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국 수출이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연간 1조 달러 달성을 가시권에 두고 있지만 역대급 무역흑자에도 원화 강세로 곧장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달러 공급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흡수하고,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에는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순매수하는 가운데 수출기업의 달러 공급과 글로벌 달러 약세에 미·일 당국의 엔화 방어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했다. 최근 환율 안정이 해외자산 투자 확대라는 중장기 흐름을 되돌리는 변화인지, 일시적 수급 개선인지를 놓고 전망은 엇갈린다.
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7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2.8% 증가한 988억9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6월 1021억7천만 달러에 이어 역대 월간 수출액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무역수지는 303억2천만 달러 흑자를 냈다. 1~7월 누적 무역흑자는 1680억1천만 달러로 기존 연간 최대치인 2017년의 952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올해 1~7월 누적 수출액은 5952억 달러다. 남은 5개월 동안 월평균 약 81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이어가면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
7월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8.8% 증가한 410억1천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41.5%를 차지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도 26% 늘었고, 20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가전을 제외한 19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해 수출 호조가 반도체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수출과 무역흑자가 급증했는데도 원화 가치가 그에 비례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늘어나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최근 환율 흐름을 설명하려면 경상수지 흑자가 만드는 달러 공급뿐 아니라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와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 등 자금 이동이 만드는 달러 수요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한국의 중장기 환율 전망 및 대외건전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만든 원화 강세 압력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사실상 상쇄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초 119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6월 1549원까지 올랐다. 환율 변동 요인의 기여도를 분해한 결과 경상수지 흑자는 원화에 약 29%포인트의 절상 압력을 만들었지만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약 29%포인트의 절하 압력으로 작용했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위험프리미엄 성격의 미설명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원화 약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해외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바라봤다. 높은 저축률이 유지되는 가운데 저성장으로 국내 자본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국내 투자가 저축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규모·수익률 한계로 가계와 기관의 자금이 해외자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높은 금리와 자산 수익률에 AI 투자 붐까지 겹치면서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원화로 충분히 환전되지 않고 해외자산 취득으로 다시 유출되는 경로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채권국 단계에서 상품수지 흑자를 통화 절상보다 해외자산 축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상상인증권은 상품수지와 순대외자산의 GDP 대비 비율로 볼 때 현재 한국의 위치가 2000년 대만 및 2018년 독일과 겹친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 모두 상품수지 흑자가 유지됐지만 해외자산 축적이 동반되면서 의미 있는 통화 절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일본계 금융그룹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산하 MUFG은행도 AI 투자 붐이 미국 자산 선호를 높이며 이 같은 흐름을 강화했다고 봤다.
MUFG은행이 지난달 23일 내놓은 'AI는 외환시장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흑자는 6월까지 최근 12개월 동안 사상 최대인 약 1880억 달러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원화 가치는 최근 1년 동안 달러 대비 약 6% 하락했다.
MUFG은행은 한국과 대만이 AI 반도체와 서버 등 하드웨어 수요의 혜택을 보는 동안 AI 관련 투자와 금융자산 수요가 미국에 집중되면서 달러 가치가 지지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한국 거주자의 2025년 해외주식 매수액은 역대 최대인 1140억 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미국 주식 투자액이 736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약세를 이끌었던 일부 단기 수급 여건이 달라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은 7월 마지막 주 코스피에서 1조5천억 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한 주 동안 23원 하락한 1435.5원까지 내려왔다. 하나증권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나타난 달러 약세와 SK하이닉스의 외환시장 달러 공급, 일본 당국의 개입에 따른 엔/달러 환율 급락 등이 환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엔화 움직임은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다. SK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일본의 엔화 매입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추가 엔저를 제한하는 정책 신호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와 엔화의 급격한 추가 약세 위험 완화는 원화에도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미·일 금리차와 일본의 재정·에너지 부담이 남아 있어 엔화가 추세적 강세로 전환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엔화가 빠르게 반등하면 엔 캐리 거래 청산이 위험자산 전반의 포지션 축소로 이어져 원화 변동성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앞으로 원화 흐름을 놓고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MUFG은행은 대규모 무역흑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원화 절상 압력을 상쇄해 온 국내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와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가 둔화하면 원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상상인증권은 한국이 흑자를 해외자산으로 재순환하는 채권국 단계에 들어선 만큼 원화 저평가와 높은 원/달러 환율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외국인 자금 유입과 엔화 반등은 원화 약세 압력을 낮추고 있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가 만든 달러 공급이 해외증권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로 계속 상쇄된다면 최근 환율 하락이 추세적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한국 수출이 연간 1조 달러에 도달하더라도 원화 강세가 자동으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자금과 글로벌 달러·엔화 흐름이,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증권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가 환율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
그동안 경상수지 흑자로 늘어난 달러 공급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흡수하고,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가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 한국 수출이 AI 반도체 호황으로 연간 1조 달러를 가시권에 뒀지만 해외증권투자 확대가 무역흑자의 원화 강세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사진은 경기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다만 최근에는 외국인이 국내주식을 순매수하는 가운데 수출기업의 달러 공급과 글로벌 달러 약세에 미·일 당국의 엔화 방어 움직임까지 더해지며 원/달러 환율이 빠르게 하락했다. 최근 환율 안정이 해외자산 투자 확대라는 중장기 흐름을 되돌리는 변화인지, 일시적 수급 개선인지를 놓고 전망은 엇갈린다.
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7월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62.8% 증가한 988억9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6월 1021억7천만 달러에 이어 역대 월간 수출액 가운데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무역수지는 303억2천만 달러 흑자를 냈다. 1~7월 누적 무역흑자는 1680억1천만 달러로 기존 연간 최대치인 2017년의 952억 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올해 1~7월 누적 수출액은 5952억 달러다. 남은 5개월 동안 월평균 약 810억 달러의 수출 실적을 이어가면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출 1조 달러를 달성할 수 있다.
7월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178.8% 증가한 410억1천만 달러로 전체 수출의 41.5%를 차지했다. 반도체를 제외한 수출도 26% 늘었고, 20대 주력 수출품목 가운데 가전을 제외한 19개 품목의 수출이 증가해 수출 호조가 반도체에만 국한되지는 않았다.
문제는 수출과 무역흑자가 급증했는데도 원화 가치가 그에 비례해 오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수출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면 외환시장의 달러 공급이 늘어나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최근 환율 흐름을 설명하려면 경상수지 흑자가 만드는 달러 공급뿐 아니라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와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 등 자금 이동이 만드는 달러 수요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한국의 중장기 환율 전망 및 대외건전성 점검’ 보고서를 통해 2022년 이후 경상수지 흑자가 만든 원화 강세 압력을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사실상 상쇄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초 1190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올해 6월 1549원까지 올랐다. 환율 변동 요인의 기여도를 분해한 결과 경상수지 흑자는 원화에 약 29%포인트의 절상 압력을 만들었지만 내국인의 해외증권투자가 약 29%포인트의 절하 압력으로 작용했다.
외국인 자금 이탈과 위험프리미엄 성격의 미설명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달러 강세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원화 약세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최 연구원은 해외투자 확대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바라봤다. 높은 저축률이 유지되는 가운데 저성장으로 국내 자본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국내 투자가 저축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하고, 국내 자본시장의 규모·수익률 한계로 가계와 기관의 자금이 해외자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높은 금리와 자산 수익률에 AI 투자 붐까지 겹치면서 흑자로 벌어들인 달러가 원화로 충분히 환전되지 않고 해외자산 취득으로 다시 유출되는 경로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한국이 채권국 단계에서 상품수지 흑자를 통화 절상보다 해외자산 축적으로 연결하고 있다는 진단도 내놨다. 상상인증권은 상품수지와 순대외자산의 GDP 대비 비율로 볼 때 현재 한국의 위치가 2000년 대만 및 2018년 독일과 겹친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 모두 상품수지 흑자가 유지됐지만 해외자산 축적이 동반되면서 의미 있는 통화 절상을 경험하지 못했다.
일본계 금융그룹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MUFG) 산하 MUFG은행도 AI 투자 붐이 미국 자산 선호를 높이며 이 같은 흐름을 강화했다고 봤다.
MUFG은행이 지난달 23일 내놓은 'AI는 외환시장을 어떻게 재편하고 있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무역흑자는 6월까지 최근 12개월 동안 사상 최대인 약 1880억 달러로 확대됐다. 그럼에도 원화 가치는 최근 1년 동안 달러 대비 약 6% 하락했다.
MUFG은행은 한국과 대만이 AI 반도체와 서버 등 하드웨어 수요의 혜택을 보는 동안 AI 관련 투자와 금융자산 수요가 미국에 집중되면서 달러 가치가 지지를 받았다고 분석했다. 한국 거주자의 2025년 해외주식 매수액은 역대 최대인 1140억 달러였으며 이 가운데 미국 주식 투자액이 736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외환시장에서는 원화 약세를 이끌었던 일부 단기 수급 여건이 달라지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 엔화 이미지. <연합뉴스>
하나증권에 따르면 외국인은 7월 마지막 주 코스피에서 1조5천억 원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원/달러 환율은 한 주 동안 23원 하락한 1435.5원까지 내려왔다. 하나증권은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기준금리 동결 이후 나타난 달러 약세와 SK하이닉스의 외환시장 달러 공급, 일본 당국의 개입에 따른 엔/달러 환율 급락 등이 환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엔화 움직임은 원화를 비롯한 아시아 통화의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다. SK증권은 이날 보고서를 통해 미국이 일본의 엔화 매입에 가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추가 엔저를 제한하는 정책 신호가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달러 약세와 엔화의 급격한 추가 약세 위험 완화는 원화에도 우호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미·일 금리차와 일본의 재정·에너지 부담이 남아 있어 엔화가 추세적 강세로 전환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엔화가 빠르게 반등하면 엔 캐리 거래 청산이 위험자산 전반의 포지션 축소로 이어져 원화 변동성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앞으로 원화 흐름을 놓고는 엇갈린 전망이 나온다.
MUFG은행은 대규모 무역흑자가 지속되는 가운데 원화 절상 압력을 상쇄해 온 국내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와 외국인의 국내주식 매도가 둔화하면 원화가 강세를 보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상상인증권은 한국이 흑자를 해외자산으로 재순환하는 채권국 단계에 들어선 만큼 원화 저평가와 높은 원/달러 환율이 상당 기간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외국인 자금 유입과 엔화 반등은 원화 약세 압력을 낮추고 있다. 다만 경상수지 흑자가 만든 달러 공급이 해외증권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로 계속 상쇄된다면 최근 환율 하락이 추세적 원화 강세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한국 수출이 연간 1조 달러에 도달하더라도 원화 강세가 자동으로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자금과 글로벌 달러·엔화 흐름이, 중장기적으로는 해외증권투자에 따른 달러 수요가 환율 방향을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