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기후회의서 '화석연료 퇴출' 또 뒷전, 올해 유엔 기후총회 '전기화'로 우회 모색

▲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이 지난해 10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개막 전 회의에 참석해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독일 본에서 열린 제64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부속기구회의(SB64)에서 참여국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로드맵을 차기 유엔 기후총회 핵심 의제로 채택하는 것에 난항을 겪고 있다.

매년 열리는 부속기구회의는 유엔 기후총회로 불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의 사전 실무 협상 성격을 띤다. 이에 올해 11월 열릴 유엔 기후총회도 실효성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화석연료 퇴출 논의 의제에서 배제하며 '속 빈 강정' 된 부속기구회의

14일 기후환경단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일부터 열려 오는 18일까지 진행되는 SB64는 올해 11월9일에 열리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에서 다뤄질 핵심 의제를 논의하고 있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올해 SB64는 기후변화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응하는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여기에는 선진국들이 약속한 기후피해 복구를 위한 재원 이행 방안도 포함됐다.

다만 문제는 화석연료 퇴출을 위한 이행 방안이 이번 SB64 의제에서 사실상 배제됐다는 점이 꼽힌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개막 연설에서 “과거의 해묵은 분열과 논쟁을 다시 열기보다는 이미 합의된 기후 약속의 실질적 이행에 집중해달라”고 강조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러시아 등 산유국들과 분쟁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화석연료 퇴출에 관한 논의를 의제에서 뺀 것으로 풀이된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측의 이런 결정을 놓고 환경단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트레이시 키티 그린피스 인터내셔널 기후 정치 전문가는 성명을 통해 "화석연료 의존의 위험성을 드러낸 에너지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부 국가들은 석유 시추를 지속하는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사람들을 보호하고 장기적 기후 및 에너지 안정성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 로드맵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 유엔 기후총회에서 산유국과 비산유국간 대립 갈수록 격해져

화석연료 퇴출 문제를 놓고 최근 몇 년 동안 열린 유엔 기후총회에서는 산유국과 비산유국간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만 봐도 개최국 브라질이 ‘탈화석연료 로드맵’을 제시하자 사우디, 러시아 등 산유국들은 총회에서 아예 빠지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COP30에서 탈화석연료 로드맵은 공식 채택되지 못했다. 이같은 일은 탈화석연료 로드맵이 과거 유엔 기후총회에서 이행하기로 합의된 사항임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2023년 1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세계 각국은 2030년 안으로 화석연료로부터 재생에너지로 전환을 시작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COP28 최종합의문 초안이 공개됐을 때에는 이런 결의 내용이 빠졌다. 당시 로이터는 사우디 정부가 개최국 아랍에미리트를 압박해 해당 내용을 빼게 했다고 폭로했다.

국제 여론이 악화되자 아랍에미리트는 최종 합의문을 조정해 ‘화석연료 퇴출’보다는 약화된 ‘화석연료로부터 전환을 시작한다’는 문구를 넣어 발표했다.

그 뒤 세계 각국은 2024년 11월에 열린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COP28 최종합의문을 이행할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러시아와 공조해 개최국 아제르바이잔을 압박해 이를 결국 무산시켰다.

COP30에서 탈화석연료 로드맵을 지지했던 57개국은 사우디, 러시아 등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올해 4월 콜롬비아 산타마르타에 모여 독자적인 이행안에 합의했다.

이를 놓고 국제환경법센터(CIEL)은 7일(현지시각) 논평을 통해 "유엔 기후총회는 기후변화를 억제하고 가속화되는 기후피해에 대처하는데 필요한 야심, 재정, 책심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한 합의 기반 프로세스의 한계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며 "오히려 최근에는 유엔 외부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를 향한 추진력이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독일 기후회의서 '화석연료 퇴출' 또 뒷전, 올해 유엔 기후총회 '전기화'로 우회 모색

▲ 잔디밭 앞에 세워져 있는 전기차. <연합뉴스>

◆ COP31 개최국, 전기화 내세워 탈화석연료 우회적 추진

COP31을 개최하는 튀르키예는 화석연료 퇴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전기화, 에너지 인프라 개선 등 우회적 수단을 통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 위한 합의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SB64에 제출된 핵심 의제 안건에도 2035년까지 전 세계 전기화 비중 35% 달성, 건물 에너지 소비 강도 25% 절감 등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수단들이 포함됐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전기화 비중이 35%까지 오르면 글로벌 화석연료 의존도는 현재 80%에서 50%로 대폭 감소하게 된다.

유엔 홈페이지에 따르면 무라크 쿠룸 튀르키예 환경도시계획부 장관 겸 COP31 의장은 최근 SB64가 열린 독일 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선순위를 전기화, 녹색 산업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둬 이를 이행을 위한 도구로 삼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기후행동 이행을 가속화하겠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