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를 앞두고 정부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들이 원전해체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데 힘쓰고 있다.
국내 원전해체시장이 열릴 경우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기술, 두산중공업 등이 수혜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국내업체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관문이 많다.
◆ 정부, 원전해체기술 확보에 주력
3일 업계에 따르면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를 3개월가량 앞두고 정부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들이 원전해체 관련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
|
|
▲ 박구원 한국전력기술 사장(왼쪽)과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 |
고리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의 원자로로 6월18일을 끝으로 가동이 영구히 정지된다.
영구정지된 뒤 원자로 냉각기간을 5년가량 거쳐 2022년부터 본격적인 해체작업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내업체들은 아직까지 원전해체기술을 완벽히 확보하지 못했다.
원전해체기술은 크게 핵심기반기술 38개와 실용화기술 58개로 나뉘는데 국내 업체들은 현재 핵심기반기술 27개와 실용화기술 41개을 확보하고 있다.
정부는 1월 국무조정실, 미래창조과학부,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회의를 열고 ‘제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을 확정했다.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정부가 국내 원자력정책의 큰틀을 제시하기 위해 1997년부터 5년 단위로 발표하는 장기계획으로 이번 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은 고리1호기 해체를 1년 앞둔 2021년까지 적용된다.
정부는 5차 원자력진흥종합계획의 중점추진과제 가운데 하나로 ‘원자력시설 해체산업 육성’을 선정하고 “고리1호기를 모델로 원전해체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원자력시설 해체산업 생태계를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 원전해체기술은 현재 선진국의 70% 수준”이라며 “계획에 따라 2021년까지 아직 보유하지 못한 핵심기반기술 11개와 실용화기술 17개를 확보해 고리1호기의 해체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제염과 방사성폐기물처리 등 원전해체의 기초가 되는 핵심기반기술은 미래창조과학부의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주도하고 있다.
원자력연구원이 보유한 핵심기반기술은 2015년 21개에서 지난해 말 27개까지 늘어났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개발한 기술들은 3월 과제평가를 거쳐 개발을 마무리하게 된다”며 “평가를 통과할 경우 5년 동안 10개의 핵심기반기술을 새롭게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 한수원 한전기술 두산중공업, 실용화기술 확보 박차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전력기술 등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기관과 두산중공업 등 민간업체들은 핵심기반기술을 응용해 원전해체에 직접 활용되는 장비 등을 만드는 실용화기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리1호기의 운영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자력연구원에서 핵심기반기술을 이전받아 실용화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
|
|
▲ 고리1호기 전경. |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른 시일 안에 전 세계적으로 원전해체 수요가 발생할 것”이라며 “2021년까지 해체기술 확보에 주력해 앞으로 글로벌 원전시장에서 해체수요를 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리1호기뿐 아니라 다른 국내 원전들도 수명에 따라 순차적으로 해체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해체사업을 이끌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수력원자력은 기술확보가 필수적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원전해체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 정부 아래의 원전해체전담기관인 NDA와 협력을 맺었다. 영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연구용 소형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이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가운데 하나다.
한국전력기술은 원전설계의 강점을 살려 원전해체 엔지니어링 기술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한국전력기술 관계자는 “원전해체는 결국 원전설계의 역순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면 쉽다”며 “한국전력기술은 설계의 강점을 살려 오랜 기간 원전해체 관련한 연구개발을 진행해 온 만큼 해체 엔지니어링 쪽에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기술은 올해 초 ‘신성장사업 추진워크샵’에서 원전해체사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았다. 지난해 7월에는 독일의 원전해체 회사인 프로이센일렉트라와 기술전수계약을 맺기도 했다. 독일은 미국, 일본과 함께 실제 원전을 해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원전 주기기 제조에 경쟁력을 지닌 두산중공업은 2015년 독일의 원전해체 전문업체인 짐펠캄프와 업무협력 협약을 맺고 고리1호기에 최적화된 원자로 절단기술을 중심으로 기술개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과 한국전력기술은 2015년 11월 원전해체분야의 기술자립과 국내외 원전해체사업 진출을 위해 상호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국내 원전해체 시장이 아직 열리지 않은 만큼 앞으로 있을 수주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기술력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시장 진출은 미지수
국내 업체들은 원전해체기술을 확보해 국내시장뿐 아니라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015년 세계 원전해체시장 규모가 2050년까지 44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업계에서는 세계 원전해체시장 규모가 1천조 원에 이를 것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
|
|
▲ 이관섭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리1호기의 해체비용으로 2030년까지 약 65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다른 원전들이 수명이 끝나 해체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린다 해도 국내 원전해체시장의 규모는 1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파악된다.
국내 업체들이 원전해체사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해 국내에 머물지 않고 해외로 진출할 경우 40배 이상의 거대한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지금까지 원전해체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세 나라뿐이다. 연구용 소형원자로를 해체한 경험이 있는 나라도 한국, 영국, 프랑스 정도다.
경쟁국가가 적은 만큼 고리1호기를 통해 기술력과 해체경험을 보유할 경우 경쟁력은 그만큼 커지는 셈이다.
하지만 원전해체사업이 국내업체들에게 성장동력에 어울리는 수익원으로 자리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전 세계 원전은 대부분 미국과 일본, 프랑스 등 원전 선진국에 집중돼 있다. 국내 업체들이 기술력을 확보해도 실질적으로 해외에서 수주 가능한 원전이 많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원전해체 비용 대부분이 인건비와 폐기물 처리비용인 만큼 수익성이 높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원전해체 과정에서 나오는 중저준위폐기물은 드럼에 넣어서 방사성페기물처분장에 보내지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중저준위폐기물 처리비용만 전체비용의 40~60%, 인건비까지 합칠 경우 전체 비용의 8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용은 각 국가에서 소진되는 만큼 방사성폐기물 양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않으면 원전해체의 해외진출은 수익성이 높지 않은 사업이 될 수 있다.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우선 고리1호기를 경제적이고 안전하게 해체해 설계부터 해체에 이르는 원전 전 생애주기의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라며 “해외진출은 그 다음에 고려해 볼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