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경제 톺아보기] 미국의 엔화 떠받치기, 1998년 엔화 개입을 떠올린다

▲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사진)이 주도한 미-일 공조 엔화 방어는 어쩌면 시장을 강타할 대형 금융위기의 전조일 수도 있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7월30일 국무회의 동안 자신의 탁자에 메모지를 놓았다. 그 메모지에는 "할 일 : 일본 엔화(JPY) 50억~100억 달러 매수"라고 적혀 있었다. 이 메모지는 보도진에 잡혀 사진이 찍혔다. 미국이 엔화 부양을 위해 시장에 개입한다는 의도적 노출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틀 뒤인 8월2일 미 재무부가 수십억 달러 상당의 일본 엔화를 매수했음을 확인하며 "진주만을 제외하면 일본은 우리에게 항상 매우 잘해왔다"고 말했다.

미국이 엔화 강세를 위해 이렇게 시장에 직접 개입한 것은 30년 만에 처음이고, 일본도 공동 개입했다. 미-일 공조의 개입으로 엔화는 달러 당 163엔에서 3일 155엔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이를 정점으로 엔화는 다시 약세로 돌아섰다. 4일 157엔, 7일 158엔으로 서서히 오르더니 11일에는 159엔대를 찍었다.

미-일 공동 개입으로 '7엔' 정도 떨어졌던 달러당 엔화가 5영업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효과의 절반 가량이 사라졌다. 정부 차원의 외환 시장 직접 개입이 일시적 효과에 그친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었다. 

더구나, 미-일 공조가 1회성에 그쳤고, 유럽은행 등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의 공조도 없었다. 1985년 플라자합의 뒤 미 달러가 약세로 전환되고, 엔화 강세가 지속된 것은 모든 선진국들의 공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일본은행의 기준 금리 인상이나, 일본 정부의 돈 풀기 정책 수정 등 구조적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나 일본 정부의 돈풀기 수정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일본이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은 2022년부터 엔화 하락을 저지하기 위해 수천억 달러를 이미 지출해 왔으나, 엔화는 계속해서 최저치를 경신해 왔다. 일본은 중동 산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이란 전쟁으로 중동 석유 및 가스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큰 타격을 받았다.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켰고, 일본 정부는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려 연료 보조금에 수십억 달러를 지출해왔다.

정부 부채 또한 또 다른 요인이다. 일본 정부는 정체된 경제를 자극하고 고령화 인구에 대응하기 위해, 세수보다 수십억 달러 이상을 더 지출하고 있다. 일본의 총 공공부채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200% 이상으로, G20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행은 지난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하며 17년 만에 첫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 2024년 7월, 2025년 1월 등을 거쳐 단계적으로 정책금리를 인상하고, 지난 7월에는 금리를 1.0%로 동결했다. 

경제분석가들은 엔화 약세에다가 인플레이션으로 일본은행이 9월에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50% 이상으로 보기는 한다. 국내 경제 관점에서 볼 때 9월 금리 인상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수십 년간의 저성장, 저물가, 초저금리를 겪은 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가계와 중소기업에 대출 금리 인상이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대략 6개월 간격으로 25bp(0.25%p) 인상의 경제적 영향을 평가하면서 점진적인 정상화 과정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12월이 다음 금리 인상의 가장 자연스러운 시점으로 남아 있다. 만약 일본은행이 9월에 금리를 인상한다면 인상 간격은 두 배나 빨라지게 된다. 이는 1989~90년 자산 가격 버블 말기 긴축 국면 이후 본 적 없는 현상이다. 일본으로서는 그만큼 부담스럽다는 의미이다.

미-일 공조 개입이 이대로라면 별로 효과가 없다는 것을 베선트 장관은 몰랐을까? 그는 조지 소로스 밑에서 외환투기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미국과 베선트는 다른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베선트는 5일 닛케이아시아와 나눈 회견에서 1998년 엔화가 1년 만에 달러 당 30엔이나 폭락한 위기에서 미-일 공조 개입을 거론했다. 1998년 여름 미·일 공동 개입은 엔화를 거의 바닥점에 찍게 하고, 이후 수년간 이어진 변동성 높은 강세의 시발점이 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미·일이 공동 개입한 1998년 6월17일 당일 엔화 가치는 5.6%나 폭등하는 거대한 반등을 보였다. 거래일 기준 이틀 만에 반등 폭은 7.2%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불과 8거래일 만에 엔화 가치는 개입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다. 3주도 되지 않아 다시 최저치를 경신했다.

엔화 강세의 출발은 2개월 뒤인 8월17일 러시아의 모국 통화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발발한 글로벌 금융혼란이었다. 대형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에 누적되어 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의 강제 청산이 연쇄적으로 발생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은행은 장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금리를 0.5% 수준의 초저금리로 낮췄다. 글로벌 헤지펀드와 금융기관들은 금리가 매우 낮고 가치가 하락하던 엔화를 대량으로 빌려, 금리가 높은 미 국채, 러시아 채권(GKO), 신흥국 고수익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막대하게 쌓아 올렸다.

엔화 약세에 영향을 줬던 1997년 발생한 아시아 통화위기 등 신흥국 통화의 약세로 1998년 8월17일, 러시아가 모국 통화 채무불이행을 선언하고 루블화를 기습 평가절하했다. 러시아 채권 및 신흥국 자산에 대규모 엔 캐리 자금을 투자했던 글로벌 헤지펀드들과 금융기관들은 하루아침에 천문학적인 손실을 보았다.

미국에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로 번졌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운용하며 수조 달러의 레버리지를 일으켰던 대형 헤지펀드 LTCM 등은 투자 손실로 금융기관들로부터 마진콜(증거금 추가 납부 요구)을 받자, 투자 손실을 메꾸고 채무를 갚으려고 위험 자산을 내던졌다. 특히 과거에 빌렸던 엔화 부채를 갚기 위해 외환시장에서 엔화를 폭발적으로 사들여 갚는 강제 매수가 몰렸다. 이 과정에서 엔화 가치가 폭등하는 극심한 숏스퀴즈 현상이 일어났다.

LTCM의 파산이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연준은 1998년 가을 3차례 연속으로 긴급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미국의 금리가 낮아지면서 미·일 간 금리 격차가 축소되자, 이는 남아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의 수익성마저 완전히 소멸시켜 엔화 매수(캐리 청산) 속도를 더욱 가속화했다.

1998년 엔화가 달러당 147엔대에서 110엔대로 30% 이상 급등은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라기 보다는 글로벌 금융 충격에 따른 강제적인 레버리지 청산과 미국 연준의 피벗(금리 인하)이 맞물려 발생한 대폭발이었다. 그 중심에는 대형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에 누적되어 있던 엔 캐리 트레이드의 연쇄적인 강제 청산이 있다.

1998년이 베선트의 플레이북이라면, 그는 개입 효과로 인한 단기 착시식 강세가 소멸하고 몇 달 안에 미국 금융시스템을 강타하는 대형 외부 충격을 기대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은행의 금리인하를 기다리기보다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할 때 비로소 엔화가 제대로 반등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도, 그것이야말로 트럼프가 그토록 원하는 금리 인하를 얻어내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미국이 엔화 공조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보다도 미 국채 약세 때문이다. 10년물 미 국채가 일본이 엔화 방어를 위한 자금으로 미 국채를 매도하면 약세가 지속되고, 시장금리를 올라간다. 

베선트가 주도한 미-일 공조 엔화 방어는 어쩌면 시장에 대형 금융위기 충격을 몰고올 전조일 수도 있다. 지금 인공지능 거품의 우려도 커지는 시점이다. 정의길/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