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화웨이 런정페이
[1] 중국 인민해방군 출신 기업인
[2] 화웨이 러시아시장 위기를 기회로 
[3] 무선통신 시대 개막에 본격 성장
[4] 미중 무역갈등 속 생존의 길 찾다  

런정페이의 첫째 딸이자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가 2018년 12월 벤쿠버 국제공항에서 미국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란제재법 위반 혐의로 캐나다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정부는 이례적으로 민간 기업인 체포에 관련해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베이징 주재 캐나다 대사를 초치해 강한 항의의 뜻을 전달하고 멍 부회장을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상응하는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며칠 뒤 캐나다 국적 대북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와 전직 외교관 마이클 코브릭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 

멍완저우는 체포된지 10여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캐나다 자택에 가택연금됐고 2021년 9월이 돼서야 풀려나 바로 귀국했다.

멍완저우는 귀국 당시 미국과 맞서 싸워 버텨내고 금의환향한 영웅으로 환대를 받았다. 중국정부의 애국 선전이 이런 환대에 작용했다는 소리도 나왔다. 

중국정부는 멍완저우가 풀려난 날 이전에 체포했던 캐나다 사람들을 석방했다. 멍완저우와 무관한 단순한 법집행일 뿐이라고 했던 주장을 뒤집고 스스로 인질외교임을 인정한 셈이 됐다.

미국과 중국의 외교적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나타났던 사례로 꼽힌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화웨이 런정페이(4) 미중 갈등 속 생존의 길

▲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화웨이>

◆ 미중 패권싸움과 화웨이

2017년 미국과 중국 사이 무역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강경한 대응 정책을 앞세운 데 따른 것이다.

미중 무역갈등으로 시작된 두 국가의 첨단기술 패권 전쟁은 화웨이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미국정부는 화웨이 등 중국 정보통신(ICT) 기업들이 미국시장에 진출해 통신 등 기반시설 사업을 하는 데 안보와 관련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2018년에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반도체기업 브로드컴의 미국 퀄컴 인수합병을 무산시키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브로드컴이 화웨이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인수합병이 진행되면 앞으로 미국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바라본 것이다.

무선통신 분야 주도권이 중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미국 정부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블룸버그 등 외신의 보도도 나왔다.

브로드컴이 퀄컴을 인수해 퀼컴의 연구개발 투자를 대폭 줄이면 화웨이가 반사시익을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은 5G 기술 선도력과 경쟁력에서 기회를 뺏기게 된다.

미국정부가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합병 프로젝트를 무산시킨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화웨이는 2018년 1월 미국 이동통신사인 AT&T를 통해 신형 스마트폰 Mate10을 공식적으로 출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정부가 이동통신사와 화웨이의 협력 사안을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출시가 무산됐다.
 
그 사이 화웨이는 5G통신 규격에 맞춘 세계 최초의 상용화 통신반도체 '발롱 5GO1'을 개발해 공개했다. 

미국이 4차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기술 주도권과 혁신기술 선도국 자리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기 시작하며 미국정부의 칼날이 본격적으로 화웨이를 겨누기 시작했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화웨이나 다른 중국 기술기업들의 통신장비를 사용하는 미국의 중소통신업체에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는 정식 제재조치를 결정했다.

FCC는 정부 자금으로 화웨이와 ZTE 등 중국 통신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막았고 세계 미군기지 안에서 화웨이가 제조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것도 금지했다.

화웨이에 관련한 보안상 우려는 미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들에도 확산됐다. 미국이 직접 동맹국가들에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캐나다, 호주, 유럽 등 정부에서 화웨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에서도 주요 통신사들이 화웨이 통신장비를 쓰는 것과 관련한 논란이 한때 확산됐다.

런정페이는 이를 놓고 사내 메일을 통해 임직원들에게 “반미 감정을 앞세우는 것보다 오히려 미국기업과 격차를 인정하고 배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미국은 제재를 더 강화했다. 미국 상원은 화웨이와 ZTE가 미국정부나 기관과 거래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화웨이와 ZTE에 미국 반도체 칩과 부품, 소프트웨어 등을 수출하는 것도 금지했다.

화웨이는 스마트폰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할 수 없게 되면서 결국 중국 이외 시장에서 스마트폰사업을 사실상 중단해야만 했다.

화웨이와 중국정부 관계가 범상치 않다는 의심은 더 확산됐다.

미국정부는 화웨이가 중국 군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정황을 확인했다며 가장 치명적 수준의 제재 조치도 내렸다. 미국 무역 블랙리스트에 화웨이와 38개 자회사를 올린 것이다.

런정페이는 미국의 화웨이 압박을 두고 공개석상에서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2019년 12월 로스엔젤레스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런정페이는 “화웨이의 생존위기는 미국의 제재로 고조됐고 사회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화웨이에 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부 편견이 가득한 정치가들도 있지만 우리는 한 번도 반박하지 않아 더 많은 오해를 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고객의 신뢰를 얻고 고객을 위해 진정한 가치를 창출하며 고객이 화웨이를 필요로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매체와 사회의 오해는 점차 해소될 것이기 때문에 화웨이는 정치가들을 이기는 데 힘을 쏟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영원히 블랙리스트에 올려둘 것이라는 마음의 준비를 했으며 오히려 미국정부의 제재가 생존하려고 힘을 내게 되는 계기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화웨이 런정페이(4) 미중 갈등 속 생존의 길

▲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 <화웨이>

◆ 중국정부와 화웨이

2012년 화웨이가 캐나다 통신장비업체 노텔의 영업기밀을 해킹한 인민해방군 해커의 정보를 이용해 설계도면과 프로그램을 그대로 복사한 제품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화웨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사이버 부대의 지원으로 사업 초기에 크게 성장했고 결국 이는 화웨이 통신장비가 구축된 곳의 보안 내용을 수집해 중국정부에 제공하는 스파이 회사라는 의심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그 뒤로도 중국정부가 화웨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더 드러났다.

2019년 12월 중국정부가 화웨이에 미국 제재 영향에서 벗어나 다시 성장할 수 있도록 세금 감면과 대출 등 방식으로 750억 달러를 지원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많은 국가들이 자국 기업과 산업을 키우기 위해 지원하고 있지만 중국정부가 화웨이에 주는 도움은 25년 전부터 시작된 일부 항목 세금 면제 등을 포함해 조금 더 특별하다. 세계가 중국정부와 화웨이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는 핵심 원인 가운데 하나다”고 보도했다.

화웨이는 성명을 통해 지난 30여 년 동안 해마다 매출의 10~15% 비중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왔으며 10년 동안 사용한 투자금만 약 730억 달러(90조2645억 원)가 넘는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특히 몇 년 동안 5G 개발을 위해 투입한 비용이 40억 달러(4조9476억 원)를 넘어 유럽과 미국 주요 경쟁사 총합보다 더 많을 정도로 거액의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하고 기술을 확보한 것이 화웨이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화웨이는 중국정부와 관계가 다른 기업들과 다를 것이 없다며 중국정부가 다른 기술기업에 주는 수준의 통상적 지원을 받았고 그 이외에는 어떠한 특별대우도 받지 않았다고 호소했다.

런정페이는 미국정부의 고강도 제재 속에서 화웨이가 생존할 길을 마련하고 있다.

화웨이는 2021년 ‘퇴로가 없다면 승리의 길로, 군단 신설 대회’를 열어 기존에 시범운영하고 있던 군단 경영시스템을 정식으로 도입했다.

구글의 경영방식을 벤치마킹해 만들었으며 기초기술 연구자, 고급기술 전문가, 상품 전문가, 엔지니어, 마케팅 전문가, 애프터서비스 전문가를 사업별로 묶어 업무 효율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런정페이는 군인 출신 경영자라는 경험을 살려 화웨이의 군단 시스템을 직접 제정하고 운영 상황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성장 기회를 창출하기 위해 화웨이의 통신장비 기술력을 기반으로 클라우드, 인공지능, 스마트 광산 등 4차산업 영역에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노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