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글로벌 인공지능(AI) 기술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 빅테크가 주도해 온 시장 질서가 흔들리고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빨라지면서 산업 판도도 빠르게 재편될 조짐을 보인다. 주요 기업들은 AI 모델의 성능 경쟁을 넘어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 데이터센터와 에너지 인프라 등 차세대 성장 영역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경쟁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기업 간 협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데이터, 로봇, 전력 인프라를 아우르는 AI 생태계에서는 한 기업이 모든 기술과 자원을 독자적으로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강점을 지닌 기업들의 연합은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을 넘어 국가 간 산업•외교 관계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도 떠오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AI 산업의 ‘2차전’을 준비하는 국내외 기업들의 협력 사례를 살펴보고, 이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손을 잡았는지 분석한다. 나아가 이러한 연합이 글로벌 AI 시장의 경쟁 구도와 한국 기업들의 전략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 엔비디아발 'AI 동맹'에 한국 주연으로 부상, 생태계 의존 강화에 기대와 우려 공존
② 삼성전자 구글 'AI 생태계' 필수 협력자로 부각, AI 동맹으로 반도체•모바일 다 잡는다
③ GS 허태수 직접 쥔 'AX 칼자루', 보수적 경영 속 '고착화' 재계 10위 탈피 분주
④ SK텔레콤 앤트로픽과 AI 동맹 고도화, AI 모델 넘어 인프라 사업화 속도
⑤ 정의선이 완성할 ‘현대차 2.0’ 시대, 엔비디아•구글 날개 달고 AI도 잘 만드는 자동차 회사로
⑥ 코스피 최대 변수도 ‘AI합종연횡’, 엔비디아•오픈AI 협력설만 떠도 주가 들썩
⑦ 정용진은 왜 리플렉션AI를 택했나, 신세계그룹 ‘맞춤형 AI 동맹’ 시동
⑧ LG•엔비디아 '피지컬 AI'로 손 맞잡다, 제조•데이터•기술 결집해 종합 로보틱스 기업으로
⑨ 네이버 혼자서는 빅테크 못 이긴다, 이해진 엔비디아•두나무와 AI시대 연합전선
⑩ 두산그룹 엔비디아와 AI 시대 해법 모색, 로봇 고도화부터 저탄소 에너지 전환까지 전방위 협력

[AI, 뭉쳐야 산다①] 엔비디아발 'AI 동맹'에 한국 주연으로 부상, 생태계 의존 강화에 기대와 우려 공존 

▲ (오른쪽부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I 서밋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엔비디아가 한국 반도체와 인터넷 기업을 비롯해 세계 주요 기업에 반도체 공급뿐 아니라 투자까지 이어가며 인공지능(AI) 산업의 연결고리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인공지능 경쟁이 콘텐츠를 만드는 생성형AI에서 업무 비서 같은 에이전틱(행동주체) AI, 로봇과 자율주행 같은 피지컬 AI 등 분야로 확산하면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및 네이버 등 한국 기업이 협업의 주도권을 가져가며 수혜를 누리는 형국이다.

다만 AI칩 공급업체가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조달을 지원하고 그 돈을 다시 칩 투자에 활용하는, 이른바 '순환금융'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 엔비디아 중심으로 AI 협업 확대, 한국 기업도 생태계 주연 편입

3일 미국 전국공영라디오(NPR)와 블룸버그 등 외신을 종합하면 따르면 엔비디아는 최근 인공지능 개발사와 제조업 및 의약 분야 기업 등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NPR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인프라를 강화하기 위해 다수 기업에 7500억 달러(약 1072조 원)를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투자 계획에는 지난 6월8일에 발표된 SK하이닉스와의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 공동 개발을 위한 장기 파트너십도 포함된다. 

SK하이닉스는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또한 엔비디아는 네이버에 10억 달러(약 1조4300억 원)를 투자해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고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인공지능 인프라를 확장한다. 현대차그룹과는 자율주행과 로봇 및 인공지능 공장 등 피지컬 AI 부문에서 파트너를 맺었다. 

또한 엔비디아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터센터 프로젝트에 2500억 달러(약 357조 원)의 금융 보증 제공을 추진한다. 

일본 완성차 기업 토요타(스마트시티)와 미국 제약 회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신약 개발)도 엔비디아와 AI분야에서 협업하기로 했다. 

이에 엔비디아가 단순한 AI반도체 공급업체가 아니라 국내외 인공지능 기업과 적극 협업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지난 7월28일 보도를 통해 “엔비디아는 인공지능 산업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AI, 뭉쳐야 산다①] 엔비디아발 'AI 동맹'에 한국 주연으로 부상, 생태계 의존 강화에 기대와 우려 공존 

▲ 엔비디아의 주요 협업 기업 가운데 일부는 직접 투자도 받았다. <그래픽 챗GPT로 제작>

◆ 협업 느는 이유, 생성형 AI 넘어 피지컬·에이전틱 AI로 확장 때문

이처럼 엔비디아가 다수 기업과 협업하는 배경으로 인공지능 경쟁 무대가 콘텐츠를 만드는 생성형 AI를 위한 대형언어모델(LLM)에서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 등 차세대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실제 세계에서 움직이고 반응하는 피지컬 AI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작업을 수행해 결과를 내는 에이전틱 AI 등 인공지능 각 분야가 전문화하고 고도화하면서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서비스를 구현하려면 반도체와 클라우드뿐 아니라 로봇, 센서, 자동차, 통신 인프라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해 여러 기업이 모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컴퓨팅 용량과 전력 등 인공지능 경쟁 우위를 위해 필요한 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한 기업이 이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도 협업 확대의 필요성을 키우는 요소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오픈AI가 오하이오에 구축할 데이터센터 하나에는 미국의 수백만 가구가 쓸 수 있는 용량인 10기가와트(GW)의 전력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인공지능 챗봇 클로드 개발사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뉴욕타임스가 주관한 콘퍼런스인 딜북 서밋에서 “반도체 기업이 자본을 대고 인공지능 기업과 협업하는 구조는 적절한 형태다”고 말했다.  
 
[AI, 뭉쳐야 산다①] 엔비디아발 'AI 동맹'에 한국 주연으로 부상, 생태계 의존 강화에 기대와 우려 공존 

▲ 마클리그룹의 검은 색 데이터센터가 7월28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웰에 있는 주거 지역 한 가운데에 자리해 있다. <연합뉴스>

◆ 순환금융 논란도 커져, "닷컴버블 닮았다" 우려도

엔비디아와 투자 및 협력에서 보폭을 넓히는 한국의 SK하이닉스와 현대차그룹 및 네이버 등 한국 기업은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 분야에서 각각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10월과 올해 6월 연달아 한국을 직접 찾아 각 기업 총수 및 경영진과 회동했다. 

이를 놓고 한국 기업이 엔비디아 AI 반도체가 필요해서 '러브콜'을 보내는 상황이 아니라 인공지능 협업에서 핵심 파트너가 된 모양새라는 분석이 로이터,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서 잇달아 나온다.

다만 엔비디아와 한국 기업이 인공지능 협업으로 얽힐수록 ‘순환금융’에 따른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순환금융은 공급자가 자사 제품의 구매자에게 자금을 대주고 그 자금이 다시 자사 매출로 돌아오는 구조를 의미한다. 장부상 실적만 부풀렸다가 수익이 나지 않고 시장 성장이 둔화할 시 업계 전반에 연쇄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는 부작용을 안고 있다. 

블룸버그는 인공지능 기업이 서로 투자와 계약으로 얽힌 현 상황이 1990년대 말 통신과 인터넷 업계의 설비 투자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고 평가했다. 당시 일명 ‘닷컴 버블’이 붕괴해 주가가 주저앉고 수많은 기업이 도산했다. 

이렇듯 과잉 투자로 반도체나 인공지능 서비스 수요가 감소하면 반도체 생산 설비나 인공지능 인프라를 새로 까는 역할을 맡는 한국 업체가 손해를 떠안을 가능성도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6월2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컴퓨텍스 행사장에서 국내 언론에 “앞으로 5년 안에 전체 반도체 웨이퍼 생산 능력을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활용한 1GW 규모의 인공지능 팩토리를 구축할 계획을 세웠다. 1GW는 네이버가 현재 세종시에서 운영중인 데이터센터 ‘각 세종’의 4배 용량에 달하는 규모다. 

결국 피지컬 AI와 에이전틱 AI에 잠재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기술 고도화에 맞춰 엔비디아와 협업을 강화하는 가운데 순환금융 우려를 어떻게 지울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미국 매체 악시오스는 “인공지능 거래의 순환 금융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시스템적인 금융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