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3인은 왜 스티브 잡스를 꿈꿀까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경영에 인문학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의 오너 경영자들이다. 또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하는 데 열성적이다. 이들의 열성 이면에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에 대한 존경이 자리잡고 있다.

한국의 스타 CEO이자 오너경영자들이 왜 스티브 잡스가 되고 싶어하고, 인문학경영에 관심을 쏟고 있을까?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사내 인문학 강연을 직접 주도하면서 인문학적 성찰이 녹아든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인문학 지원을 약속하면서 직접 인문학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롤 모델로 스티브 잡스를 꼽으면서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현대카드에 입히고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렇게 3인의 경영방식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스티브 잡스는 2011년 아이패드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애플은 인문학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에 존재한다”고 말했다. 애플의 혁신은 IT기술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결합한 덕분에 가능했다는 말이다.


잡스는 최근 미국방송 CNBC에 의해 지난 25년 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리더 1위에 선정됐다. CNBC는 잡스에 대해 “기술과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큰 변화를 일으켰고 생활방식을 재정립했다”며 “지난 25년 동안 가장 큰 혁신를 일으킨 리더”라고 설명했다.

정의선, 정용진, 정태영. 이들 재벌가 3명의 경영자들도 스티브 잡스처럼 인문학을 통해 혁신을 이뤄내고 자신만의 경영방식을 찾을 수 있을까? 

  재벌가 3인은 왜 스티브 잡스를 꿈꿀까  
▲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 정의선, 잡스의 디자인경영을 벤치마킹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현대차가 글로벌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인문학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이런 생각은 현대차의 새로운 브랜드 전략인 ‘모던 프리미엄’과 닿아 있다.
 
모던 프리미엄은 정 부회장이 직접 내세운 전략이다. 그는 최근 임직원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연을 적극적으로 열게 했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6월까지 임직원을 대상으로 총 10회의 인문학 콘서트를 개최한다. 이 콘서트에 ‘글로벌 비즈니스 역량강화 세미나’라는 부제가 붙었다.

지난 3월 말 진행된 첫 번째 콘서트에서 최재천 이화여자대학 석좌교수가 ‘창조경제와 융합형 통섭’을 주제로, 두 번째 콘서트에서 유광수 연세대 교수가 ‘문화콘텐츠와 원천소재의 매력’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 인문학 콘서트는 지난해 정의선 부회장이 만든 역사 콘서트의 확장판이다. 문화 미술 심리 등 인문학을 포괄하고 있다. 인문학에서 얻는 감성과 가치관, 세계관을 통해 조직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현대차 관계자는 “해외고객들은 자동차 구매를 문화소비와 동일시한다”며 “해외주재원이 현지직원과 소통하고 성과를 올리려면 문화 음악 미술에 대한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 부회장은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평소 한국역사에 관심이 많다. 그는 “해외 비즈니스가 많은 글로벌 자동차기업일수록 역사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며 역사 콘서트 진행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한국사를 포함해 세계사를 다루는 역사 콘서트를 20회에 걸쳐 진행했다.


정 부회장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기업문화뿐 아니라 경영전략에서도 반영되고 있다. 그는 2011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현대차의 새로운 브랜드전략으로 모던 프리미엄을 내세웠다.

그는 모던 프리미엄을 통해 “고객과 자동차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부회장은 인간과 사물에 대한 사유능력, 즉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모던 프리미엄 전략은 특히 감성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차의 디자인철학인 ‘플루이딕 스컬프처(물 흐르는 듯한 디자인)’를 통해 구체화됐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디자인은 신형 제네시스와 신형 쏘나타에 적용됐다. 그 결과 신형모델은 기존모델에 비해 한층 세련되고 고급스럽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부회장은 기아차 사장 시절 디자인경영을 통해 기아차를 흑자전환시켰다. 그는 당시 폭스바겐 총괄디자이너였던 피터 슈라이어 사장을 기아차 디자인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피터 슈라이어 사장은 기아차의 상징이 된 '호랑이 코' 그릴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 K시리즈와 스포티지R, 쏘렌토R, 쏘울 등을 디자인해 기아차의 디자인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렸다. 그는 기아차에게 iF, 레드닷, IDEA 등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모두 안겨 줬다.

정 부회장의 디자인 중심 마케팅전략은 스티브 잡스의 성공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스티브 잡스는 심플한 디자인을 애플의 DNA로 구축했다. 만성적자 상태에 있던 애플은 1999년 스티브 잡스가 경영을 맡으면서 흑자로 전환했다.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우선시하고 여기에 기술을 접목시키는 디자인 우선 전략으로 애플을 수렁에서 꺼냈다.

스티브 잡스는 재직중 조나단 아이브 애플 디자인 총괄 수석 부사장에게 무한신뢰를 보냈다. 잡스는 조나단 아이브를 '정신적 동반자'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 덕분에 조나단 아이브는 애플의 디자인 전성기를 만들어 냈다. 조나단 아이브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 애플의 주요 제품을 디자인하면서 ‘애플=디자인’이라는 공식을 세웠다.


  재벌가 3인은 왜 스티브 잡스를 꿈꿀까  
▲ 정용신 신세계그룹 부회장

◆ 정용진, ‘사람중심’ 그룹이념에 인문학 접목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부쩍 인문학을 강조한다.

이는 신세계그룹이 경영이념으로 ‘사람중심’을 내세운 것과 관련이 있다. 유통이 핵심사업인 신세계그룹은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 파악을 중요하게 여긴다. 정 부회장은 고객을 이해하려면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부회장이 최근 열린 한 강연에서 “그동안 어떻게에 집중하던 우리는 이제 왜와 무엇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며 “상대의 겉만 보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는 이해가 인문학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정 부회장은 스티브 잡스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입학한 지 1년 뒤 유학을 떠나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정 부회장의 사촌인 이재용 부회장도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과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이 부회장이 인문학을 선택한 것은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보다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인문학을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정 부회장은 “세계를 이해하는 폭넓은 가치관을 학습한 뒤 경영에 필요한 경제와 경영학적 안목을 갖추는 과정을 밟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신세계그룹을 한국의 메디치가문으로 키우겠다며 인문학에 매년 20억 원을 투자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지식향연 콘서트에서 “우리에게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세상을 다르게 봐야 하기 때문”이라며 “(인문학을 통해) 통찰력을 키우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플의 혁신성은 인문학 덕분이라고 했던 스티브 잡스의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강연 도중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보이며 “제가 쓰고 있는 삼성 갤럭시S5에도 인문학적 통찰이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에 모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제품을 들고 프리젠테이션 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는 “미래를 만드는 사람은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가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 말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5월 말까지 전국 11개 대학교를 순회하며 지식향연 콘서트를 진행한다. 순회가 끝나는 대로 콘서트 참가학생중 청년영웅을 선발해 인문학을 테마로 한 해외여행 경비를 지원한다. 선발된 학생이 신세계그룹에 지원할 경우 가산점을 부여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뽑아 신세계그룹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다.

정 부회장은 인문학을 신세계그룹의 기업문화에 접목하고 있다. 신세계그룹은 성과 중심에서 직원만족 중심으로 기업문화를 바꾸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최근 그룹 차원에서 인문학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인문학이 사람의 밑바탕이 되는 학문이라는 정 부회장의 생각 때문”이라며 “정 부회장의 경영방침이 조만간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고 말했다.


  재벌가 3인은 왜 스티브 잡스를 꿈꿀까  
▲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 정태영, "중요한 것은 인문학 지식이 아니라 인문학 감성"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은 최근 기업들이 인문학을 경영에 접목하려는 시도에 대해 일침을 놓았다.

그는 올해 초 트위터를 통해 "경영을 위한 인문학이 열풍이라는데 다소 엉뚱하다"며 "기업에 필요한 건 인문학적 감성이지, 인문학 지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둘은 전혀 별개"라면서 "인문학적 감성과 인문학을 구별 못하는 것부터 심각한 감성 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정 사장은 "인문학적 감성이라고 부르건, 지식융합이라고 부르건 간에 기업들이 갈구하는 것은 숫자와 성능으로만 경쟁하던 시대가 끝나가는 지금 더 상위적 개념의 경쟁을 위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누가 인문학적 고민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인문학 수업을 들으러 간다는 것은 넌센스"라며 "거기에 경영의 해답은 없으며 인문학은 인문학으로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스티브 잡스가 2011년 세상을 떠났을 때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2013년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개봉을 앞두고 트위터를 통해 “갑자기 잡스가 그리워졌다”며 “읽다 만 전기를 영화개봉 전에 끝내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사장은 롤 모델로 스티브 잡스를 꼽는다. 또 '금융계의 스티브 잡스'로 불린다. 정 사장의 인문학과 경영의 접목은 디자인경영으로 구체화됐다.

정 사장은 2011년 현대카드ZERO를 출시하면서 “만들고 보니 딱 스티브 잡스 취향”이라고 했다. 현대카드ZERO 카드는 단순한 조건과 혜택, 그리고 디자인을 내세우면서 단순함을 강조한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철저히 따랐다. 정 사장은 스티브 잡스를 우상으로 여긴다. 정 사장에게 ‘스티브 잡스 취향’이라는 말은 대단한 만족감의 표현이다.

정 사장은 현대카드 디자인의 핵심으로 글자를 강조했다. 그는 국내 최초로 기업전용 서채 You&I 서체를 개발해 모든 영업점과 제품에 적용하도록 했다. 스티브 잡스가 대학시절 서체수업에서 영감을 받아 맥킨토시 서체를 개발한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정 사장의 디자인에 대한 집착은 ‘디자인 랩’과 ‘디자인 라이브러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정 사장은 현대카드 디자인 랩을 통해 현대카드의 모든 디자인을 개발하고 있다. 디자인 랩은 회사에서 사용되는 사무용품 디자인까지 맡아 회사 곳곳에 현대카드 디자인 DNA를 이식하고 있다.

지난해 5월 개관한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현대카드 디자인 혁신의 역사와 함께 전 세계에서 모은 디자인 책이 전시돼 있다.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임직원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자 고객들에게 현대카드의 디자인 우수성을 알리는 랜드마크 역할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