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에 반영된 기후변화, 게임으로 엿보는 기후위기의 미래

▲ 헬기를 타고 내려다 본 '배틀필드 2042' 세상의 이집트 동부사막에 위치한 인공 식량 생산 시설. 기후변화에 따른 식량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이집트 정부와 다국적 기업들의 투자로 건립됐다. 게임 내에서는 미국과 러시아가 각자 시설을 차지하고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전투를 벌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로 변한 미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미래로 가는 타임머신이 나오지 않은 이상 이것을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세상의 모습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된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그 모습을 어느 정도는 가늠해볼 수 있다.

그래서 19일 오늘은 디지털 미디어 가운데 ‘게임’을 통해 기후변화로 변한 미래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배틀필드 2042’는 2021년 10월 미국의 일렉트로닉아츠(EA)가 서비스를 시작한 게임이다.

배틀필드 시리즈는 ‘콜오브듀티’ 시리즈와 함께 세계 1인칭 슈팅 게임 장르를 양분하는 대형 프랜차이즈다.

최대 64명으로 이루어진 팀이 실제 전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각종 무기로 전투를 벌여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배틀필드 2042는 근미래인 2042년 인류가 기후변화 대응에 실패한 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세계적 식량 위기와 자원 부족이 도래했고 미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강대국들은 고갈되어 가는 자원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에 참전한 병사로서 게임 속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기후변화로 황폐화된 세계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 반영된 기후변화, 게임으로 엿보는 기후위기의 미래

▲ '배틀필드 2042' 세상의 메마른 파나마 운하. <비즈니스포스트> 

대표적으로 파나마 운하를 모티브로 한 ‘파나마’ 전장에서는 비정상적으로 길어진 가뭄 주기에 메말라 버린 운하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현실 세계의 파나마 운하는 8월부터 9월까지 극심한 가뭄으로 컨테이너선과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의 통행을 제한하기도 했다.

파나마 외에도 극단기후가 찾아와 주기적으로 토네이도가 발생하는 인천 송도를 배경으로 하는 ‘칼레이도스코프’, 기후변화로 계속된 가뭄에 황폐화된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하는 ‘플래시포인트’ 등을 직접 플레이해볼 수 있다.

배틀필드처럼 한 사람의 시야에서 볼 수 있는 기후변화를 잘 표현한 게임도 있는 한 편 국가적 차원에서 겪는 기후위기의 미래 모습을 표현한 게임도 있다.
 
대중문화에 반영된 기후변화, 게임으로 엿보는 기후위기의 미래

▲ '문명6'의 한 국가가 기후변화로 상승한 해수면으로 인한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해 거대한 장벽을 설치했다. <문명6 공식 유튜브>

미국의 파이락시스게임즈가 개발한 문명 시리즈는 일명 ‘타임머신’으로 유명하다. 한 번 게임을 시작하면 어지간해서는 몇 시간은 게임을 놓을 수 없는 중독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국가의 운영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게임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재밌게 풀어내 호평을 받고 있으며 최신작인 ‘문명6’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2019년에는 기후변화를 주제 삼아 두 번째 확장팩 ‘몰려드는 폭풍’을 출시했다.

문명은 석기시대부터 근미래 시대까지 자신의 국가를 특정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국가로 발전시켜 최종적으로는 과학, 문화, 군사, 외교 등으로 대표되는 승리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여러 자원 가운데 특히 ‘생산력’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해지는데 내연기관이나 증기기관 등 특정 기술을 개발해 해금하는 발전소를 통해 급격하게 늘릴 수 있다.

발전소를 가동하려면 화석연료를 사용해야 하는데 계속 화석연료를 태워 발전을 하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슈퍼태풍과 홍수 등 각종 재난이 터지기 시작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적 기온상승 현상으로 극지방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오르고 바다에 침식된 국토와 도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화석연료 발전소는 풍력과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 발전시설을 건립해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발전의 핵심 역할을 하는 생산력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다. 자칫 잘못하면 경쟁국에 생산력에서 밀려 승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화석연료를 태워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길을 선택하고 탄소포집을 할 수도 있는데 이 또한 생산력을 소모한다. 게임이 국가의 발전과 기후변화 대처라는 두 가지 과제를 놓고 유저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셈이다.
 
대중문화에 반영된 기후변화, 게임으로 엿보는 기후위기의 미래

▲ '문명6' 게임 내에서 제공되는 기후변화 종합지표. 자국이 기여한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이에 따른 기온상승 영향 그리고 발생한 기후위기를 직관적으로 표현해준다. <문명6 공식 유튜브>

설령 유저가 기후변화 대처를 선택하더라도 다른 국가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않아 게임 후반에 접어들면 온갖 기후재난이 덮쳐오고 해안이 침식돼 국토가 마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기후변화가 심각해지면 국제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상의 모든 국가가 국제연합에 모여 결의안을 내놓기도 하지만 자국의 승리 조건 달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결의안 이행을 위한 행동은 거의 취하지 않는다.

심지어 게임에서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재난이 발생했는지 직관적으로 알려주기도 하는데 누구 하나 이를 제대로 준수하지 않는다.

결국 문명6는 누가 승리하건 기후변화로 초토화된 지구가 남는 결말을 맞이한다.

어떻게 보면 그저 가상세상 속의 이야기라고 그냥 넘기기 쉬울 수도 있지만 문명6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기후변화를 외면하는 각국의 모습은 현실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러한 가상의 미래 모습이 게임 속의 이야기로만 남을 수 있을지 게임을 통해 현실 세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