해외에 다녀오지 않으면 패션을 따라가지 못해요. 저는 외국을 갔다 오면 완전히 바뀌어 돌아옵니다. 미국에 가면 건축에 빠지고, 미술감각도 달라져 돌아옵니다. 좋은 것을 발견하면 반드시 사진을 찍습니다. 그 물건이 몇 달 뒤엔 꼭 제 앞에 있어야 해요. 추구하지 않고 감동받지 않는 삶은 재미가 없어요." (2005/06/01, 한 잡지사 인터뷰에서)

"내가 39세가 됐을 때 신세계에서 일을 해볼 것을 권유한 것은 아버지였다. 나는 현모양처의 꿈을 접고 신세계에서 일을 시작했다." (2005년 사보에서)

◆ 평가

이명희는 아버지 이병철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명희 또한 아버지를 가장 따르고 정성을 다해 모셨다. 젊은 시절 그는 부친이 사무실에서 먹는 과일의 당도를 먼저 맛본 뒤 부친이 좋아하는 정도의 당도인지 확인을 하고 들여보내곤 했다고 한다.

부친의 선견지명과 직관력이 소개된 한 일간지를 복사해 수첩에 항상 갖고 다니며 경영의 시금석으로 삼을 정도로 이명희는 부친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불교신자로 평소 불교를 공부하는 친목 모임을 연다. 이런 점이 차분하면서도 신중한 창업주의 경영스타일을 더욱 닮도록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 해에 고작 한두 차례 회사를 방문해 주요 사안이나 인사에 대해 사후보고를 받을 정도로 전문경영인을 믿고 맡겨 ‘통큰’ 경영을 한다는 얘기를 듣는다. 신세계 본점 재개발 사업, 신규 백화점 진출, 명품 브랜드 유치 등 큰 이슈들에 대해서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이명희가 2000년대 이마트를 앞세워 대형마트 시장을 공략하지 않았다면 신세계그룹은 여전히 백화점 하위권 기업으로 남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2013년 신세계그룹의 실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배당금을 전혀 줄이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 당시 그의 가족이 받은 배당금은 신세계그룹의 실적이 좋았을 때와 같은 161억 원이었다.

이명희는 89억 원, 정용진 부회장은 48억 원, 정유경 사장은 14억 원, 남편 정재은 명예회장은 10억 원 가량을 각각 받았다. 여기에 19개에 이르는 비상장법인의 배당금까지 합치면 배당금액은 더욱 늘어난다.

2014년에는 91억원 가량의 배당금을 받았다. 이는 국내 40대 그룹의 재벌 총수 가운데 여성으로서 세 번째로 많았다.

범 삼성가의 여성 가운데 가장 성공한 경영인으로 일과 가정을 한꺼번에 챙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과 CJ가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기일마다 빠짐없이 제사에 참석해왔다. 이맹희 CJ그룹 명예회장의 장례식장을 삼성 오너 일가 가운데는 유일하게 연속으로 두 번 찾았다. 조카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만성질환을 겪는 상황에서 징역형을 구형받자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전히 신세계그룹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어 재계에서 찾기 힘든 70세를 넘긴 여성 경영인으로 꼽힌다.

72세인데도 불구하고 정용진 부회장이 아직 신세계와 이마트 지분을 각각 7.32%씩 밖에 지니고 있지 않아 지분 승계가 다소 더디게 이뤄지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2015년 12월 실시한 임원인사를 통해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사장이 이마트 부문과 백화점 부문을 각각 맡으며 후계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졌다는 평가도 있다.

◆ 기타

1979년 신세계백화점 영업사업본부 이사로 첫 출근하기 전날 부친인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으로부터 "누군가에게 맡겼으면 전적으로 신뢰하고 서류에 사인하려고 하지 마라"는 경영 지침을 받았다고 한다. 신세계그룹 결재 서류에 회장 서명란이 없다.

삼성그룹 회장 이건희가 이명희를 장미에 비유했다고 한다. 그는 이건희가 자신을 ‘평범하지 않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열정이 유별나게 눈에 띄는 스타일’이라고 했다며, 나중에 자신의 비문에 “유난하게 살았던 자, 이명희 여기 잠들다‘라고 새기려고 한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청담동 일대 토지를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청담동 내에서 패션의 1번지라 불리는 압구정로 60길 일대 토지와 빌딩은 신세계 소유 건물이 많다. 이른바 ‘신세계 타운’이라고 불린다.

이명희가 거주하고 있는 한남동 주택의 2015년 공시가격은 164억5천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6.9% 늘었다. 이는 30대 민간그룹 총수 본인 명의의 개별 및 공동 주택 가운데 개별주택으로는 가장 비쌌다.

한남동 주택 외에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이 소유했던 한남동 소재 다른 주택을 2013년에 사들여 소유하고 있다.

아들 정용진 부회장과 함께 2015년 11월 청년희망펀드에 각각 사재 30억 원을 출연했다. 이에 대해 2015년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따기 위해 이뤄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