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4일(현지시각) 미국 메모리 학회에서 고대역폭플래시(HBF)의 세계 첫 표준 규격을 공개하며, 차세대 낸드플래시 메모리 시장 선점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제미나이로 생성한 이미지>
대용량의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는 HBF는 AI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HBM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다변화하는 동시, 차세대 낸드플래시 시장의 주도권까지 확보하는 '쌍두마차' 전략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4일(현지시각) 미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메모리 학회 'FMS(Future of Memory and Storage) 2026'에서 글로벌 낸드 플래시 기업 샌디스크와 함께 HBF의 첫 표준 규격을 최초로 선보인다.
이번 규격은 낸드 다이를 8단과 16단으로 쌓는 두 가지 방식을 기준으로 최대 512기가바이트(GB)까지 정의했다. 대역폭은 1~3등급으로 나눠 약 0.4TB/s(초당 테라바이트)에서 3.0TB/s까지 구현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HBF는 최근 AI 시장의 트렌드가 '학습'에서 '추론'으로 급격히 이동함에 따라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다.
HBM처럼 데이터를 고속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갖추면서도, D램 대신 낸드플래시를 기반으로 제조돼 데이터 저장 용량을 대폭 키울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HBF는 HBM을 보완하는 메모리다. HBM이 그래픽처리장치(GPU)의 빠른 연산을 돕는 역할을 담당한다면, HBF는 AI가 처리하는 거대한 양의 데이터를 대용량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HBF는 기존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나 기업용 eSSD도 보완할 수 있다. SSD보다 빠르다는 점을 활용해 HBM과 SSD 사이에서 공백을 메우는 것이다.
▲ 고대역폭플래시(HBF) 메모리 구조도. <샌디스크>
'HBM의 아버지'로 불리는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올해 2월 기자간담회에서 "2038년 정도에는 현재 HBM 시장 규모보다 HBF 시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 교수는 "속도를 결정하는 것은 HBM이고 용량을 결정하는 것은 HBF지만, HBF만으로 GPU를 구동할 수는 없기 때문에 두 기술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컴퓨터공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 수상자 데이비드 패터슨 UC버클리대 명예교수는 "HBF는 데이터 폭증으로 인한 새로운 AI 병목 구간의 중심에 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하느냐가 핵심 변수인 상황에서, HBF가 적은 전력으로 압도적 대용량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강력한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는 HBF를 새로운 메모리 성장 축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HBM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만큼 HBF 시장까지 선점한다면, HBM과 HBF라는 강력한 '투트랙(쌍두마차)' 포트폴리오를 확보해 중장기적 매출 확대와 수익성 향상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여기에 SK하이닉스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 키옥시아의 최대 주주에 올라설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HBF를 선점한다면 낸드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상욱 신영증권 연구원은 "HBF의 중요성이 본격 부각되기 시작했다"며 "HBF 상용화는 향후 낸드 산업 전반에 구조적 변화를 가져와 업황 개선 및 전체 수익성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연구원은 HBF 시장이 2027년 약 10억 달러(약 1조4500억 원)에서 2030년 120억 달러(약 17조4천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이란 전망을 내놨다.
SK하이닉스는 아직 HBF의 양산 시점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올해 2월 회사 관계자가 "업계는 HBF를 포함한 복합 메모리 솔루션 수요가 2030년 전후로 본격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만큼, 2030년을 전후로 양산 체제에 돌입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경쟁사인 삼성전자는 공식적으로 HBF 사업 로드맵을 공개하진 않았으나, 올해 초부터 HBF 관련 핵심 특허를 연달아 출원하고 있다. 김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