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붕괴 사고를 계기로 건설공사 발주자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논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회 행사에서 건설 노사가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공감을 표시했는데, 같은 날 오후 서소문 공사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점도 주목을 끈다. 이에 공사비와 공기 산정 권한을 쥔 발주자까지 안전관리 책임을 넓혀야 한다는 요구에 힘이 실릴 가능성이 커졌다.
 
'서소문 고가차도 사고' 와중에 건설업계 노사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공감, 발주자 책임 더 강하게 묻는다

▲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GTX-A 삼성역 공사 현장 철근 누락 관련 현안 질의를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국회 움직임을 종합하면 서울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 붕괴 사고를 계기로 건설공사 발주자 책임을 강화하는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사고 당일인 26일 오전 국회에서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 사회적 대화 건설현안 협의체 결과보고회'가 열렸고, 건설 노사는 의견차가 있긴 했지만 건설안전특별법의 입법 필요성에 큰 맥락에서 공감을 표시했다.

우 의장은 이 자리에서 "국회 사회적 대화는 지난 2년 임기 동안 가장 공들인 일로, 갈등을 풀고 미래로 향하는 디딤돌을 놓으려면 사회적 대화가 가장 중요하기에 국회가 앞장서 노력해왔다"며 "초기에 입장 차가 몹시 컸던 건설안전특별법 입법 필요성까지 뜻을 함께 모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날 오후 서울시 발주 공사인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는 붕괴 사고가 발생해 3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서소문 고가차도는 2019년 콘크리트 낙하 사고 뒤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고, 서울시는 보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철거를 결정했다.

이번 사고는 단순히 현장 시공 과정의 문제를 넘어 공공 발주 공사의 안전관리 구조 전반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사고 전 구조물 침하 등 이상 징후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발주·감리·안전진단·공정관리 단계에서 책임을 어디까지 나눠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의도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건설안전특별법안은 발주자·설계자·시공자·감리자 등 건설공사 참여 주체별 안전관리 의무를 명확히 하고, 특히 발주자에게 적정 공사기간과 공사비용 제공 책임을 부과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법안은 안전관리 의무 소홀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건설사업자 등에게 1년 이하 영업정지 또는 업종·분야 매출액 3% 이하 과징금을 부과하고, 발주·설계·시공·감리자가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사고를 낸 경우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건설안전특별법안과 취지를 같이하는 법안은 제21대 국회에서도 두 차례 발의됐지만 건설업계 반대 속에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제22대 국회 들어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안과 윤종오 진보당 의원안 등이 다시 발의됐고, 지난 4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공청회에서도 법 제정 필요성에는 노사정이 대체로 공감했지만 과징금과 중복처벌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노동계와 전문가들은 건설 사고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저가 수주와 공기 단축 압박을 꼽고 있다. 시공사와 현장 노동자에게만 책임이 집중된 구조를 바꾸려면 공사비와 공기를 결정하는 발주 단계부터 적정 비용과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 명예회장(군산대학교 명예교수)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4월13일 연 건설안전특별법안 공청회에서 “법안의 본질은 처벌이 아닌 권한에 따른 책임의 공정화”라며 “법안은 발주자에게 합당한 책임을 부여하고 건설업에 전문성이 부족하면 안전자문사를 고용하는 등 건설주체가 책임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서소문 고가차도 사고' 와중에 건설업계 노사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공감, 발주자 책임 더 강하게 묻는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와 건설산업연맹 조합원들이 2022년 12월22일 오전 국회 앞에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및 화물 안전운임제 유지·확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건설업계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미 시행 중인 상황에서 별도 제정법까지 도입하면 중복 규제와 과잉 처벌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영희 대한건설협회 산업본부장은 4월13일 공정회에서 “2024년 기준 건설업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이 3.15%인 상황에서 매출액 최대 3% 과징금은 한해 수익을 박탈하는 수준”이라며 “이러한 징벌적 제도는 단순 경영위기를 넘어 협력업체 연쇄 부도와 건설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홍성호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산업안전보건법, 중대재해처벌법, 건설안전특별법 등 건설현장 안전관리 규율을 담고 있는 법안끼리 충돌할 수 있다”며 “건설사의 혼란이 가중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업중지제도나 안전교육 등은 산업안전보건법과 건설안전특별법에 규정돼 있어 비효율성이 크다”며 “인력이 부족한 중소건설사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건설업계 역시 발주 단계에서 적정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방향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는 분위기다. 이번 국회 사회적 대화에서도 노사 모두 발주자의 비용·공기 산정 책임과 안전비용 반영 필요성에는 접점을 찾은 것으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논의가 지방선거 국면의 도시 안전 의제와도 맞물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서소문 사고와 GTX-A 삼성역 철근 누락 논란이 겹치며 공공 발주 공사의 안전관리 체계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차원에서도 향후 건설안전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발주자 책임을 어디까지 법제화할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나온다.

다만 사고 원인과 과실 여부가 규명되기 전 특정 주체의 책임으로 단정하기는 이른 만큼, 정치권도 추모와 수습을 우선하면서 제도 개선 필요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