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7월] '인공지능 환상', 기술 진보의 짙은 그림자

▲ <권력과 진보>의 저자인 대런 아세모글루와 사이먼 존슨은 기술 진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인공지능도 노동자를 대체하기보다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사진은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서 로봇이 아이오닉5를 조립하는 모습. <현대자동차그룹>

[비즈니스포스트] 1829년 영국에서는 1만 명 이상의 구경꾼이 모여든 커다란 경진대회가 열렸다. 리버풀-맨체스터 철도(1830년 정식 개통) 위를 달릴 기관차를 선정하는 ‘레인힐 기관차 경주대회’였다. 이는 주요 항(리버풀)과 떠오르는 면직물 생산지(맨체스터)를 연결하는 전 세계 최초의 근대적 철도 프로젝트였다. 조선 최초 철도인 경인선이 1899년 개통됐으니, 딱 70년 전에 영국에서 철도의 역사가 시작된 셈이다.

당시 철도는 미래가 불확실한 신사업이었다. 사회적으로, 운하를 통해 높은 수익률을 거두던 세력은 철도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었다. 기술적 난제도 컸다. 광산에서 시장까지 레일로 석탄을 옮기는 일은 일찍이 17세기부터 있었다. 레일 위로 말이 차량을 끌었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기는 했지만 당시 기술 수준에서 고압 엔진을 스스로 움직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가볍게 만드는 일은 실현 불가능할 것 같았다. 1829년 기관차 경주대회는 그 상상이 현실이 되는 무대였다. 조지 스티븐슨 부자는 우승작 ‘로켓’을 내놨고 거액의 상금도 받았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런 아세모글루, 사이먼 존슨 미국 MIT 교수는 <권력과 진보 : 기술과 번영을 둘러싼 천년의 쟁투>(생각의힘 펴냄)에서 철도의 탄생과정을 이렇게 펼쳐보였다. 제목만 보면 정치학 서적으로 ‘뻔한’ 좌우 대립을 다루는 듯하지만, 이 책은 인류의 기술 발전과 생산력 증대를 경제사의 시선에서 정조준한다.

저자들은 인류의 생산력 도약의 순간들을 찬찬히 짚어 내려갔다.

이를테면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에서부터 1300년경 르네상스 시작까지 중세는 암흑의 시대라 했지만, 현재 그 통념은 깨진 지 오래다. 중세 유럽에서도 중요한 기술적 변화와 생산성 향상이 있었다. 중세의 혁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수차와 풍차를 이용한 방앗간을 꼽을 수 있다. 1000년부터 1300년 사이 수차와 풍차로 인해 단위면적당 산출이 대략 두 배 늘었다. 지금도 남아 있는 네덜란드의 풍차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당시 늘어난 농업생산의 물질적 결과가 유럽 도시의 고딕 대성당들이다.

미국인 일라이 휘트니가 1793년 개량된 조면기를 발명한 것도 미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생산성 증대를 가져왔다. 이는 육지면 품종의 면화에서 씨와 솜을 빠르게 분리할 수 있었다. 50명이 할 일을 단 한 사람과 말 한 마리면 할 수 있게 됐다. 이윽고 19세기 중반 미국 남부의 면화 수출은 전체 미국 수출의 5분의 3을 차지했다. 당시 전 세계 면화의 약 4분의 3이 미국 남부에서 재배됐다. 이 과정에서 미국 흑인 노예도 폭발적으로 늘었고, 1850년 320만 명의 노예 가운데 180만 명이 면화밭에서 일했다.

전기의 도입은 또 한 번 생산력의 도약을 이뤄냈다. 과학적 지식으로서 전기는 이미 18세기 말에 시작됐지만 세상을 구성할 주요 혁신은 1880년에 나타났다. 토머스 에디슨의 필라멘트 전구는 촛불에 견줘 스무 배 밝았다. 기존의 풍력, 수력, 증기력과 달리 전기는 중앙 동력원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전에는 기계를 중앙 동력원 주변에 모아둬야 했고 이는 병목 현상을 낳았다. 분업과 공장 배치, 운영에 한계가 컸다. 하지만 전기는 생산현장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전기 기계의 발달과 생산 현장의 재조직화는 1908년 헨리 포드의 모델T 생산을 낳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공장 시스템이 비로소 갖춰진 것이다.

저자들이 이처럼 인류의 경제사를 길게 항해한 이유는 막바지에 나타난다(책은 본문만 597쪽에 이르지만, 기본적으로 역사책이라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누구는 반도체 주식 주가로, 누구는 회사 일을 보면서, 누구는 일자리 문제로, 매일 부닥치고 있는 문제적 상황, 바로 인공지능(AI)이다.

세상 모두가 인공지능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의 대한 낙관에 빠져 있지만, 저자들은 이를 ‘AI 환상’이라 부르며 경계한다. 인공지능이 결국 대규모 데이터 수집, 노동자와 시민의 사회적 지위 약화, 그리고 결정적으로 노동자 대체를 목적으로 하는 자동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동화는 사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만 따져봐도, 이는 AI가 나오기 한참 전부터 생산과정에 적용됐다. 전화교환수라는 직업이 한 순간에 없어진 일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로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한꺼번에 없어질 뻔했다. 그리고 많이 놓치는 대목인데, 이들 자동화의 피해는 일자리 감소와 평균임금 저하로 대부분 저학력 노동자에게 떨어졌다.

인공지능은 1956년 처음 용어가 등장한 이래 몇 번의 부침을 거듭한 끝에 2000년대 초반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문서 번역, 바둑 게임 등에서 이미 인상적인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 피지컬AI 쪽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고, 한국도 이 흐름에 올라타려 한다.

저자들은 현재의 인공지능 테크놀로지가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현재도 발전 과정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인공지능이 ‘그저 그런 자동화’에 그치면서, 생산성은 별로 향상시키지 못하면서 노동자를 대체하는 데 그치는 것을 경계했다. 저자들은 기술 진보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인공지능 테크놀로지도 일자리를 줄이는 쪽이 아니라 노동자가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기술 발전의 방향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의 대상이가 강조했다.

실제 인류의 기술진보와 생산력 증대는 막대한 부작용을 낳았다. 중세의 농노, 미국의 흑인 노예, 산업혁명 초기 아동노동 등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결국 해결된 문제라 안심하지 말라. 문제 해결을 위해 노예와 노동자는 피를 뿌려야 했다. 지금의 인공지능 테크놀로지도 나중에 우리에게 ‘기술 진보에 따른 희생’을 요구할지 모른다. 안우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