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 한수원 사장, 원전 마피아에 총을 겨누다  
▲ 조석 한수원 사장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원전 마피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원전비리의 주범으로 꼽혀온 한수원 내의 순혈주의 혹은 조직 마피아를 상대로  '인사 물갈이'를 하지 않는 한 원전비리의 '복마전'으로 지목된 한수원을 개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첫 전투는 '인사'다. 조 사장은 연말 신규 임원진 인사를 단행했다. 지난 12월 19일 발표한 인사에서는 외부 인물을 대거 영입했다. 이를 놓고 수원 내부에 만연하던 순혈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외부 출신 임원은 각 본부에 고루 포진됐다. 특히 개별 원전본부장으로 손병복 전 삼성엔지니어링 부사장과 우중본 전 한수원 인재개발원장이 임명된 점이 주목됐다. 

손 전 부사장은 최초의 외부 출신 원전본부장으로, 삼성 재직 당시 경영혁신을 주도했다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조 사장의 한수원 혁신 의지를 반영한 인사로 풀이된다. 우 전 원장은 한수원 내부 인물이지만, 본래 기술직의 몫으로 여겨지던 원전본부장 자리에 오른 첫 사무직으로서 기술직이 원자력본부를 장악하고 비리 라인을 형성하는 행태를 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해 초에는 구매사업단장으로 삼성물산 출신의 인사를 기용했다. 비리의 진앙이던 각 원자력본부와 구매, 건설 분야에 외부인을 앉혀 내부 비리의 고리를 분쇄하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조석 사장이 삼성 출신 전문가를 통해 경영과 조직문화에 새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사장은 한수원 내부인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은 외부 인사들을 임원으로 영입해 원전 마피아 세력에 맞서서 내부 개혁을 단행하려 한다는 얘기이다.


방향은 잘 잡았다는 평가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순혈주의로부터 비롯된 원전 마피아 세력이 심각하다. 이 세력을 물갈이하지 않는 한 한수원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원전 마피아는 주로 학연으로 유착되어 고위직을 독식하며 납품 등의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관련인들에게 특혜를 주는 집단을 의미한다. 원자력 전문가만이 한수원 운영에 관계해야 한다는 순혈주의가 국내에 원자력 관련 교육 과정이 개설된 대학교가 9곳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과 맞물려 일어난 결과이다.

  조석 한수원 사장, 원전 마피아에 총을 겨누다  
▲ 한수원 조직도. 붉은색이 최근 외부인사 등으로 충원된 곳을 표시한다.
문제는 이런 인사개혁을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산자부는 2013년 원전사태 이후 2017년까지 한수원 고위간부급(처장 및 실장급) 중 외부전문가의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조 사장은 이 시점을 2017년에서 올해로 끌어당기겠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 물갈이와 함께  투명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구매사업단 내에 부품 원가조사 및 협력사 관리 기능을 신설해 발전, 건설 및 계약업무를 통합하겠다고 했다. 납품업체 등과 연관된 비리가 주로 발전, 건설, 계약 업무 분야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들 업무에 대해 확실한 관리를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실망스럽다'는 평가도 벌써 나온다. 지난해 6월 한수원은 원전비리에 대한 물으며 1급 이상 간부 170여명의 사표를 받았다. 그런데 연말 인사에서 물러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물갈이 개혁'은 결국 원전비리로 쏟아지는 소나기를 우선 피하고 보자는 '임시대응'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인사에서 단 1명의 고위 간부를 교체하지 못했는데, 무슨 수로 올해 50% 물갈이를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시각도 많다.

이번에 단행된 외부인사 영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도 있다.  한수원 내부에 어떤 커넥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양날의 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수원의 한 고위간부는 "외부에서 영입된 임원들은 스스로가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적으며 중립적인 감찰관 역할을 해낼 수 있지만, 이들이 아무리 개혁을 시도하더라도 한수원 내부에서 이들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을 경우 원활한 개혁안을 펼치기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한수원의 '원전 마피아'가 한 갈래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조 사장의 '물갈이 전쟁'을 한층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서울대 출신을 중심으로 한 '정책 결정 분야의 마피아'는 지난 여름 불거져 나온 원전비리 사태의 원인으로 꼽히면서 여러 대책이 마련되었다. 고위간부 물갈이 인사방안도 이런 대책 가운데 하나인 셈이다.

그러나 한수원에는 또다른 마피아가 존재한다.  바로 '실무 분야의 마피아'이다. S공고를 주축으로 하는 견고하게 형성된 동문 네트워크를 지칭한다. 주로 실무 분야에 포진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마피아는 한수원 내부의 소위 ‘서울대 라인’보다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아 비리 유착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을 뿐,  원전비리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들이 안팎에서 제기된다.

 따라서 조 사장이 한수원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이 마피아도 역시 물갈이 전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대표 김영희 변호사는 “실무형 마피아의 경우, 비리 문제가 더 심각하다. 투명성 강화와 제도 개혁 등 시스템으로 해결해야지 삼성 출신 인사 몇 명을 앉히는 것은 비리 근절에 있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조 사장이 벌여야 할 전쟁의 전선은 넓고도 길다. 과연 '원전 마피아'들을 상대로 펼치는 '조 사장의 전쟁'은 승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