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회사들이 석유화학사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국내 정유회사들의 석유화학사업 진출이 정통 석유화학회사들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정유회사들이 앞으로 내놓는다는 물량이 꽤 큰 데다 원재료를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을 무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석유화학사업 진출 성공할까

▲ 여수 석유화학단지.


3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회사들이 일제히 석유화학사업에 미래를 걸며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는 것을 두고 기존 석유화학회사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의 정유회사가 올해 석유화학사업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금액은 10조 원에 이른다. 

정유사들이 이처럼 석유화학회사로의 변신을 꾀하는 이유는 정유사업의 불안정성 때문이다.

정유회사들은 원유를 수입해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파는데 국제유가와 글로벌 정세 등 외부 변수에 매우 취약하다. 

2014년 국제유가가 폭락했을 때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국내 정유사들은 일제히 적자를 내기도 했다.

정유사들은 그동안 외부 변수에 대응할 방도가 없다는 게 고민이었는데 석유화학사업으로의 사업 다각화를 통해 이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다.

오랜 시간 석유화학사업을 해온 롯데케미칼과 LG화학 등 석유화학회사들은 정유회사들이 내놓은 화학제품의 종류가 한정적이고 생산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들며 그들의 시장 진출이 위협이 될 수 없다고 자신한다.

하지만 정유회사들은 단기간 안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최대한 생산량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유사들은 원료 확보 측면에서 석유화학회사들에 맞설 충분한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쓰오일은 2014년 4조8천억 원을 들여 석유화학사업에 발을 디뎠고 올해 8월 또 5조 원을 투자해 석유화학 생산설비를 더 늘리기로 했다. 2023년에는 앞선 석유화학회사들에 버금가는 연간 150만 톤 규모의 에틸렌 생산량을 확보하게 된다. 

현재 최대 화학회사인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이 각각 220만 톤, 210만 톤 규모의 에틸렌을 생산하고 여천NCC(195만 톤)와 한화토탈(109만5천 톤)이 그 뒤를 잇는 만큼 에쓰오일은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뛰어넘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게다가 2023년에 완공되는 두 번째 생산설비로 에쓰오일은 제품군도 더 넓히게 된다. 

에쓰오일은 올해 4분기 완공되는 첫 번째 석유화학설비를 통해 연간 폴리프로필렌과 산화프로필렌을 생산하는데 두 번째 석유화학설비를 통해서는 고부가가치의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등으로 제품 종류를 다양화하기로 했다. 

또 두 번째 생산설비까지 갖추면 정유시설에서 나온 나프타를 새로 건설하는 스팀크래커설비로 옮겨 에틸렌을 생산하고 이를 또 올레핀 다운스트림시설로 옮겨 폴리에틸렌까지 생산하는 일관 생산체계도 갖추게 된다.

GS칼텍스는 전남 여수 제2공장 부근에 2조 원대의 투자를 통해 올레핀 생산시설(MFC)를 짓고 있다. 허진수 GS칼텍스 회장이 "올레핀에서 100년 기업을 향한 길을 찾겠다"고 밝혔을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GS칼텍스의 올레핀 생산시설(MFC)은 나프타를 원료로 사용하는 석유화학사의 NCC와 달리 나프타에 더해 정유 공정에서 생산되는 LPG, 부생가스 등 다양한 유분을 원료로 투입할 수 있다는 점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 가지 원료 말고 다른 연료를 투입해 동일한 제품을 얻을 수 있다면 나프타 의존도가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GS칼텍스는 올레핀 생산시설 건설과 관련해 "기존 정유와 함께 석유화학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수익 변동성을 줄여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오일뱅크 역시 원유 찌꺼기인 중질유분을 주원료로 사용해 기존 업체들의 NCC에 비해 생산 원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바라본다. 현대오일뱅크는 나프타 투입을 최소화하고 더욱 저렴한 탈황중질유를 60% 이상 투입해 원가를 낮출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원재료를 원유 정제 과정에서 자체 수급할 수 있다는 강점도 큰데 다양한 원재료를 쉽게 다룰 수 있다는 것도 사업을 펼쳐나가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며 “정유사들은 앞으로 고부가가치 화학제품군으로 영역을 넓히는 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유사들의 석유화학 생산설비가 완공되는 2~3년 뒤에 정유사와 정통 석유화학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