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
▲ 문희상 국회의장
1945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행정고시에 합격했지만 민주화운동 이력으로 임용을 받지 못했다.
학교법인 경해학원의 이사장을 역임했고 숭문당이라는 서점을 차려 운영했다.
서점을 운영하며 통일문제와 관련해 여러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류하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에 입문했다.
6선 국회의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첫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았고 비상대책위원장을 국회 한 회기에 두 번이나 하는 기록도 세웠다.
우락부락한 외모에 숨겨진 뛰어난 갈등조정 능력으로 ‘여의도 포청천’, ‘겉은 장비, 속은 조조’ 등 다양한 별명이 붙어있다.
- 경영활동의 공과
-
△국회의장으로 선출
문희상은 2018년 7월13일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투표에서 총투표수 275표 가운데 259표를 얻어 당선됐다.
국회법에 따라 탈당해 무소속이 됐으며 20대 국회가 끝나는 2020년 5월까지 국회의장을 수행하게 된다.
이에 따라 5월29일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가 종료된 지 45일 만에 입법부 공백 사태가 해소됐다.
문 의장은 수락 연설에서 "국회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최후의 보루"라며 "대결과 갈등에 빠져서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민생을 외면한다면 국민이 선거와 혁명 통해 용납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재수’ 끝에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
문희상은 2018년 5월16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총투표 참석자 116표(무효 2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47표를 얻은 박병석의원을 꺾고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됐다.
문희상은 후보로 선출될 당시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가운데 최고령인 73세였다.
현행 국회법은 국회의장단 임기 만료 5일 전에 새 의장단을 선출하도록 하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2018년 5월29일 임기가 종료됐다. 이에 따라 24일에 새 의장단을 선출해야 했지만 국회에서는 여야 간 이견 차로 새 의장단이 선출되지 않았다.
통상 국회의장은 의석 수가 가장 많은 원내 제1당에서 선출됐다. 자유한국당은 6·13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국회위원 재보궐선거 결과에 따라 원내 제1당 자리가 바뀔 수 있다고 보고 새 의장단 선출을 미루고 있다.
민주당 의석 수는 5월말 현재 118석, 한국당은 113석으로 5석 차이가 난다.
이에 따라 문희상을 후보로 두고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퇴임한 5월29일 이후 국회 수장 자리는 공석으로 유지되고 있다.
문희상이 국회의장에 도전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2016년 전반기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정세균 현 국회의장에게 패해 고배를 마셨다.
△대통령 특사로 일본 방문
문희상은 2017년 5월18일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문희상은 이 방문을 놓고 ‘똥 싸놓은 거 치우러 가는 심정’이었다고 표현했다.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외교를 다시 복원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정에 임했다고 한다.
문희상은 2017년 5월20일 김포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위안부 합의 문제를 놓고 “미래지향적으로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의견 합의를 봤다”며 “대한민국 국민이 정서적으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전달했고 일본도 이를 이해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문희상을 본 일본인들은 포털사이트 댓글을 통해 “협상을 한다더니 야쿠자 오야붕이 왔다” 등의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문희상은 2004~2008년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며 적극적으로 의원 외교에 나섰고 일본 총리를 지낸 모시 요시로 일본측 회장 등 일본 정계 인물들과 인맥을 두텁게 쌓았다. △6선 국회의원
문희상은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8.7%의 득표율을 보이며 당선됐다.
이후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득표율 45.8%),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득표율 52.1%),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득표율 47.5%),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득표율 47%),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득표율 42.8%)에서 모두 당선됐다.
△‘개작두 리더십’ 보여주며 포청천으로 자리매김
문희상은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문희상은 소통과 철저한 중립성 유지를 통해 당 내 기강을 세웠다. 문희상이 위원장을 맡기 전과 후에 달라진 점을 놓고 당의 중심이 잡히고 질서가 생겼다는 말도 나왔다.
문희상은 위원장을 맡을 당시 ‘버릇없는 초재선 의원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개작두로 치겠다’는 등의 강경한 발언을 쏟아냈다. 이 발언 뒤 초재선 의원들이 중구난방식 주장을 하는 사례가 크게 줄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2번의 국회의원 선거 낙선
문희상은 197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사저에서 김 전 대통령을 처음으로 만났다. 당시 문희상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여러 통일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류하다가 김 전 대통령까지 알게 됐다.
문희상은 1988년에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평화민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선거구는 의정부시였고 득표율은 27.5%였다.
김 전 대통령은 문희상의 정치 스승으로 문 정치에 입문하도록 했다. 문희상은 이후 스스로를 '김대중의 사람'으로 지칭했고 정계에서 '동교동계'로 분류됐다.
문희상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낙선했다. 국민회의 의정부시 후보였는데 득표율은 33%였다.
- 비전과 과제/평가
-
◆ 비전과 과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이 2015년 1월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신년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의장 자리는 2018년 5월29일 전임자인 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비어있었는데 문희상의 등장으로 45일 만에 입법부 공백사태가 해소됐다.
문희상은 국회의장으로서 '협치 국회'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내놓았다. 이를 위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이 시작한 원내대표단 정례회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상임위원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지속적으로 소통 채널을 만들어 협치와 통합의 국회를 만들기로 했다.
문희상은 '일 잘하는 실력 국회'로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국회를 국회의원들의 싸움터가 아닌 정책대안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연중 무휴 상시국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임위의 소위원회 활성화를 과제로 삼았다.
◆ 평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당시 ‘군기반장’으로 불렸다. 당내 계파 문제를 해결하고 기강을 잡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희상은 김대중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과 노무현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경험이 있어 당청관계를 잘 꿰뚫어볼 수 있는 인물로 손꼽혔다.
‘겉은 장비, 속은 조조’라는 별명이 있다. 뛰어난 지략가인데 겉모습은 장수처럼 우락부락한 데서 붙여진 별명이다. “외모만 보면 자유한국당”이라는 말도 듣는다.
문재인 정부에서 일본 특사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들은 SNS에서 “한국 도깨비가 왔다, 한국에도 야쿠자가 있다”는 등 외모를 놓고 여러 평가를 내놓았다.
문희상도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어 공식석상에서도 스스로의 외모를 소재로 한 유머를 자주 한다. 그는 2018년 5월16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로 당선된 소감을 발표하며 “애초에 얼굴 큰 사람 뽑자, 몸무게 많이 나가는 사람 뽑자 했으면 걱정을 덜 했을 것이다. 쓸데없이 얼굴만 큰, 부덕하고 불민하기 짝이 없는 이 사람을 뽑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
◆ 경력
▲ 2012년 4월 경기 의정부에서 문희상 국회의장 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조카 이하늬씨.
1980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여연청) 초대회장을 지냈다.
1985년 한국청년회의소(JC) 중앙 회장을 지냈다.
1992년 14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직업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5년 경기도 의정부시의 대형서점 ‘숭문당’을 창업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이 됐다.
2003년에 제26대 대통령비서실장이 됐다.
2004년에 제17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다.
2008년에 제18대 국회의원으로 선출됐다.
2008년에 국회 부의장을 맡았다.
2010년 제18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1년에 민주당 도시주거복지기획단 위원, 진보개혁모임 공동대표가 됐다.
2012년에 제19대 국회의원에 올랐다.
2013년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4년에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2016년에 제20대 국회의원이 됐다.
2018년 5월16일에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 국회의장 후보자 선거에서 116표 가운데 67표를 얻어 뽑혔다.
2018년 7월13일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으로 뽑혔다.
◆ 학력
양주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경복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야구인 김영조씨의 딸인 김양수씨가 부인이다. 사이에 1남2녀를 뒀다.
문희상은 문인숙씨와 가야금 연주가 문재숙씨를 동생으로 두고 있다. 문재숙씨의 딸인 가야금 연주가 이슬기씨와 배우 이하늬씨가 조카다.
◆ 상훈
2014년 12월에 제16회 백봉신사상 대상을 탔다.
2015년 12월에 대한민국 모범국회의원대상 최고대상을 받았다.
◆ 기타▲ 2007년 1월2일 오전 영등포 열린우리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한 의원이 '문희상 고문 닮은 돼지해'라고 이야기하자 문 고문이 V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촛불혁명 이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해 2017년 3월22일에 ‘대통령’이라는 책을 냈다.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부터 국정운영과 퇴임 이후의 자세, 갖춰야 할 덕목까지 적어 놨다.
호는 정흥(正興). 개명 전 이름이 문정흥이었다고 한다.
종교는 천주교라고 알려졌다. 세례명은 ‘바오로’다.
취미는 서예다. 1985년 만들어진 전혁직 국회의원들의 서예모임 ‘국회 서도회’에 2005년부터 참여하면서 시작됐다.
문희상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경복고 4년 선배다.
- 어록
-
“국회는 민주주의의 끝이자 최후의 보루다. 국회가 펄펄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도 살고 정치도 살았고 (반대로) 국회가 해산되고 힘을 못 쓸 때 민주주의가 죽고 정치도 죽었다. 국민은 격조 있는 국회를 원한다. 신뢰가 살아있는 국회,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회를 만들고 싶다.” (2018/5/16,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당선 소감을 밝히며)
“(문재인 정부의 1년은) 기적이다. 참으로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점수로 매기자 하면 A+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모두 감성적 리더십이 있다. 차이는 노 대통령은 가슴이 뜨겁고 문 대통령은 가슴이 따뜻하다. 한분은 로맨티스트고 한분은 휴머니스트다.” (2018/5/10,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의 첫 1년이 적폐청산에 방점이 있었다면 2년 차에는 적폐청산의 제도화에 초점을 둬야 한다. 적폐청산이 인적청산으로 비치게 되면 국민의 피로감이 누적돼 개혁 동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는 너무도 잘했다. 특히 안보 영역이 가장 미숙할 것으로 보였으나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됐다.” (2018/5/9, 대선승리 1주년 맞은 날 보도자료에서)
"정치가의 길, 정객의 길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러나 다음 선거만 생각하는가,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가는 엄청난 차이다." (2016/5/10, 초선의원 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저는 김대중 사람이다. 아무리 제가 부인을 한다 해도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전에 어느 월간지에서는 저를 이야기하면서 "이마에 김대중이라고 쓰여 있다"고 표현하더라." (2016/2/11, 문희상 블로그에서)
“한국정치가 잘되기 위해선 ‘청청여여야야언언(靑靑與與野野言言)’이어야 한다. ‘청와대는 청와대다워야 하고, 여당은 여당다워야 하고, 야당은 야당다워야 하고, 언론은 언론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2014/10/30,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일 당시 교섭단체연설에서)
“개작두가 효과를 봤다. (싸우지 않는 정치의) 제1공로자는 개작두다. 그동안 쓸데없이 많이 싸워서 국민이 지겨워했던 것이다.” (2015/2/5,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고별 기자간담회에서)
“요즘 초재선 의원 가운데 막 나가는 의원이 많다.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정당은 규율이 생명이다. 해당 행위자는 개작두로 치겠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사석에서)
“내가 남은 여력이 있다면 쓰레질이라도 하고 빗질이라도 하겠다.”(2014/9/18, 새정치민주연합의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됐을 때 회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