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 금융부문 대변화 추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2년 11월 30일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이건희 삼성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의 금융은 왜 삼성전자처럼 일류가 되지 못할까?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가장 곤혹스런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 회장이 오랫동안 삼성에 심으려고 했던 DNA는 ‘일류’다. 이를 위해 부인과 자식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자고 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전자부문은 글로벌 일류가 됐다.

하지만 금융부문은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이 회장은 수년 전부터 “금융에서 왜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나오지 않느냐”며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을 압박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신경영 20년 동안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고 밝혔다.

이 회장이 ‘제자리걸음인 사업’이라고 지목한 곳 중 하나가 금융부문이다.

최근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이 일제히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삼성생명은 임원을 대거 줄이고 1천여 명의 직원을 자회사 등으로 보내는 인력감축에 나섰다. 삼성증권도 삼성생명처럼 임원을 줄이고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은 최근 국내 금융기업들이 안고 있는 수익성 악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처다. 저금리와 저성장체제가 고착화하면서 금융회사들의 수익은 나날이 악화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의 지난해 순이익은 3조8823억 원으로 2012년 8조6818억 원에 비해 반 이상 줄었다.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등 보험사도 지난해 순이익이 4조7800억 원으로 전년의 5조5887억 원에 비해 14% 정도 감소했다. 증권사들의 경우 지난해 1098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금융기업들은 대부분 구조조정에 들어가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도 예외는 아니다.

◆ 금융부문 '이재용형' 사업모델 찾아라

하지만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은 단순하지가 않다. 이번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구조조정은 이재용 부회장의 특별 주문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금융부문 사업재편을 위한 사전 정리작업이라는 얘기다.

삼성그룹은 이미 삼성SDI와 제일모직의 합병결정을 통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부문에 대한 지배구조를 완성하고 수직 계열화를 통해 사업구조도 재편했다. 이어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병하면서 건설과 화학부문에 대한 삼성물산의 지배력을 높였다.

이번 삼성 금융계열사들에 대한 구조조정은 마지막으로 남은 금융부문에 대한 사업구조 개편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런데 삼성의 금융부문은 이미 삼성생명을 통해 지배구조가 완성돼 있다. 따라서  금융부문 개편은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을 삼성전자와 같은 일류로 만들기 위한 경쟁력 강화 차원인 셈이다.

“지난해에도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은 일부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을 했다. 그런데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실질적 회장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동안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이 추진했던 방안들에 대해 탐탁지 않게 보고 있다.  이번 구조조정은 인력감축 등 단순히 수익성 악화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삼성 금융계열사들이 일류가 되는 방향성을 잡고 추진하는 것이다.” 삼성의 금융계열사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재용 시대를 준비하는 삼성의 금융부문에 대한 개편의 첫 단추는 지난해 말 이뤄진 사장단 인사로 보인다. 지난해 말 사장단 인사에서 김석 삼성증권 사장을 제외하고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의 사장이 모두 바뀌었다.

  이재용, 삼성 금융부문 대변화 추진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가운데)과 금융계열사 사장들. 왼쪽부터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 김석 삼성증권 사장


◆ 금융일류화 추진 10년은 실패작

특히 지난해 말 인사에서 유임된 김석 삼성증권 사장을 제외하면 모두 정통 금융권 출신이 아니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도 이전에 삼성손해보험 사장으로 일했을뿐이다.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은 삼성생명에서 일했지만 영업을 경험하지 않았다.

금융계는 이런 인사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 내부에서 삼성 금융계열사들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이런 인사를 만들어 냈다는 해석도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를 일류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건희 회장은 이미 10년 전 2004년 ‘삼성 금융일류화추진팀’을 만들어 삼성 금융계열사의 수익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삼성전자 등 그룹에 의존하는 영업방식, 즉 그룹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그룹 계열사와 단순 거래하거나 사업을 따라가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조업을 관리하는 '삼성식 관리방식'으로 세계적 금융기업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봤다.

이런 노력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전자부문이 거둔 성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특히 해외사업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삼성화재만 지난해 해외에서 141억 원의 순이익을 냈을뿐 나머지 계열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생명보험업계 1위인 삼성생명은 해외에서 지난해 233억 원의 손실을 봤다. 중국에서만 8년째 적자다.

삼성증권 홍콩법인은 대표적 실패 사례다. 삼성증권은 아시아 제일의 투자은행(IB)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2009년 야심차게 홍콩에 진출했다. 그러나 2011년까지 3년 동안 누적손실만 1억1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결국 2012년 전면철수해야 했다.

당시 한 외국계 금융사 CEO는 “1~2년 만에 금융 분야에서 성과를 어떻게 내겠느냐”며 삼성증권의 성급한 판단을 비판했다.

삼성 금융계열사들은 몇 년 전부터 국내실적도 부진의 늪에 빠졌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해 매출은 19조3천억 원을 기록했으나 2012년 대비 36.47%나 떨어졌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5597억 원으로 2012년에 비하면 반토막 났다. 삼성화재나 삼성카드, 삼성증권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부회장체제를 준비하는 그룹은 금융부문의 일류화 계획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삼성생명 업무보고 자리에서 실적부진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아진 데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체제 준비그룹은 지금까지 방식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파악한 뒤 새로운 수익모델과 인력의 영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사업 재검토하고 새로운 사업모델 확보 지시

삼성 금융부문의 개편원칙은  두 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 번째 지금의 사업 모델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사업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내부감사나 경영진단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외부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는 게 좋겠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글로벌 금융기업을 인수하거나 CEO를 포함해 글로벌기업 출신의 금융 전문가를 대거 영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사업구조 개편을 대비해 인력과 조직을 축소운영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수익모델과 인력을 받아들이려면 일단 몸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삼성생명과 삼성증권 등이 진행하고 있는 구조조정들은 이런 원칙하에서 먼저 내부를 비우는 작업의 하나라는 것이다.

삼성의 금융계열사 수장들이 지난해 연말 인사 이후부터 보여주고 있는 행보도 이런 원칙과 맞닿아 있다.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은 지난 10일 인력감축과 조직통폐합을 단행하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계획을 밝혔다. 김 사장은 이날 사내방송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 중심의 효율적 조직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생명은 이미 지난해 12월 조직개편과 인사를 한차례 단행했다. 따라서 이번 구조조정은 사실상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김 사장은 전체 임원 70명 중 약 20%인 15명에 대한 인사를 실시했다. 3명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삼성생명서비스 등 계열사와 자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전무 4명과 상무 8명 등 나머지 12명의 임원은 보직을 잃었다. 이들은 자회사로 전출하거나 퇴임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기존 5본부 4실 50개 팀은 4본부 5실 40개 팀으로 축소개편됐다. 조직개편과 함께 분사나 자회사 전출 등의 방법으로 1천 명이 넘게 직원들을 줄인다.

김 사장은 취임 이후 수익성이 좋지 않은 해외사업소도 정리에 들어갔다. 김 사장은 취임 뒤 모든 해외사업소와 지점을 돌며 “성과를 내지 못한 사업소와 사업은 접는 편이 낫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대상은 일본 도쿄사무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도쿄사무소 소장과 부소장은 귀국했고 현재 직원 1명만 남아있다.

김 사장은 중국시장 사업확대를 적극 추진하다. 취임 후 지금까지 중국을 두 차례나 방문하며 ‘중국영업통’으로서 면모를 보여줬다. 김 사장은 2013년 삼성화재 사장을 맡으면서 중국내 자동차책임보험 인허가를 따내 삼성화재 중국법인 영업수익을 크게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사장은 지난해 말 체결한 중국은행과 협력을 통해 ‘방카슈랑스’영업을 중심으로 중국 생명보험시장을 공략하기로 했다. 또 현재 중국 베이징에 건설 중인 오피스 빌딩과 같은 해외 부동산 투자를 늘려 자산운용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고 안정적 수익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재용, 삼성 금융부문 대변화 추진  
▲ 삼성생명 김창수 사장, 삼성카드 원기찬 사장, 삼성화재 안민수 사장, 삼성증권 김석 사장(왼쪽부터)

◆규모 줄이고 사업모델 만들고 해외진출 모색하고

김석 삼성증권 사장은 2011년 말부터 삼성증권을 맡고 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금융계열사 사장 가운데 유일하게 유임됐다.

현재 국내 금융업 중에서 증권업이 가장 어렵듯이 삼성증권도 삼성 4대 금융계열사 중에서 가장 위기에 처해 있다.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대비 86.71%나 감소한 240억 원에 불과했다. 매년 1800억 원 이상의 순이익을 거두던 과거와 비교할 때 초라한 성적이다.

김 사장도 삼성증권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김 사장은 지난 11일 사내방송을 통해 “위기상황이 지속될 경우 회사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될 것”이라며 “회사의 미래와 비전달성을 위해 특단의 경영효율화 조치를 단행한다”고 밝혔다.

김 사장의 이번 조치는 지난해 6월 직원 170여 명을 다른 계열사로 전환 배치했던 구조조정 이후 두 번째다. 김 사장은 당시 인사조치와 함께 지점 7곳을 통폐합했다. 8개 지점은 직원 수 10명 미만으로 규모를 축소했다.

김 사장은 이번 구조조정에서 먼저 임원감축을 실행했다. 30명가량의 전체 임원 중 6명을 줄였다. 한 명은 계열사인 삼성카드로 보내고 나머지 5명은 보직을 변경했다. 임원 경비도 35%나 줄였다. 특히 임원들에게 해외출장시 의무적으로 이코노미석에 탑승하라고 밝혔다.

김 사장은 또 근속 3년차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고 있다. 희망퇴직을 신청한 직원은 희망자를 대상으로 투자권유대행인으로 보직전환을 추진한다. 현재 알려진 인원 감축 규모는 최대 500명에 이른다.

김 사장도 다음 행보는 해외다. 김 사장은 로스차일드와 같은 글로벌 금융사들과 네트워크 강화를 추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장은 올해 초 “로스차일드는 유럽에서 강점이 있다”며 “이를 활용해 새로운 비즈니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인도 마힌드라의 쌍용차 인수자문과 동서발전의 자메이카 발전소 인수 등에서 삼성증권이 로스차일드와 함께 했던 경험 등을 강조했다.

안민수 삼성화재 사장은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김창수 사장 후임으로 사장이 됐다.

삼성화재가 삼성 금융계열사 가운데 형편이 그나마 좋아서인지 구조조정 얘기는 아직 나오지 않는다. 대신 안 사장은 ‘글로벌 진출’을 매우 강조하고 있다. 안 사장은 신년사에서 “경쟁상대를 글로벌 선진보험사로 넓히고 철저한 분석을 통해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미래지향적 전략과 방법을 찾아 끝까지 실천하자”고 직원들에게 주문했다.

안 사장은 지난달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상당히 구체적으로 해외사업 계획을 밝혔다. 안 사장은 “현재 11개국 19개인 해외거점을 더욱 확대해 미국 중견기업시장을 중심으로 현지영업을 강화하겠다”며 “중국에서 직판자동차사업 조기 안정화에 주력하는 한편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수재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원기찬 삼성카드 사장은 삼성전자 ‘인사통’ 출신으로 지난해 말 인사에서 삼성카드 수장이 됐다.

원 사장은 지난 1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삼성카드에 접목시켜 변화와 혁신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원 사장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모바일 결제와 빅데이터 등 다양한 신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결국 삼성카드에 삼성전자의 일류 DNA를 이식하겠다는 의미다.

특히 원 사장은 빅데이터사업을 주목하고 있는데, 사장이 된 뒤 미국 출장길에 올라 빅데이터 전문가들을 두루 만나고 있다. 원 사장은 “카드사는 다른 업종에 비해 빅데이터 분석과 활용 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행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고 이를 위해 우수한 해외인력을 영입하거나 필요하다면 인수합병을 추진한다는 그룹의 금융부문 개편 원칙과 일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