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가업승계 어렵다" 상속세 개선  요구  
▲ 올해 우리나라의 많은 재벌가들이 경영 승계에 들어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한국의 상속증여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맞춰 재계가 세제개편을 요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장수기업’이 나와야 한다는 게 명분이다. 하지만 최근 경영 승계를 준비하면서 재벌들이 겪고 있는 세금에 대한 고민을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는 지난 27일 ‘상속·증여세제 국제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하고 가업승계 세제지원 제도에 대한 폭넓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상의는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은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과세를 감안하면 최고 65%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과세부담은 OECD국가 중 최고 수준인데 비해 가업승계에 대한 세제지원은 선진국보다 불리해 원활한 가업승계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 계속 터져 나오는 ‘징벌적 상속증여세’에 대한 불만


상의가 가장 먼저 지적한 부분은 기업에 적용되는 높은 상속증여세다. 현행 상속증여세 최고 세율은 과세표준인 30억 원 초과 시 50%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대주주의 주식을 상속증여 받으면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과세’를 적용한다. 대기업의 경우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50% 이하면 20%의 할증이 붙고 50%를 초과하면 30%가 더 과세된다. 중소기업도 50%를 기준으로 각각 10%와 15%의 할증된 상속증여세가 부과된다.


상의는 “상속증여세 제도가 갖는 부의 집중완화 기능에 대한 회의론이 일면서 최근 주요국들은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세제지원을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상의는 “우리나라도 원활한 가업승계를 위해 상속공제를 늘리고 있지만 규제로 인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수봉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상속증여세가 국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로 낮은 수준이나 높은 세율 때문에 개별 납세자들의 부담이 크다”면서 “가업승계에 대한 과세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 기업투자를 유도하고 경쟁력을 갖춘 장수기업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상속증여세 개선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4월 상의는 ‘한·독·일 비상장주식 평가제도 비교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도 할증과세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의는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를 폐지하고 소액주주 주식에 대한 할인평가 제도를 도입해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해 상속증여세법을 합리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주요국의 상속·증여세 최근 동향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상속증여세는 많은 선진국에서 폐지하거나 축소하는 추세”라며 “주요국들의 상속증여세 폐지 및 완화 추세는 우리나라에 상속증여세 세 부담 완화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 정부의 세제지원 확대 요구하는 재계


대한상의는 상속증여세의 폐지 같은 강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외국의 사례를 들며 상속증여세 폐지가 추세라고 언급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반기업 정서가 강하기 때문에 폐지를 주장하기 어렵다고 본 듯하다. 대신 대한상의는 정부의 세제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가업승계 주식에 대한 증여세 납세유예제도 도입 ▲업력과 관계없는 동일한 가업상속공제한도 적용 ▲가업승계지원 업종 제한 완화 ▲상속세 과세방식 변경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 재설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2008년부터 ‘가업승계주식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 제도’를 도입해 일부 중소·중견기업에 한해 세제지원을 하고 있다. 정부는 가업을 물려받을 목적으로 주식을 증여할 때 최대 30억 원을 한도로 5억 원을 공제한다. 나머지는 10% 단일세율로 과세한다. 특례 제도가 적용되는 주식은 상속재산에 합산돼 정부가 정한 사후관리 요건을 갖추면 나중에 100% 공제받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상의는 도입한지 7년이나 흘러 경영환경이 크게 변했는데도 제도는 변함이 없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상의는 “현행 증여세 과세특례제도는 7년째 30억 원의 한도를 유지해 증여세 경감 효과가 제한적”이라면서 “최대한도를 확대하거나 증여세 납세유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의가 요구한 증여세 납세유예제도는 가업승계주식 증여 시 납세 기한을 상속시점까지 유예한 후 가업상속세로 정산하는 제도다.


대한상의는 엄격한 사후관리 요건도 개선대상이라고 말했다. 특례제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피상속인은 최소 10년 간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없다. 2년의 최소사업영위기간을 둔 영국이나 제한이 없는 독일 및 일본에 비해 너무 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용대상이 되는 업종도 너무 적다는 주장도 나왔다. 상의는 “현행 ‘열거주의 방식’을 ‘포괄주의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우리나라는 조세특례제한법상 열거된 업종에 한해서만 가업승계를 지원한다. 상의는 열거되지 않은 업종은 지원을 받을 수 없으므로 일본처럼 자산관리회사 등 일부 업종만 제외하는 포괄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개선 필요하지만 경영권 편법승계 경계해야...


상속증여세 현실화를 포함한 가업승계제도 개선 목소리가 계속 나오는 까닭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같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기업은 상속증여세에 대한 부담이 대기업보다 크다.


지난해 1월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간담회에서도 이런 불만이 터져 나왔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유도의 유영희 회장은 “상속세 때문에 회사가 공중분해 되면 회사 직원은 누가 책임지냐”며 “건전한 일자리와 기술의 대물림에 대해 세금을 과도하게 물리는 제도는 폐지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도 지난해 12월 기자간담회에서 “가업승계는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성장을 위한 책임의 대물림”이라고 현행 상속세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회장은 “2세가 지분 상속 후 경영권을 처분하면 당연히 상속세를 과세해야 하지만 물려받았다고 당장 돈이 없는데 막대한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은 무리한 처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분 매각 없이 경영권 승계 시 상속세를 유예해 주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벌들이 상속증여세 제도 개선을 통해 새로운 경영권 편법승계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외국식 제도 도입으로 중소기업들이 경쟁력을 강화하고 중견·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지만 악용될 경우 재벌들의 ‘세금 없는 대물림’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들의 최대 관심사는 ‘절세’다. 어떻게 하면 승계 과정에서 세금을 줄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최근 경영승계 작업에 들어간 삼성과 현대차 등 주요 재벌가들의 공통된 걱정거리이기도 하다.


최근 30대 재벌 중 절반이 넘는 16개 재벌이 ‘신주배정 특례’를 신설했거나 정관에 반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 특정 상황에서 기존 주주에게도 제3자 배정을 통한 신주 인수를 허용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해당 특례가 경영권 편법 승계의 새로운 길이라고 지적한다.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과세를 피하고 경영권을 승계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