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국내외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이 의무공개매수제도 재논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30일 뒷편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용우 레인메이커자산운용 대표, 백지윤 블래쉬자산운용 대표, 용환석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김봉기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이찬형 페트라자산운용 대표, 김지열 쿼드자산운용 이사, 김연수 칸서스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지배주주의 선행매수를 허용한 의무공개매수제가 도입되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상장사의 일반주주 지분 가치만 할인될 것이다.”

30일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국내외 자산운용사 관계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날 국회 본회의 처리를 앞둔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자본시장법 개정안의 처리를 보류하고 제도 설계를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날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국내외 자산운용사 18곳이 이름을 올렸고 이날 행사에는 10곳이 참석했다. 이들의 합산 수탁고는 약 87조 원으로 올해 6월 말 국내 자산운용사의 전체 펀드 순자산 1731조 원(금융감독원 기준)의 약 5%에 해당한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각 운용사 대표들이 국회와 정부 관계자들에게도 의견을 전달했다. 본회의를 통과하면 다시 법을 개정하는 데 몇 년이 걸릴 수 있어 매우 절박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참여 운용사 가운데는 독립계 운용사와 적극적 주주활동을 펼쳐온 곳이 상당수 포함됐다. 이들 운용사는 특정 종목에 집중 투자하거나 적극적 주주활동을 펼치고 있어 경영권 거래가 발생했을 때 보유주식 가운데 어느 정도를 경영권 프리미엄이 반영된 가격에 처분할 수 있느냐가 펀드 수익률과 연결될 수 있다.

다만 참석자들은 이번 사안이 특정 운용사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 전반의 수익률과 수탁자 책임에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스튜어드십코드 등 수탁자 책임이 강화되는 흐름에서 고객에 대한 책임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며 “급박하게 의견을 모으느라 18곳만 참여했지만 시간이 더 있었다면 대형사를 비롯해 100곳이 넘는 운용사가 참여했을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당초 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대관이 무산되면서 장소가 변경됐다. 금투협은 일부 운용사의 입장이 금융투자업계 전체 의견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참석자들은 상장주식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라면 규모와 무관하게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입장을 내놓은 셈이다.

운용사들이 문제 삼는 핵심은 정무위를 통과한 현행 개정안이 의무공개매수 과정에서 지배주주의 선행매수를 허용한 데 있다.

개정안은 주식 매수로 25% 이상을 보유한 최대주주가 되거나 이미 25% 이상을 가진 최대주주가 추가로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 의무공개매수 의무를 부과한다. 다만 인수자가 지배주주의 지분을 장외에서 먼저 매수하는 것은 허용하고, 이후 발행주식총수의 50%+1주에서 이미 확보한 지분을 뺀 물량만 공개매수하면 의무를 충족하도록 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주식 1주는 동일한 가치와 권리, 대우를 받아야 한다”며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경영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이러한 원칙이 충분히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과 펀드 역시 수많은 기업의 주주인 만큼 주주 사이의 공정한 대우는 국민 자산과도 연결된다”고 했다.

운용사들이 제시한 대안은 지배주주의 선행매수를 배제하고 지배주주 역시 일반주주와 같은 공개매수에 응하도록 하는 ‘비례적 공개매수’다. 인수자가 사들이는 전체 물량은 50%+1주로 유지하되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응모주식에 같은 가격과 같은 안분비례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1997년 국내에서 시행됐다가 1998년 폐지된 의무공개매수제 역시 주식 취득 뒤 25% 이상을 보유하게 되는 경우 일정 지분 이상의 취득을 처음부터 공개매수 절차에서 진행하도록 했다. 운용사들은 이런 점에서 현 개정안이 약 30년 전 제도보다 후퇴했다고 언급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인수자가 50%+1주를 확보하면 나머지 일반주주가 모두 결집하더라도 주주총회 보통결의를 저지하기 어려워져 일반주주가 보유한 주식의 의결권 가치가 이전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2015년 이후 주요 M&A 35건 가운데 최대주주 매각지분이 50% 이상인 거래가 15건(42.9%)이었다"며 "현 개정안을 적용하면 일반주주 대상 후속 공개매수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운용사 측 자료에 따르면 현재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코스피200 기업의 평균 지배주주 지분율도 44.3%다. 인수자가 이 지분을 전량 선행매수하면 일반주주가 모두 응모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주주는 보유주식의 약 10.2%만 같은 가격에 팔 수 있다.

비례적 공개매수가 M&A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인수자의 최소 매수 물량과 자금 부담은 현행안과 같고, 모든 지배주주가 보유지분 전량 매각을 원하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들은 야후재팬 계열 Z홀딩스가 2019년 패션 이커머스 회사 ZOZO를 인수한 사례를 들어 창업주와 일반주주가 같은 공개매수에 응모해 동일한 안분비례율을 적용받으면서도 거래가 성사됐다고 설명했다.

▲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현 의무공개매수 개정안이 최근 추진되고 있는 주주권 강화 정책의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민국 대표는 현 의무공개매수 개정안이 최근 추진되고 있는 주주권 강화 정책의 효과를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개정 상법을 통해 이사가 전체 주주를 공평하게 대해야 할 책임이 강화되고 스튜어드십코드 활성화와 한국형 베어허그 도입 등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지배주주에게 보유지분을 먼저 팔 수 있도록 하면 기존 개혁을 우회하는 일종의 ‘프리패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한국형 베어허그는 상장사에 중대한 인수 제안이 들어오면 이를 공개하고 이사회가 제안에 대한 검토 결과와 의견을 주주에게 알리도록 해 경영권 거래의 투명성과 가격 발견 기능을 높이려는 제도다.

김 대표는 “기업가치가 가장 두드러지는 시점은 경영권이 바뀌는 때”라며 “그 시점에 지배주주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나머지 주주는 다른 조건을 적용받는다면 기업가치가 모든 주주에게 동일하게 귀속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비례적 공개매수가 도입되면 지배주주 지분에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고 일반주주 지분은 시장가격에 남는 ‘이중가격’ 구조도 완화할 수 있다고 봤다.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가 같은 가격과 같은 비율로 주식을 매각하게 되면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도 시장 주가와 더욱 밀접하게 연결돼 평소 기업가치와 주가를 높일 유인이 커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연수 칸서스자산운용 대표는 “대주주가 경영권 프리미엄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경영권, 더 정확히는 경영책임은 이사회에 있다”며 “대주주와 일반주주는 모두 주주로서 의결권과 배당권 등의 권리를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본회의 통과 뒤에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등의 방안도 남아 있다. 공론화를 통해 한국 금융시장에 나쁜 선례가 남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