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경기도 시흥시 도로가 집중호우로 침수돼 통제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심의 절차가 지체되고 있는 데다 수해 이재민들을 위한 지원도 투명하게 집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로 인해 올해도 수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 수해 이재민들의 수해 이전 소득 회복에 갈 길 멀어
16일 그린피스는 경남산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산청 지역단체 '그늘과 언덕' 등과 협업해 경상남도 산청군 수해 복구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산청군 수해는 지난해 7월16일부터 닷새 동안 약 800mm에 달하는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면서 발생했다.
당시 산청군은 전 군민을 대상으로 대피령을 발령했고 이에 따라 2855명이 대피했다.
그린피스는 현지 단체들과 함께 수해 이재민 126명을 직접 만나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약 절반이 여전히 수해 이전의 소득 수준을 복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소득 회복률이 10% 미만이라는 답변 비중이 34%를 차지했다. 10~30%까지 복구됐다고 답한 비중은 14%였으며 30~50%까지 회복됐다는 답변은 20%였다.
피해를 입은 경제활동 유형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농업(72%)이었고 그 다음이 상업 및 서비스업(9%)이었다.
그린피스 조사 시점에서 현재까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나 수해 복구는 완전히 마무리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 3일 촬영된 경기도 가평군 수해 복구 사업 현장 모습. <연합뉴스>
경남 산청군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지난해 수해 복구와 재발 방지 대책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발표한 2025년도 재해복구사업 보고서를 보면 수해 복수 완료율은 88.5%에 조사됐다.
전체 진행 현황으로 보면 높은 수치로도 볼 수 있지만 종료된 사업들을 보면 대체로 단순 피해 복구에 머문다. 주민 거주 환경 개선 및 향후 재발 방지 대책까지 포괄하는 사업은 대체로 지연되거나 진행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반지하주택 침수방지시설 확대 관련 사업 현황을 보면 침수 우려 가구 3만6532가구 가운데 설치가 완료된 곳은 2만3780가구(65.1%)에 불과하다. 침수 우려 가구 가운데 3분의 1에 방지시설이 마련되지 못한 채 또다시 올해 장마철을 맞게 된 것이다.
지하차도 침수시 자동 진입차단 시설도 지난해 402개소에서 올해 509개소로 107개소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설치가 완료되지 않은 곳이 56곳이나 된다.
재난 피해 당사자인 지자체들은 사업이 지연되는 원인으로 중앙정부의 복잡한 행정 심의 절차를 꼽고 있다.
백영현 포천시장은 지난 1일 수해복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해복구 사업이 중앙 행정 심의에 묶여 몇 개월씩 지연되고 있다"며 "긴급 수해복구는 지자체가 신속하게 판단하고 집행할 수 있게 심의권을 이양하거나 간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포천시는 지난해 7월 하루만에 139mm의 비가 내려 하천 범람으로 주택 11채가 침수되고 1명이 숨지는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해 7월에 서산, 홍성, 당진 등에 400mm가 넘는 비가 내린 충청남도에서는 정부가 피해 예방 사업에 좀 더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충남연구원은 지난 14일 '기후위기 시대, 안전한 여름을 위한 충남의 집중호우 대비' 보고서를 통해 정부와 각 지자체에 재난 예방 대책 강화를 촉구했다.
신우리 충남연구원 재난안전연구센터장은 보고서를 통해 "집중호우는 더 이상 일시적 기상이변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생활속 재난이 되고 있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피해가 발생한 뒤 복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예방 중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린피스가 직접 조사한 산청군도 행정 심의 문제로 피해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 지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3일 산청군 발표에 따르면 수해 방지를 위한 하천 개선복구 사업 등 대형 사업 6건은 아직도 사업 설계와 행정 심의 단계를 거치고 있다.
강성원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피해분석 보고서를 통해 "기후재난을 상정하지 않은 사전 대비는 예상치 못한 피해 규모를 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 돌아간다"며 "피해가 발생한 지역에는 중장기적 회복 지원을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7월부터 수해 위협 커져, "재난 대응 세밀히 조정해야"
올해도 7월부터 수해 위협이 커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이틀 사이에 충청권에 약 200mm의 호우가 쏟아져 토사 유출과 침수 피해가 잇따라 발생했다.
경상북도 문경시에서도 지난 9일 하루동안 150mm가 넘는 비가 내리면서 하천 범람 주의보가 내려졌고 영주시에서는 시민 한 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에 따르면 8~10일에 발생한 집중호우에 전국에서 시설 피해 453건이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7월부터 집중호우가 빈발하는 배경에는 기후변화가 있다고 분석했다.
포항공과대학교 환경공학부 연구팀이 지난해 7월 발표한 연구를 보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분석한 결과 한반도의 8월 집중호우 시기가 7월로 앞당겨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승기 포항공과대 환경공학부 교수는 연구 보고서에서 "폭우가 예년보다 앞당겨질 가능성에 대비해 재난 대응 계획을 월별로 세밀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포항공과대 연구진은 지금 이뤄지는 것과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하는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한국의 7월 극한 폭우 빈도는 미래(2091~2095년)에는 과거(2001~2005년)보다 3.7배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고 설명했다.
강성원 캠페이너는 "기후위기로 재난의 위험은 매년 커지는데 정부의 재난 대응 체계는 여전히 사후 단기 복구에만 집중돼 있다"며 "이마저도 대형 재난 앞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