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은 이혼을 유류분 회피의 도구로 쓰는 것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은 대법원의 전경.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93세 남편과 85세 아내가 이혼했다. 1954년에 혼인해 61년을 함께 산 부부였다. 황혼이혼이라 부르기에도 너무 늦은 이혼이었다. 그런데 이 이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남편이 사망하자 혼외자들이 소송을 냈고 법원은 아내에게 두 혼외자 앞으로 각 17억 원이 넘는 돈, 합계 34억 원 상당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서울고등법원이 2024년 선고한 유류분 사건 이야기다.
사건의 전개는 이렇다. 망인은 61년을 함께 산 아내와의 사이에 자녀를 두었고 밖에서 낳은 자녀들도 있었다. 혼외자들이 망인의 친생자임을 인지하는 판결이 확정되자 망인 부부는 협의 이혼을 했다.
이혼 당시 망인이 보유한 순자산은 약 132억 원이었다. 망인은 이 가운데 약 102억 원을 재산분할 명목으로 아내에게 넘겼다. 보유 재산의 약 77%였다. 위자료로 10억 원 가량도 따로 지급했다. 망인의 수중에는 재산의 4분의 1 정도만 남았다. 망인이 사망하자 혼외자들이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다.
유류분이란 고인의 뜻과 무관하게 배우자와 자녀 등 법정 상속인에게 보장되는 최소한의 유산 몫이다. 유류분을 계산할 때는 사망 당시 남은 재산에 생전에 미리 넘겨준 재산, 즉 증여를 추가해 전체 규모를 산정한다. 그렇다면 이혼하며 나눈 재산분할도 여기서 말하는 증여에 해당할까.
원칙부터 말하면 재산분할은 증여가 아니다. 부부가 혼인 중 함께 일군 재산을 청산하는 것이고 이혼 후 상대방의 생활을 보장하는 부양의 성격도 있다. 내 몫을 돌려받는 것이지 공짜로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재산분할로 받은 재산은 원칙적으로 유류분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자 혼외자들은 이 이혼 자체가 가장이혼이어서 무효라고도 주장했었다. 이혼할 진짜 뜻 없이 재산만 빼돌리기 위한 서류상 이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혼의 효력을 부정하는 길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이혼은 이혼대로 두되 재산분할의 실질을 들여다보는 길이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선을 그었다. 상당한 정도를 벗어나는 과대한 재산분할은 그 초과 부분이 민법 제1114조의 증여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61년의 혼인 기간, 전업주부로서 아내의 기여, 노후 부양의 필요, 망인의 혼외자 문제가 이혼의 원인이 됐을 사정까지 전부 감안해도 적정한 재산분할 비율은 50%라고 봤다. 이를 넘어 받은 부분, 구체적으로는 부동산의 43.78% 지분에 해당하는 몫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 재산에 포함됐다.
여기에 하나가 더 필요했다. 이혼 시점은 상속 개시 1년 전이었으므로, 부부 쌍방이 유류분 권리자에게 손해를 가할 것을 알고 재산을 넘겼다는 점이 인정되어야 했다. 법원은 이 점도 인정했다. 망인은 이혼 당시 93세로 더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었고, 재산이 앞으로 늘지 않으리라는 사정을 부부 모두 넉넉히 알 수 있었다고 보았다. 혼외자들의 친생자 인지 판결이 확정되자 이혼한 시점도 주목했다. 상속재산 분쟁을 막기 위해 미리 재산 대부분을 아내에게 이전할 필요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반대 방향의 판결이 나왔다. 이번에는 서울북부지방법원이다. 남편은 2018년 아내와 이혼하며 부동산과 현금을 재산분할로 넘겼다. 두 사람은 2021년 다시 혼인 신고를 하고 부부로 살았고, 남편은 2022년 사망했다.
혼외자들이 소송을 냈다. 아내가 이혼 때 받은 재산분할을 미리 받은 상속재산, 즉 특별수익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산분할은 공동재산의 청산이자 부양이므로, 이를 특별수익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혼외자들은 패소했다.
같은 이혼 재산분할인데 결론이 갈렸다. 한쪽에서는 재산분할이 유류분의 표적이 됐고 다른 쪽에서는 유류분을 막는 방패가 됐다. 두 번째 사건의 포인트 중 하나는 ‘재혼’이다. 최초 이혼 시 한 재산분할이 고인이 사망할 당시 공동상속인에게 증여한 재산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즉, 아내는 이혼을 했으면 더 이상 남편의 공동 상속인이 아니지만, 다시 재혼을 했으면 공동상속인의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두 개의 판결을 종합하면, 법원은 이혼을 유류분 회피의 도구로 쓰는 것은 용인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가진 것으로 읽힌다. 61년을 함께 산 노부부의 이혼조차 그 시점과 비율이 수상하면 법원은 실질을 들여다본다.
반대로 정상적 이혼에서 이루어진 적정한 재산분할이라면 훗날 혼외자가 나타나 유류분을 주장해도 흔들리지 않는다. 배우자의 정당한 몫은 지켜주되, 몫을 넘는 이전은 걷어내겠다는 것이 법원의 태도다.
물론 어느 쪽 사정도 가볍지 않다. 혼외자에게 유류분은 아버지의 재산에 대한 마지막 법적 연결고리이고 평생을 함께한 배우자에게 재산분할은 자기 인생에 대한 정산이기 때문이다.
이혼 재산분할 합의서에 찍는 도장이 훗날 상속 분쟁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재산분할 비율이 절반을 크게 넘는다면 그 초과분에 대해서는 지금 세금이 아니라 미래의 유류분 소송을 걱정해야 한다.
왜 통상적 비율보다 더 많은 재산분할을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증빙을 미리미리 갖추어 놓아야 한다. 특히 혼외자처럼 훗날 상속인으로 등장할 수 있는 사람이 있거나, 상속인 사이에 갈등의 씨앗이 있는 집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혼의 시점도 마찬가지다.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눈앞에 닥친 뒤에 이루어진 재산 이전은, 그 형식이 무엇이든 법원의 의심 어린 시선을 피하기 어렵다. 반대로 유류분을 걱정하는 상속인이라면, 피상속인의 이혼과 재산분할 내역을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그 비율이 절반을 크게 넘었다면 다투어 볼 여지가 있다. 고윤기 상속전문변호사
| 대한변호사협회의 전문변호사 등록심사를 통과하고 상속전문변호사로 등록되어 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속과 재산 분할에 관한 많은 사건을 수행했다. 저서로는 '한정승인과 상속포기의 모든 것'(2022, 아템포),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요-상속 한정승인 편'(2017, 롤링다이스), '중소기업 CEO가 꼭 알아야 할 법률 이야기(2016, 양문출판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