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5만 전자'에서 벗어날 길을 찾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설정할 좌표가 주목된다. |
[비즈니스포스트] #1. 삼성전자가 다시 '5만 전자'로 주저앉았다. 삼성전자 주가는 '6만 전자'에서 채 한 달도 머물러 있지 못하고 52주 신저가 근처에서 맴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는 서로 다른 투자 행보를 보였다. 개인은 8월 한 달 삼성전자 주식을 1조 원 이상 순매수했지만 그만큼을 기관은 내다 팔았다.
이는 삼성전자 기업가치를 바라보는 시각 차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은 이만하면 삼성전자 주가가 더 떨어질 일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른바 '썩어도 준치'라는 거다.
반면 기관은 여전히 삼성전자 사업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크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인다. 개인투자자 생각처럼 더 안 떨어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언제쯤 오를지 기약이 없으니 당분간 들고 가지 않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어느 쪽의 생각이 맞을지야 알 수 없다. 주가는 신도 알 수 없는 영역이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다시 한번 삼성전자 기업가치가 예전 '8만 전자'를 넘어 '10만 전자'를 향하는데 필요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2. 일단 삼성전자 양대 주력사업의 업황 전망부터 살펴보자. 스마트폰부터 어둡다. 트렌드포스를 비롯해 주요 시장조사업체들의 전망을 보면 올해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는 시선이 우세하다.
물론 삼성전자 폴더블폰의 선전과 인도시장에서 사업 확대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세계적 경기 후퇴에 따른 수요 감소와 인플레이션 기조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피해갈 장사는 없다.
반도체는 좀 더 우울하다. 수요 후퇴에 따라 하반기로 갈수록 메모리 가격 하락 폭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더구나 중국을 향한 미국의 고성능 반도체와 장비 수출 금지에 반도체 사업에서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하지만 업황은 돌고 돈다. 골이 깊으면 산도 높고 힌남노처럼 아무리 거센 태풍도 지나가면 맑은 날이 온다. 삼성전자는 거함이다. 거센 풍랑에 고생은 할지언정 좌초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크지 않다. 투자자가 비록 업황 판단에 실패해도 시간과 인내로 버텨낼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3. 삼성전자의 미래 기업가치를 좌우할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 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향한 기대감이 나온다.
지주회사나 공익법인 등을 활용해 안정적 지배구조를 갖추면 과거 삼성그룹을 둘러쌌던 여러 경영 불확실성이 사라질 수 있다. 사업도 한층 안정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어 기업가치를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는 사회적 합의를 얻는 일이 필요하다. 이 부회장이 국정 농단에 연루돼 수감까지 됐던 데다 지금도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의혹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외부 인사가 주도하는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지배구조 개편 문제에 관여하는 이유다.
사회적 합의를 얻지 못하는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그룹을 다시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더구나 지배구조 개편에는 수 십조 원의 자금이 들어가야 한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지배구조 개편과 함께 삼성전자의 대형 인수합병(M&A)을 향한 기대감 역시 커지고 있다. 인수합병 대상으로 거론되는 분야도 팹리스(반도체 설계), 자동차용 반도체, 로봇,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등 다양하다.
마침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근 독일 가전전시회 현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업종과 사명을 밝히지 못하지만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이 많이 진척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4. 그렇다고는 해도 대형 인수합병 문제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글로벌 경제에선 과거 30년 동안 이어지던 세계화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 등 주요 외신을 살펴보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최고경영자(CEO) 래리 핑크를 비롯해 여러 글로벌경제 전문가들은 세계화의 국제질서가 종말을 맞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신자유주의 아래 지속되던 글로벌 공급망 체계가 끝나가는 대신 지역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따른 새로운 공급망 질서가 들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핵심 산업과 관련해 미국이 시행하는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완화법(감축법)'뿐 아니라 중국을 향한 다양한 제재와 견제는 이런 흐름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기조로 인해 돈 싸들고 가면 환영 받으며 좋은 기업을 살 수 있었던 호시절은 이제 사라졌다. 미국의 대표적 반도체기업 엔비디아가 영국의 반도체 설계기업 ARM을 인수하려다 각국 당국의 반대에 부딪혀 올초 결국 물러서야 했던 일은 인수합병이 더 이상 시장논리만으로 이뤄지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결국 삼성전자의 미래 기업가치를 좌우할 근본적 사안들은 속도보다는 방향이 중요한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삼성전자에 투자하고 싶다면 예전보다 좀 더 긴 호흡이 필요한 셈이다. 삼성전자 투자자라면 '자식에게 물려준다'는 각오를 새삼 다져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